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본문 중에서
Letter 51
from Florlda
집을 구하러 다닌다는 말끝에 정부 청사에서 경희궁터 사이가 오피스텔로 빼곡하다는 말이 눈에 뜨입니다. 내가 바로 거기에서 매해 몇 달을 지내고 있거든요. 은퇴하고 4,5개월씩 지내던 2000년 대 초에는 강남에서 지냈지요. 헌데 김치수 교수가 알선해 주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동네에 있게 되었지요. 얼마나 좋은지요. 조용하고 음식 걱정할 필요 없이 식당들이 많고, 운치있고, 맛있는 커피 집도 있고, 거기다가 내가 강의 나가는 세브란스 병원도 가까워서 안성맞춤이지요. 나는 할 수 없이 강북이 좋네요. 무엇보다 동서남북지리를 많이 아니가요. 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도 바로 거기였고 대학은 졸업직전까지 서울역 근처였지요.
며칠 전,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엄정식 철학 교수가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안타까운 선종에 대해 이런말을 했어요. '상처 받은 조개가 진주를 품듯, 수난과 질곡의 우리 현대사가 마침내 한 사람의 의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나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의인'의 의미는 서로 좀 다를 지 모르지만요. 그분은 쇠파이프를 잡거나 구호를 외치며 거리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힘든 세월 동안 꼿곳이 변하지 않고'의'의 자리에 중심을 두고 한눈팔지 않는,그래서 그냥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 버림받은 자에게 힘이 되는 그런 버팀목의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톨릭이어서인지, 아니면 멀리에 살아서인지 서울의 한 일간신문이 집요하게 내게 추모시를 쓰라고 독촉을 했지요. 헌데 나는 그 부탁을 거절 했어요. 그 이우는 물론 내가 실력이 없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자격이 없다는 자격지심 때문이었지요. 물론 내가 고국에 있던 60년대 초에는 옳지 못한 권위주의에 대항하다가 쇠고랑도 차고 포승에도 묶이고 두들겨 맞기도 했지만 중앙정보부의 지시가 징역 2년형이라는 귀띔을 받고 아무 소리 안 하고 외국에 나가 살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리고 그것을 수십 년 지켰어요.
그러니 내가 민주화라는 말 앞에 무슨 자격이 있겠어요. 추기경님은 당신을 스스로 '바보'라 칭하시고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지요. 그런 '바보'앞에서 내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에, 인조때의 홍만종이란 분의 글이 있습니다. '춥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게 하며 시장하지 않을 만큼 배를 채운다. 욕되지 않을 것을 영광으로 이해하고 화가 없는 것을 복으로 삼는다'는 말입니다.
윤석군이 자신의 음악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런 시대에 고마운 일이고 존경할 만한 일입니다. 뮤지션이니 인기를 무시할 수 없고 그렇다고 인기에만 목숨을 걸어서는 안 되기에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겠지요.
나는 잘은 모르지만 요즈음 인기 최절정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계속 외마디 가사를 반복하는 단세포적 박자를 자주 듣게 됩니다. 이게 노래인지 무슨 주술인지 아니면 최면술을 걸자는 것인지 어이가 없을 지경입니다. 어떤 노래는 '노바디nobody'란 외마디가 백여 번이나 계속 되는 가 하면 어느 노래는 '미쳐, 미쳐'가 또 백여번 반복되네요. 이런 말초적 자극적 박자만으로 무슨 메시지를 간곡하게 전하겠다는 것인지요. 제발 윤석군은 이런 노래를 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니, 그런 노래를 하느니 음악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내가 안심하고 투정을 하는 것이지요. 노래 가사에 웬 영어는 또 그리 ㅁ낳은지요. 영어 못하고 죽은 조상이 유독 그런 젊은 가수에게 많은 것도 아닐텐데...., 그런 외마디 영어를 부그럽지 않게 외치는 가수들의 아이큐가 의심될 정도입니다. 하기야 말끝마다 피의 순결을 부르짖고 백의민족이 어쩌고 하며 민족을 팔고 있는 족속도 따지고 보면 단세포적 의식의 동물이지요. 아리안족의 피의 순결을 부르짖던 히틀러는 나쁘고, 배타적인 한민족을 외치는 자기들은 괜찮은 것인지, 남이 하면 불륜이고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투지요.
자신의 음악에 계속 의문점을 던지는 윤석 군에게 격려를 보냅니다. 나 역시 자주 내가 가고 있는 문학의 목표점은 어디인지 가끔 의심을 합니다. 그런 것이 내 문학의 반성의 한표출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에서 마종기
Letter 52
from Pusan
이곳 부산은 완연한 봄입니다. 저녁을 먹으면서 얼마 전 동네에서 본 꽃 이름을 어머니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매화가 아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경복궁에 친구가 가서 산책을 하다가 혹시 매화를 본 적 이 있냐고 물어보았지요. 저는 매화를 들은 적은 많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옆집 뜰에 핀 꽃이 매화였던 모양입니다. 이렇게 지금 부산에는 아담한 크기의 매화나무에 꽃이 피고 있습니다. 어제는 제 생일이었고, 그전날 친구들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지요.
훈훈하다 못해 덥기까지 한 날씨였는데 안압지에는 벌서 진달래까지 피어 있더군요. 제가 대학교를 다니던 관악산에도 이맘때면 진달래가 어김없이 피기 시작했는데, 진달래를 보면서 친구들과 철쭉과 무엇이 다른지 한참 이야기하곤 했었지요. 저에게 진달래는 '흐들지게'피는 꽃으로 기억되네요. 철쭉은 단정하고 곱고 깨끗하게 피지만, 진달래는 조금은 투박하고 거칠고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핍니다. 마치 한국화의, 붓으로 툭툭 찍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요. 철쭉은 서양 유화 붓으로 오밀조밀하게 그려놓은 것 같고요.
오랜만의 편지에 꽃 이야기만 잔뜩 썼군요.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한달이 넘어갑니다. 그 사이 집도 구했고, 거의 십여 년만에 처음으로 제사도 모시고, 식구들과 고향에서 생일도 맞았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2대독자이신 탓에 제가 없을 때에 제사는 부모님이 쓸쓸하게 모셨지요. 벌서 십여년이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할머니 제사를 같이 모셨습니다. 친구들도 만나고, 스위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도 들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4월초가되면 새로 구한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오늘 짐을 옮기고, 새로 들어갈 집 단장도 하고, 필요한 것들도 사다보면 어느새 3월도 다 가겠네요. 이사를 하면 새 음반 작업도 시작할 생각입니다. 그 전에 선생님을 뵐 수 있겠네요. 부산의 집에 와서 컴퓨터를 보다가 부모님께서 스크랩해 놓은 선생님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시인으로 살겠다'는 제목의 기사입니다. 문득문득 다시 선생님의 시를 보면서, 저는 얼마나 더 갈고 닦아야 좋은 가사를 쓸 수 있을까 부끄럽기만 합니다.그렇게 창피한 나머지 선생님께 제 기사집도 보내드리지 못하겠네요.
한국으로 돌아오시면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동네에 가서 차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실 때까지 건강하시고, 더 완연한 봄에 뵙게 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부산에서 윤석 드림
루시드폴/본명 조윤석
싱어송라이터이자 공학박사.
1975년 서울태어났으나 해운대에서 보낸 소년 시절 덕분에 부산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늘 '내고향은 부산'이라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는 남학생 중 유일하게 '메조소프라노'를 맡아,고운음성으로 주위읙 ㅏㅁ탄을 자아냈는데 변성기 이후 처음으로 돌변, 잠시 충격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그의 가장 큰 매력으로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꼽힌다.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겨울의 노래>로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락밴드 '미선이'시절엔 첫 음반 Drifting등을 발ㄹ표했으며 지금은 '루시드 폴'이라는 1인 프로젝트밴드로 활동 중이다.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 특히 시를 닮은 노랫말 때문에 '음유시인'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생명공학박사'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과를 전공했고 2007년에는 스위스 화학회로부터 폴리머 사이언스 부문 최우수논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로 했다. ... 그의 저서로는 가사집 <물고기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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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사람들의 일상과 일과 아름다운 그들만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쉽지 않은 편지이다. '사랑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언젠가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다.
그런것 같다 .복잡하고 현란한 세상의 흐름속에 사람은 그렇게 시작과 끝이 한결같기란 오르기 어려운 고지일 것이다.
이책은 어떻게 만들어 지게 된것일까 생각했다. 책을 만들기 위한 편지일까 아니면 그러한 만남이 시작되고 문득 꺼내어진 이야기 일까..
아름다운 시인이고 음악인이므로 그들은 후자일 것이다.
이런저런 일상의 일들 그리고 예술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2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들은 아름다운 가회동에서 만남을 갖는다. 시인의 얼굴도 처음 보았고 잘생긴 음악인의 모습도 처음이었다. 음악도 좋아하고 시도 가끔 읽는 나는 아름다운 이들의 모습을 기웃거린다. 그러면서 내 지난날의 잘못된 생각에 후회를 한다. 때는 늦었지만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오랫동안 지란지교의 우정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빨리 깨닫길 바래본다.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현실에서 이렇게 나만의 시간을 지니며 음악속에서 여유를 찾고 각별한 이들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일 것이다. 어제보다 한결 평화롭기를 또한 그 얼굴 환하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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