단상 38-
산속의 나무가 자신의 낙엽을 먹고 자라듯이
한 사람의 인생도 아픔과 고통 속에서 완성됩니다.
사랑의 님이시여!
산속의 나무들은 자신들의 화려한 잎사귀를
발아래로 기꺼이 떨어뜨려
그것을 말리고 썩히어 성장의 에너지로 쓰나이다.
나무들은 봄의 싱그러움과 여름의 풍성함
가을의 쓸쓸함과 겨울의 앙상함을 짧은 일년 동안
숨 가쁘게 겪어가나이다.
봄은 출생이고 여름은 청춘이며
가을은 노년이고 겨울은 죽음이나이다.
이렇듯이 쉼없이 희로애락을 반복하는 나무들은
백년을 지나 천년으로 자신의 생명을 이어가나이다.
자연의 이치 속에 포함된
사람의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이나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성취의 기쁨이 있으며
물러설 때가 있고 마치 죽은 사람처럼 없는 듯이
살아야 할 때가 있나이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와 절대적인 힘에 잘 순응하는 사람은
큰 나무가 되어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주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이러한 희로애락의 되새김을
받아들이지 않나이다.
한평생 웃기만을 바라고
언제나 풍요로움을 유지하려 애쓰며
화려한 옷이 구겨지지 않을까 다림질하며
자신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기적인 논리를 끼워 맞추나이다.
하오나 님이시여,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아쉬움과 아픔과 고통은
반복해서 우리 인생에 주어지나이다.
누가 뭐래도 이 우주와 자연의 고정적인 이치는
모든 존재를 완성으로 이끌어가나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의 목적이며 이무인 동시에 권리이나이다.
사람은 선과 악의 이중적 존재로서 완성되어 있지 않은 불완전한 인격체이나이다.
우주와 자연의 힘과 이치는 인간관계를 통하여
불완전한 인격체를 숨 가쁘게 흔들어대며 괴롭히나이다.
우리 자신을 흔드는 것은 우주와 자연의 숭고한 이치이지
그 사람이 아니며 자신을 괴롭히는 것 또한
내 속에 있는 악성이지 더더구나 그 사람이 아니나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것은 깨끗하고 토해낸 것은 더럽듯이
더러운 것은 이웃이 아니라 자신임을 겸손하게 인정하소서.
우리 자신의 고통의 원인이 자신의 악성임을 인정할 때가지
평화는 절대 찾아오지 않음을 명심하소서.
겨울이 되면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나무들처럼
인생에 앙상한 뼈대만 남았을 때
고개 숙이고 깊은 침묵속으로 들어가소서.
인정해도 고통은 남고 부정해도 고통은 남나이다.
다만 인정하면 고통은 평화로 바뀌고
부정하면 고통은 죽음으로 이어지나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이라면
기거이 받아들이시어 싱그러운 봄에 부활의 축제를 맞으소서.
고통을 잘 활용하는 사람만이
고고한 인품의 월계관을 쓰게 되나이다.
고통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거름으로 쓰이는 보물이나이다.
사랑하는 님이시여,
고통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친구로 맞아들이지 마소서.
님의 인생에 방해가 될까 두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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