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것/오정희

다림영 2011. 2. 28.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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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창작의 기술에 대해 말할 때 흔히 쓰이는 비유가 빙산의 원리다 물 위로 드러난 빙산은 대략 전체 크기의 20%정도고 나머지는 80%는 물에 잠겨 있는데 잠긴 부분이 많을수록 안정감이 있는 것은 정한 이치다

 

소설이 힘 있고 감동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그 밑에 혹은 그 안에 몇 배의 정보나 자료, 지식 , 의미망 깊은 사유와 사색들을 보유하고 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결국 보이는 부분은 감춰진 부분들의 힘으로서만 드러나며 부피와 입체감을 갖는다는 말이다

 

이것은 소설에만 적용되는 이치가 아니다. 실제생활에 있어서도 역시 남에게 보이는 부분과 안 보이는 부분이 3대 7, 적어도 4대 6정도라야 품격을 지키고 타인에게는 신뢰를, 자신에게는 안정적인 정서를 주면서 성공적인 대인관계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을  너무  감추다 보면 의뭉하거나 음흉하다는 혐의를 받게 되고,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다 보면 품위를 잃고 경박해 보이거나 자기의 패를 활짝 펴 들고 달려드는 노름꾼처럼 현실적 손해를 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인생경영의 묘는 어쩌면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조화와 균형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인생의 불가해함,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의미를 긍정하고 수용해 가는 과정이기도 한가 보다. 젊은 시절, 나는 프랑스 화가 쿠르베의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라는 사실주의 선언에 쾌감과 공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모르겠는 것, 끝내 나는 알지 못한다, 라는 고백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인생의 아이러니기도 하고 신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성인들의 가르침은,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니 현상적인 것들의 그 너머, 혹은 그 안을보는 일에 주력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세상과 유리되어 오직 기도와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으로 일관된 생활을 한다는 봉쇄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타적인 실제행위가 없는 그들만의 기도생활에 무슨 종교적 의미가 있는가 하고  의아해 하는 내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세상의 불행과 고통의 해소, 평화와 구원을 청하는 그들의 기도는 영성의 샘이며,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종교활동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몇 해 후 나는 어떤 작은 일을 겪으면서 그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들이 대학입시 본고사를 치르던 날은 혹독하게 추웠다 아들이 입시고사장으로 들어간 후 나는 친구와 조계사로 갔다.시험장에 들어간 아들 걱정으로 심란해 할 나를 위해 친구가 하루를 낸 것이다. 나는 특정종교가 없었지만 친구는 독실한 불자였다. 예식에도 신심信心에도 서툰 나 대신 열심히 절을 하는 친구를 따라 시늉을 하는 동안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떠한 결과가 오더라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른바 하심下心이었다

 

 

아들의 마지막 시험시간 즈음하여, 장을 보아 들어가겠다는 친구와 종로통에서 헤어졌다.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의 바람은 매섭게 차갑고 기온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었다 대학정문 앞에서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들을 만났을 때 아들이 말했다

 

 

"마지막 시간이 수학시험이었는데 한 문제도 못 풀었어요. 본고사에서 한 과목이라도 0점이 나오면 평균점수와 관계없이 불합격이거든요. 꼼짝없이 재수를 하게 생겼구나 하고 포기했지요 종료벨이 울리고 백지 답안지를 내렸는데 갑자기 매직아이처럼 끝 문제의 풀이방식이 확 보이는 거였어요. 그래서 조교가 걷어 가려는 시험지를 틀어쥐고 순식간에 풀었지요. 겨우 9점짜리긴 해도 0점을 면한 게 어디 게요."

 

 

그날 밤 친구가 전화를 했다. 아들의 시험에 대해 몇 마디 나눈 뒤 이어 말했다. "너 노심초사하는 걸 보니 네 아들 대학 떨어지면 네가 큰 병나겠으니 어쩌누, 내내 걱정하며 경동시장에 갔는데 웬 호호백발의 조그만 할머니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신문지 한 장 깔고 앉아 미역 다발을 팔고 계시지 않겠니? 이 깡깡 얼어붙은 날에 파파할머니가 길바닥에 나앉은 게 너무 안되어서 할머니에게, 가겟집 안에 들어가 계시라고 하고는 내가 미역을 팔아드렸어 목청대로 소리 지르니 금세 다 팔리더라. 어찌나 기쁘던지. 그 조그만 할머니 모습이 어쩐지 내게는 관세음보살처럼 보이는 거 있지?"

 

나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아들이 수학 문제들과 절망적으로 씨름하고 있을 무렵 친구는 그 추운 시장바닥에서 가난한 파파할머니를 위해 목청껏 호객하며 미역을 팔아주고 있었고, 그것은 바로 나와 내 아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들은 대학에 합격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것이 그 추위 속에서 미역을 팔아 준 친구의 공덕과 기도의 힘이었다고 믿고 있다.

 

책<괜찮아 살아있으니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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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때까지 단 한명의 이러한 친구를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 누군가에게 그러한 친구가 되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아름다움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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