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김영하/랜덤하우스

다림영 2011. 8. 2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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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힘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을 물직이 아니라 순수한 힘으로 보았다. 힘이 승하면 어른이 되고  힘이 완전히 사라지면 다시 자연의 일부로 돌아간다. 죽는 것이다. 힘은 좋은 공기와 물,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강해지고 반대의 경우 약해진다. 권력자는 사람들로부터 힘을 많이 받는 사람이고 또 그 힘을 잘 나누어 주는 사람이다. 그들에게 있어 훌륭한 인간이란 많은 것을 소유한 자가 아니라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이다.

 

하나의 사상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한 권의 책이 되고 한곡의 음악이 나라는 필터를 거쳐 아름다운 문장이 된다. 이럴 때 나의 힘은 더욱 순수하고 강해진다. 모든 것이 막힌 것 없이 흘러가며 그 과정에서 본래의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을 생성하게 될 때, 인간은 성숙하고 그 '힘'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내가 가진 그 수많은 그러나 한 번 들춰보지도 않은 DVD들, 듣지 않은 CD들, 먼지 쌓인 책들, 도대체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 애섰던 것일가? 그냥 영화는 개봉할 때 보고, 혹시라도 그때 못 보면 나중에 빌려 볼 수 있었을 텐데, 책도 도서관에 가서 읽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모든 것이 막힘없이 흘러갔다면 내 삶은 좀 더 가벼워질 수 있었을 텐데, 더 많은 것이 샘솟았을지도 모르는데, 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인생을 흘러가는 삶, 스트리밍 라이프 Strearming Life라고 부를수는 없을까?

 

 

거리에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다섯 시경이 되면 우리도 거리에 나가 사람 구경을 하거나 장을 봤다. 여행안내서엔 이 섬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모두가 모두를 아는 섬' 거리에선 모두가 모두에게 인사를 한다. 차가 멈추면 그것은 인사를 하기 위해서이고 클랙슨이 울려도 인사를 하기 위해서다.

..

라파리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난처해하고 있으면 누군가가 "프레고prego"라고 말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사라진다.

 

 

아내는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특히 여행 같은거 떠날 때는 더더욱 그랬지. 예약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런데 시칠리아 사람들 보니가. 이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 같아."

"이렇게 사는 게 뭔데?"

"그냥 , 그냥 사는 거지. 맛있는 것 먹고 하루종일 떠들다가 또 맛있는 거 먹고."

"그러다 자고."

"맞아,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그냥 닥치는 대로 살아가는 거야."

"가이드북 보니까 이탈리아에 이런 속담이 있대. 사랑은 무엇이나 가능하게 한다. 돈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먹어치운다. 그리고 죽음이 모든 것을 끝장낸다."

"갑자기 뜬금없이 웬 속담?"

아내가 짐짓 딴지를 걸어왔다.

"그러니까 여행을 해야 된다는 거야."

"결론이 왜 그래?"

"결론이 어때서?"

우리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잡담이 거센 바닷바람에 흩어지는 사이, 시칠리아 섬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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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

세상을 관조할 만한 나이가 들어도 잃는 것이 많다. 오늘도 나는 무언가를 잃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할진대 아이들이 어찌 매일 반듯하게 잘 살아갈 수가 있을까 싶다.

 

오늘 아침 큰 녀석이 늦게 일어나 볼은 있는대로 부어 밥도 먹지않고, 안경도 어디두었는지 몰라 찾다가 결국 그냥 나갔다. 어제는 그아이 일터에서 9시간동안 한번도 쉬지 않게 하며 청소만 시켰다고 한다. 아마도 복학때문에 8월말까지 일한다고 하니 많은 일을 시켰던 모양이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화로 넘치는 녀석에게  기름을 끼얹었다. 인생이 어떻고,  돈을 벌기가 쉽니 어렵니 했던 것이다.   묵묵히 들어주고 시간이 지나서 얘기하면 되는데  있는대로 화가 나 있는 아이에게 잔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아침일찍 일어나 저 간편하게 먹으라고 김밥을 싸고 과일을 깎아놓았건만 거들떠 보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녀석이 화를 낸 것은 접어두고 밥을 먹지 않고 간 것 때문에  마음이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오늘도 힘든노동을 할터인데 엄마가 애써 만든 김밥하나 입에 대지 않고 가다니 하고 출근했지만 오후가 되니 다른마음이 들었다.  그래 아침도 굶고 일해보고, 화를 실컷 내다가 실수도 해봐라... 수많은 경험과 실수속에서 지혜를 터득하며 성숙해질 것이다.

 

나의 그때를 돌아본다. 녀석처럼 나도 무던히 엄마 속을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성질을 내고 , 늦게 귀가하고 , 마음대로 행동하고, 동생들은 밥으로 알고....

강산이 몇번 바뀌고 비로소  인간이  되었으나 이제와서도  잃는 것들을 돌아보지 못하며 욕심에 휘둘리고 있다.

 

"많은 것이 잘 지나가도록 자신을 열어두는 사람.."

 

복잡한 세상속에서 모든 어렵고 힘든일이 잘 지나가도록 나를 활짝 열어야 하리라. 항상 감사함으로 환함으로 세상을 관조하며 나를 가꾸어야 할 것이다. 나의 아름다운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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