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파밭으로 어슬렁 어슬렁/마경덕

다림영 2011. 4. 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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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밭으로 어슬렁 어슬렁/마경덕-

 

 

봄볕이 매워지면

파밭의 눈이 붉어지고 묵은 대파들 탈피를 시작한다  

 

명아주 방동사니 강아지풀 여뀌 망초

덩달아, 입 터진 풀씨들

지 에미 닮아 파밭이 어지럽다

 

곁방살이에 이골난 잡초들

바람에 와르르 흩어지며 구석구석 유언을 남기더니,

한해살이 단명할 목숨들로 밭고랑이 들썩거린다

 

부디 살아서 이름을 내라는 어미의 마지막 소원대로

무명無名으로 십년, 이십 년* 기다린 자식들

어쩌다 봄볕 한 줌 만나

 

출세出世했다

 

해마다

뚝새풀 질경이 쇠비름도 씨주머니 탈탈 털어  짧은 생애를 기록했으니

저 파밭 한 뙈기

받아 적은 유언만 수천만 장

 

노인이 사라진 묵정밭으로 어슬렁어슬렁 봄이 온다

 

*보통 1㎡의 밭에 7만5천개의 풀씨가 잠자고 있는데 물과 온도가 적합해도

햇빛을 못 보면 싹을 틔우지 않고 땅속에서 10년~20년을 기다린다고 함. 

 
출처 : 시와 글벗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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