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봄이 더디다. 이곳 산중은 엊그제가 춘분인데도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아 잔뜩 움츠린 채 봄기운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꽃바람이 올라오면 얼음이 풀리고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어김없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바뀔 것들은 바뀔 것이다 사람들도 그때를 알고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바위처럼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한다면 거기에는 삶의 생기가 스며들 수 없다.
계절이 바뀌면 달력만 넘길게 아니라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마련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고정불변, 똑같은 되풀이는 삶을 지겹게 만든다. 현재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나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날마다 새로운 날일 수 있다.
벽에 걸어 두었던 족자를 떼어 내고 빈 벽으로 비워 둔다. 그 빈 공간에 그림없는 그림을 그린다. 그 자리에 무엇을 걸어 둘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넉넉하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운치를 누리고자 해서다.
프랑스의 법률가이자 역사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1830년대에 미국을 돌아보고 새로운 공화국 국민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예상치 못했던 병을 진단한다. 그들은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갖고자 하며,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볼 때마다 괴로워한다. 어째서 그들은 번영 속에서도 그토록 불안을 느끼는가.
우리가 지난날 어렵게 살아온 시절에는 남이 무엇을 가졌다고 해서 그렇게 기가 죽거나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활이 대체로 고만고만해지면서 약간의 차이만 나도 눈에 불을 켠다. 그래서 물질적으로는 비교적 풍요롭게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종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에서도 이따금 삶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토크빌은 말하기를, 프랑스에서는 자살률의 증가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는 자살보다도 광중이 다른 어느곳보다도 심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농경사회를 이루던 그 시절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인간의 도리와 정신적인 평온은 잃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로 불편한 환경에서 살아왔으면서도 그것때문에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거나 인간의 영혼이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전에 비하면 다들 가질 만큼 가지고 있는데도 삶에 대한 회의와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모든 생명이 새 움을 틔우는 이 화창한 봄날에 어째서 멀쩡한 사람들이 생을 포기하고 도중하차하려고 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전도된 가치관의 탓으로 도리기에는 삶이 매우 아깝다.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리는 가난해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처지와 분수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한 부자이다. 이 봄에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법정 .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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