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봄맞이/윤자명

다림영 2011. 2. 2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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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도 옆자리의 불안해하는 몸짓을 알아챈다. 지하철을 처음 탓거나 내려야 될 역에 자신이 없는, 이 도시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틀림없다.

왼쪽 무릎께에 거치적거리는 짐 보퉁이로 눈이 갔다. 보자기로 싼 종이상자 한 쪽 귀로 새파란 돌나물이 쏙 나와 있다. 마치 좌불안석의 주인이 걱정스럽다는 듯, 낯선 주위가 신기하다는 듯이 돌나물은 내 시선을 붙잡는다

 

봄나물을 보니 코가 킁킁거려져서 책을 덮었다. 짐작대로 옆자리에는 나이 지긋한 촌부가 앉아 있다. 봄 들판의 흙내 섞인 바람이 촌부의 옷자락에 묻어 온 듯, 가칠한 바람 한 자락이 스친다.

 

어저게는 봄볕을 받으며 나물을 뜯었으리라. 봄나물을 좋아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손길을 재촉했을 것이다. 돌나물은 눈이 녹자마자 흙이 없는 돌틈 사이에서도 제일 먼저 고개를 내밀고 나물 캐는 여인들을 들로 부른다.

 

묵은 김치에 식상한 입맛을 상큼하게 자극한다. 그 맛은 입맛만 돋구는 게 아니라, 침잠해 있던 마음에 생기를 돌게 한다 겨우내 집안에서 지내느라 뜸했던 이웃마을 총각이 아지랑이 속에 아물거리고, 마음은 벌써 기지개를 켜면서 동구 밖으로 내달리게 된다.

 

돌나물 보따리는 어느 새 지하철 바깥으로 들려 나갔다 아마 역 출구에는 며느리나 딸이 마중 나왔을 것이다. 긴 삼동 회색에 갇혀 있던 마음에 어머니와 봄 보따리는 얼마나 반가울까 그들은 오늘 저녁 식탁에 고향의 봄을 차리고 봄소식을 , 고향이야기를 맘껏 나누리라. 마주앉은 이가 지난 날 단발머리 나풀대며 봄나물을 캤던 추억이 있는 딸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고추장에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서 돌나물을 살살 묻혀 놓고, 뜨거운 보리밥에 달래 넣고 끓인 된장을 끼얹어 비벼 먹는 맛은 아는 사람만이 안다.

볼이 미어지게 떠 넣고는 몸 속으로 스미는 봄기운을 음미할 것이다. 봄철에 나오는 갖가지 나물들이 덩달아 혀끝에 살아나겠지. 유난히 진달래가 많던 언덕배기며 냉이를 찾아 더듬던 사래 긴 밭도 눈앞에 떠오르고, 함깨 나물캐던 동무들 얼굴도 하나 둘 생각나리라. 그 동무들 이제 봄나물 캐지 않고 무엇으로 봄을 맞을까?

 

나도 그네들의 식탁에 함께 앉고 싶다. 봄 이야기에 끼어 들어 훈훈한 봄날저녁을 즐겼으면.....오랜만에 봄 노래 한 소절도 곁들이면 멋진 봄맞이가 될 터이다.

 

나물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지하철이 아닌 기차를 타고 봄 들판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 봄날의 동무들 어쩌면 그 곳에서 봄나물을 뜯고 있을것 같다. 아니면 시장을 찾아 봄나물을 한 소쿠리 사와야겠다 봄맛을 흠뻑 느끼고 심신에 봄을 불어넣고 싶다 입안가득 고이는 풋내음과 함께 의욕이 솟는다.

 

책 <짧은 글 긴 여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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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가족과 함께 산에 올랐다 . 봄이 그렇게 가까이 와 있는 줄도 모르고 집안에서만 웅크리고 지내왔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봄 처럼 환했다. 어떤이는 반팔을 입고 산에 오르고 있었다 . 겨울옷을 입고 나선 산행이 부끄러웠다. 계곡엔 아직 흰눈과 얼음들이 남아있었지만 하늘은 파랗기만 했고 어디선가 푸른싹이 돋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고 미풍은 포근하기 이를데 없었다. 여지없는 봄이었다.

나의 아이들은 억지로 나선걸음이었으나 하산하며 마음이 열렸고 이런저런 엄마의 질문에 대꾸도 하고 웃기도 하며 먹을꺼리 결정으로 즐거운 고민을 해야했다.

 

하루에 십여분남짓이나 될까하는 햇볕을 쏘이는 아이들, 도무지 얼굴엔 핏기도 없고 총기도 없고 툭 치면 옆으로 넘어질것 같아 걱정이었다.  어느텔레비젼 프로그램에서 우리 아이들의 문제점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보게 하였더니 엄마의 잔소리로만 여겼던 일들이 실제의 과학적이야기임을 인정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걸음에 도파민이나 셀류토민인가 그런 물질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는 자주 눈부신 햇살을 만나야 하는 것에 의견일치를 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동안 각자 자신들이 모아두었던 돈을 챙겨 은행기계에 저축을 하며 저마다 열심히 모아야 하겠다는 단단한 다짐을 한다. 자신들의 통장을 직접 만들어 들락거리게 했더니 엄마의 잔소리는 필요가 없어졌다. 봄처럼 따뜻한 일상을 위해 아이들은 열심히 저축을 하게 될 것이다.

 

마트에 들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던 돼지고기를 마음먹고 샀다. 다음엔 너무 비싸서 닭고기를 사야할 것 같았다. 상추와 다소 값이 오른 잘 생긴고추도 챙기고 그동안 마트에 쌓였던 마일리지도 쓸수 있어 즐거웠다.

 

돼지고기에 된장을 넣고 푹 삶았다 . 맛나다는 말을 거푸 외쳐가며 먹는 아이들, 행복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서 봄처럼 시작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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