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월 7일 금요일
박세일 칼럼
정치권에 때 아닌 복지논쟁이 일고 있다. 야당은 내년 선거에서 복지를 최대 쟁점으로 삼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당도 야당의 보편 복징 대해 맞춤형 복지로 맞불을 놓겠다고 한다.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왜 갑자기 복지정책을 들고 나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내년 선거에서 '재미'를 보기 위해서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거에서 재미 보기'위해 수도 이전을 공약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복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다. 복지는 대단히 중요한 국가과제이고 실은 국가목표의 하나가 국민복지의 향상에 있다. 그런데 국민 복지에는 본래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큰 복지' 이고 다른 하나는 '작은 복지'이다. '큰 복지'란 경제발전이고 고용창출이며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전체적으로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작은 복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무상급식과 같은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일단 경제발전과 고용을 통해 창출된 국민소득에 세금을 부과, 이 세금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정책이다.
인류역사를 보면 어려운 사람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은 '큰 복지'정책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경제발전과 고용창출이 저소득층 복지개선의 최선의 수단이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의 보릿고개, 극심한 실업난, 도농都農격차의 문제도 경제발전과 고용이라는 '큰 복지'를 통해 해결되었지, 소득 재분배라는 '작은 복지'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은 '큰 복지'정책은 세우지 않고 '작은 복지'정책만 가지고 국민 관심을 끌고 선거 쟁점으로 만들려 한다. '퍼주기식'작은 복지정책이 국민을 속이기 쉽고 선거에서 재미 보기 쉽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큰 복지'정책은 선진화이다. 대한민국의 선진경제 진입이 최대의 국민복지이다. 그래야 청년과 노인 실업의 문제도, 중산층 몰락과 양극화의 문제도 확실하게 풀 수가 있다. '작은 복지'는 어려움의 일시적 완화이지 완전한 해결은 안 된다.
오늘의 복지 논쟁에 또 하나의 큰 구멍이 있다. 북녘 동포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민족 복지의 문제가 완전히 빠져 있다. 우리 민족의 3분의 1이 지금 한반도 북쪽에서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실제로는 1인당 국민 소득 500달러도 못 되는 극심한 가난과 절대 빈곤 속에서 산다. 영양실조의 기아 인구가 약 750만명, 전 인구의 30%를 넘는다.
그 결과 청소년들의 평균 키가 남한보다 15cm나 작아졌다. 아시아에서 제일 작다고 한다. 아사자까지 속출하고 잇는 이 비참한 민족 현실을 바로 지척에 두고 , 우리 정치는 우리끼리 나누어 먹는 '작은 복지' 싸움만 부추기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면, 가장 시급히 북녘 동포에게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길부터 찾아야 한다. '부자급식' 할 돈이 있다면 통일 기금부터 모아야 하고, 개혁 개방을 통해 북녘에도 최소한의 민족복지가 실현되도록 적극적 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을 통해 민족복지 문제를 풀고, 선진화를 통해 국민복지 문제를 풀고, 재분배를 통해 서민복지 문제를 풀어야 한다. 모두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일에는 선후와 경중이 있다. 통일과 선진화라는 '큰 복지'가 앞서 나가야 하고 재분배라는 '작은 복지'가 뒤따르며 보완적 기능을 해야한다.
우리나라는 갈 길이 먼 나라이다. 아직 분단국이고 북녘에는 기아와 절대빈곤이 있다. 또한 아직 중진국이고 남쪽에도 어려운 서민들이 많다. 무엇보다 먼저 선진과 통일의 국가전략을 세워 '큰 복지' 해결에 혼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은 어떻게 되든 나만 당선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큰 복지'문제는 내팽개치고 '작은 복지' 만 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많다. 이들에게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당신의 복지 속에 과연 국가 발전의 비전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래서 내년 선거를 각양각색의 복지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망국의 선거가 아니라, 선진과 통일 이라는 '큰 복지'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그리고 그 위에서 '작은복지'문제도 올바로 풀어가는 흥국<興國>의 축제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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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변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의 세태를 지켜보는바 가히 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이러한 모든 일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막막한 현실속에서 아이들과 그리고 부모를 위하느라 허리가 휘어가고
정작 나의 미래는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주변의 노인들이 혜택을 받는 것처럼 나의 미래도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있을지 또한 의문이다.
노인천국이 머지않았다. 급물살로 밀려들고 있다. 각별한 정책들이 시급한 때이다.
집안살림도 그렇다. 있을때 저축하고 모아놓아야 큰 일이 닥칠때 그것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지출이 지금 가장 필요한 지출인지를 파악하고 실행해야 한다.
돈 조금 있다고 이것저것 누리다 보면 분명 펑크나는 살림이 되고 만다.
나라살림이라고 다를바 있을까 ...
오늘도 의료보험공단의 적자 얘기가 실려있다.
신문을 들여다 보면 나오느니 한숨이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온다. 뿌연 미래를 생각하니 암담하기만 하다. '작은 복지'가 대수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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