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풍경과 상처/김훈기행산문집/문학동네

다림영 2011. 2. 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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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저 일몰-서해/대부도

 

일몰의 서해에서 소멸하는 것들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하늘과 바다와 개펄에 가득 찬 빛의 미립자들은 제가끔 하나의 단독자로서 반짝이고 스러지지만, 그것들은 그 소멸의 순간순간마다 다른 단독자들과의 경계를 허물어,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빛의 생성을 이루면서 큰 어둠을 향하여 함몰되어간다. 떼지어 소멸하는 빛의 미립자들은 시공 속에 아무런 근거도 거점도 없이 생멸했고, 다만 앞선 것들의 소멸 위에서만 생성되었고, 앞선 것들의 생성 위에서 소멸되었으며, 생성과 소멸의 종합으로서 함몰하였다

 

 

저들의 생멸은 가볍고 유순하다. 저무는 빛의 미립자들은 그 소멸의 한복판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빛의 알맹이 속으로 사라진다. 생멸을 거듭하되, 생멸로 더불어 아늑한 빛의 알맹이들은 아직 어두워지지 않은 시간의 끈을 따라서 수평선 너머로 몰려가는데, 인간인 나는 그리고 역시 당신들은 새롭게 태어나는 빛의 알맹이에 철없이 매달리기 십상이어서, 저 신생하는 빛의 새로움 속으로 사라진 앞선 시간의 빛들과 그 뒷소식을 결국은 챙기지 못한다. 당신과 내가 매달려 있던 저 새로움의 빛들은, 생성되는 순간에, 경험되지 않은 또다시 생성을 위하여 제 실존의 자리를 내주고 소멸되는 것이어서,

 

 

일몰의 서해에서 당신과 나는 우리들이 지상에 건설한 사랑과 노동과 책과 밥과 술과 벗과 적과 꿈꾸기와 꿈 깨기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아무것도 허용받지 못하고, 아무 존재에게도 건너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쥘 수 없고, 아무런 존재에게도 건너갈 수 없으며, 아무것도 쥘 수 없고, 아무런 개념에도 기댈 수 없으리라는 것을 힘들이지 않고 숨결처럼 자연스럽게, 그러나 확실히 알게 된다.

 

우리가 친숙했던 언어들을, 당신과 나의 종으로 태어나 당신과 나의 상전으로까지 출세한 언어들을, 언어의 개념을, 개념의 구획을, 구획의 논리성을, 논리성의 폭력을, 폭력의 편안함을 말이라고도, 말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을 때, 그 박모의 시간은 빛의 알맹이들을 거느리고 어두운 수평선 밑으로 빠진다.

 

인간과 무관한 빛의 알맹이들은 인간과 무관히 저무는 해와 한통속이 되어 대기와 구름과 개펄 위에 풀어지지만, 그것들의 생명을 생성이라고도 소멸이라고도 또는 삶이라고도 죽음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단지 어눌함의 마지막에서, 그것들을 '시간의 빛깔'이라고 말해볼 수야 있겠지만 그 빛들의 생멸은 시간의 끈 위에서 명멸하되 시간이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이어서, 일몰의 서해에서 당신과 나는 아무것도 개념화되지 않으리라는 두려움을 마침내 아늑함으로 혹은 번개같이 난데없는 쓸쓸함으로 받아들이면서, 거머쥘 수 없는 백수의 손바닥을 해풍에 내민다.

 

 

음악을 이루는 시간과 역사를 이루는 시간과 생애를 이루는 시간이 역시 그러하여서 이룸은 소멸의  다른 이름일 뿐, 이룸에 의하여 물들지 않은 시간은 이룸의 밑바닥을 빠져나가 서해로 가고, 밥과 꿈은 빌려온 시간의 셋방 속에서 혈거하지만 시간은 마침내 그것들을 싣지 않는다.

 

삶은 땅에 들러붙기를 열망하고, 착지된 삶은 들러붙은 땅의 괴로움을 떠나기를 열망한다. 정주定住의 습관이 시작된 이래 이 세계의 가죽 위에 돋아난 수많은 건축물들은, 그러므로 인간에게 집이란 무용한 것이라는 역설의 구조를 이 세계의 공간 속에 구축하고 있다. 땅 위에서의 정주를 열망하는 인간의 꿈은 배반과 모순에 가득 차 있다 정주를 향한 그 꿈은 흔히 혁명의 꿈에 닿아 있지만,

 

 땅 위에서 혁명은 아무것도 개혁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정주의 오랜 세월이 습관적 귀소와 제도화된 부동, 인문화된 폭력과 폭력화된 인문 속에 침몰하여 마침내 풍속과 퇘페가 동일한 것임을 일몰의 개펄 위해서 깨닫게 될 때, 저 완강한 것들의 집적을 일컬어 문명이라고 이름짓는 야만행위조차도 일몰의 개펄 위에서는 무력하다. 문명과 야만이 동시에 무력하고 개념의 구획이 풀어지는 저녁 개펄 위에서 자유는 부자유보다 더욱 난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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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오래전 문학회 선생님께서 꼭 이분의 수필을 읽으라고 하셨다. 읽기를 거듭하나 여전히 내겐 어려운 그분의 글이다. 왜 이렇게 잘 들어오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분의 글은 문학이나 특별한 사람들만이 읽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 읽고 다시 읽어보지만 도무지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편안하게 스며들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또 읽어보겠지만 그때는 조금 달라지리라 기대해보며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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