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저녁의 무늬 /박형준 산문집/현대문학

다림영 2011. 5. 2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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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1966년 전북 정읍출생.인천에서 성장.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

1966년생. 199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家具의 힘>이 당선. 시집<나는 이제 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련다>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 동서문학상 수상.

 

본문 중에서

 

추억이란 그런 것인가보다. 껌종이를 주워 딱지와 바꿀 정도로 냄새에 집착하고, 자장면 냄새를 맡기 위해 사오 리를 쉬지 않고 걷다가 돌아오던 유년 시절 추수 끝난 겨울 벌판의 기울어진 나무전봇대에서 '다방구'를 하면서 우리는 어디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어디까지 도망쳤다가 다시 잡혀서 돌아오고 싶었던 것일까. 바람도 없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꽃잎보다, 구름보다 멀리, 나무전봇대보다 더 크게 자라고 싶었던 우리들.

 

냄새를 찾아 철길에 위태롭게 두 팔 벌려 걷던 아이들은 지금 그들이 갈망하던 냄새의 고장에 무사히 안착했을까. 삶은 누구나 조금씩 비루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날아오르기 위한 갈망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나무전봇대에 싹이 돋는 이유. 생각해보면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는 또한 '별'이란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하늘의 단단한 천장에 박은 못 끝이라고 생각한다. 깊은 밤 이마에 환하게 내려와 있는 별을 바라보면 왜 이유없는 슬픔이 우리의 가슴을 가득 저미는지 그 까닭을 말이다. 왜 그것이 한낮의 싸움 속에서는 보이지 않고 휴식의 고단한 이마에 떠올라오는지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낮이고 나는 목 비틀린 풍뎅이처럼 회전하는 선풍기 바람도 와 닿지 않는 출판사 편집실 한쪽에 앉아, 책상 위에 교정지를 산 더미처럼 쌓아놓고 이상하게 비틀린 문장들의 팔과 다리와 얼굴을 제자리에 이어붙이기 위해, 의사처럼 냉정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그것이 내게 때로 슬픔을 불러일으킨다.

 

 

 

나사렛 땅은 팍팍한 땅이라서 물이 귀하다. 따라서 우물이 깊다. 이 깊음은 수원이 많지 않은 까닭도 있지만, 그만큼 땅 밑 심연까지 닿아있다. 그래서 우물물을 나귀가 긷는다. 두레박 줄은 우물 밑 천길 낭떠러지 아래까지 뻗어있고, 나귀는 두레박 줄을 끌고 하염없이 나사렛 사막을 걸어간다.

 

모든 어머니들은 이 나귀를 닮아있다. 어머니에게 자식은 천길 우물 속이다. 한 동이의 우물을 퍼내기 위해서 어머니들은 평생을 자식에게 매어산다. 나는 최근 몇 년사이 어머니에 대한 시를 많이 써왔다. 그녀와 내가  함께, 한 공간에 있다면 아마 그렇지는 못했으리라.

 

어머니와 나는 시골과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그 관계는 나사렛 나귀와 우물사이 같다.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나를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신다. 그 시간은 아주 잠깐이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그 시간을 위해 평생을 나에게 매어 사신다. 지금은 연로하시고 고생을 많이 하셔서 몸이 남아 나는데가 없어 자주 올라 오시지 못한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목이 메인다. 그녀는 내게서 물 한 동이 긷기 위해 나귀처럼 슬프게 살아오셨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길은 물 한 동이에 목을 축이실 수 있을까. 어머니는 너무 늙으셨고 나는 나사렛 우물보다 더 말라 있다. 그래도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나귀는 노역에 지쳐 쓰러질 때가지 내 곁에 매어 사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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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가랑비가 내렸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니 별스럽지 않은 바깥풍경이 수채화 같다. 오늘도 그 수채화 속으로 나의 현재가  한발자욱씩 천천히 빨려들어가고 있다.

추억에 대한 지은이의 글을 거듭 읽어보며 추억의 그림들을 떠올린다. 산과 호수는  그대로인데 그림속에 머물던  이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다. 그중 다만 누군가라도 나와 같은 마음, 사과한조각만한 그리움이 있다면....

 

*

 

나의 목표 첫째는 아이들 아침을 제대로 잘 먹이는 것이다. 종일 나와있는탓에 한 끼밖에 먹일 수 없다. 세상은 저마다 바빠서 대충 먹고, 정신없이 먹고, 아무거나 먹고 ,무엇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것들을 함부로 먹는다.

어쩌면 그로 하여 전에는 없던 병들이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것이리라. 이러한 걱정속에서 나는 낮고 작은 목표를 정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아침을 잘 살펴 먹이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아무것이나 사먹지 않도록 학교다녀와서 먹을 간식까지 반듯하게 준비해 놓는 것이다. 

 일터에서부터 내일 아침을 궁리한다. 골고루 잘 먹이기위해서 머리를 쓰는 것이다. 종일 밖에 나와있지만 쉴틈없이 집에가면 집안일을 하고  피곤한 몸 아침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힘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훌쩍자라 어른이 되어 다른엄마들과는 조금 다르게 하루를 보내며 저희들만 생각하는 이 엄마를  진심으로 생각이나 해 줄런지 모르겠다. 그런것을 바라며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지은이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고 한다. 나는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목이 메인적은 없다. 마흔여덟에 혼자되어 자식 다섯을 키우셨음에도 도무지 연약한 모습은 볼수 없고 자식을 위해 희생만을 하지 않으며 자신을 위해서 사셨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 막내는 지극정성으로 엄마를 보필하고 또 한녀석은 돈을 잘버는지 아니면 그마음이 효심으로 가득찼는지  때마다 무언가를 들고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의 고명딸인 나는 ....내 자식들 챙기고 사느라 정신이 없어 엄마생각은 도무지 없다. ..언젠가 나도 나도 목이메이도록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는 때가 오리라.  오매불망 자식이 잘 되기만을 기도하는 세상의 어머니들 , 이제 어머니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저마다 자식에게 올인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 그러나 어디 어머니란 이름이 그렇게 쉽게 자신만을 위해 자식들에게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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