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에스프레소맨/김도근/북하우스

다림영 2011. 8. 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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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커피 빈은 주변 환경에 따라 산화가 촉진된다. 그래서 습하고 높은 온도는 위험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장마철엔 바리스타들이 온종일 곤욕을 치른다. 아침에 분쇄 굵기를 조절해놓았는데 점심나절이 되면 산화가 촉진되어 커피가 솓아진다. 다시 조절해 놓으면 오후에,그리고 저녁에 , 이렇다보니 어지간한 베테랑이 아니면 분쇄과정 자체를 적응해내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평가하고 길이를 재게 된다. 조금이라도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 상처를 받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모두 상처를 받게 되어 있다. 반응은 한쪽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유효기간이 지난 커피에는 미련을 두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 다가올 사람에게 가장 맛있고 향기로운 커피를 선사하기 위해서.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려면 눈금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라는 형의 신념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바리스타 트레이너로 활동할 때, 나 역시 형의 이 방식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면, '카페 카푸치노 조리 시 ml로 에스프레소와 우유, 우유거품의 비율은 1:1:1.'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집에서 요리를 할 땐 그날 상태에 다라 재료의 양이나 종류가 결정되듯 커피도 마찬가지다. 에스프레소용 커피 빈의 브랜드와 상태에 따라 추출량도 달라진다. 사용되는 부재료의 양을 단정 짓는 게 커피 맛을 오히려 두루뭉술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적정온도에 맞는 풍부한 거품으로 부드럽게 스팀된 우유와, '파케 에스프레소'를 섞어준 커피를 '카페 카푸치노'라고 지도한다. 아주 가끔 후배들이 찾아와서 물을 때가 있다.

 

"선생님은 왜 계량컵 안 써요?"

"너희는 라면 물 부을 때, 언제까지 계량컵 쓸 거니?"

 

해천 형을 못 만났더라면 나는 계속해서 지정된 틀에 맞춰 퍼피를 만들었을 것이다.

 

얼마전 해천이 형은 더 큰 주방의 셰프가 되었다. 최근에 그를 찾아가 그가 만든 이탈리아 음식을 다시 맛보았는데 어머니의 음식을 접한 이등병처럼 반가웠다. 주방 식구들도 늘었고 할 일도 많아졌겠지만 형의 일관된 모습은 다정하게만 느껴진다. 커피도 사람도 서로의 농도를 확인하면서 점점 더 친밀해지는 것 같다. 긴 시간을 통해 숙성되는 커피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삶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그 속을 담아내고 싶다.

 

카페에도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이는 인테리어에서 기인하는 것보다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말투하나, 표정하나, 움직임하나.... 결국 카페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바에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잔에 커피와 정성을 담아내는 바리스타의 몫이다.

나는 간혹 그를 생각하면 초심으로 돌아가 커피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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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아름다운 청년의 책이다.

 

커피의 소비가 굉장하다는 요즘,  나의 친구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고 그녀는 내게 권했다. 얼마동안 그녀의 이야기에 심취해서 시장조사를 해 보았다.  마음만 지니고 하기에는 무리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바리스타 또한  각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얼마전  내 또래의 여자가 바리스타로 있다는 카페에 다녀왔다. 그녀의 팔목엔 붕대가 두텁게 감겨 있었다. ... 직업병임을 알 수 있었다.  <난 특별히 손목힘이 약하다. 조금만 마우스를 많이 쓰거나 해도 금방 이상을 느낀다. 아주 오래전에 글씨를 많이써서 하마터면 손목을 못쓸뻔 했던 적이 있었다. 그후 가급적이면 손목에 무리가 가는 일은 오래하지 않고있다. >

 

제대한 큰 녀석에게 배울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군에 함께 있던 이의 직업이 그것이었는데 무척 힘들다고 들었단다. 특별히 커피를 좋아하고  어떠한 열정이 있으면 모를까 아니란다... 둘째녀석에게 각별한 친구가 있다. 녀석은 바리스타가 꿈이어서 몇년전부터  그 공부를 혼자 해왔다. 가끔 우리집에 친구들을 모이게 하고 녀석은 멋진 모습을 보여준다. 녀석을 보니 그저 나는 입이 벌어져서 나의 둘째에게 친구따라 강남갈 생각이 없냐고 하니, 둘째는 시큰둥 하고 나는 이내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한다.  나의 세 아이들 중에 누군가  아름다운 이 청년처럼 커피속에 푹 빠져서 그 열정으로 삶을 수놓을 아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만 하다.

 

그저 겉모습에만 도취해서 막연한 꿈을 꾸는 이들이 많다. 어느분야에서든 남다른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이리라. 마음만 가득하고 형편은 되지않고 열정도 희미해서 모든 일에 주춤거리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괜찮은 친구들은 평균수명이 길어졌느니 하며 저마다 무언가를 배운다고 여념이 없다. 이대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 무언가에 도전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일을 벌리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닌 것 같아  지금의 일자리에서 어느정도의 수익을 올리며  작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하고 주저 앉는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막연한 걱정으로 하루를 접는 나날이다.  많은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모험을 하다가 좋지않은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를 들어 커피에 대한 막연했던 나의 꿈은 과감히 접지만 책을 들여다 보며 잠시 그 향에 젖고 사람에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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