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2일 조선일보
一事一言
어느 날 한 지인이 행복감을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내게 감사일기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자세히 쓸 것도 없이 '재미있는 책을 빌려준 친구에게 감사하다'라는 식으로 매일 감사할 일 세가지를 쓰면 됐다.
처음 며칠 동안은 도대체 뭘 감사하다고 할지 몰라서 막막했다. 자신에게 억지를 쓰듯 감사하는 마음을 쥐어자며 겨우겨우 세 줄을 채워나갔다. 이런식으로 일기를 써서 뭐가 좋아질까 싶어서 한숨 쉰 날도 많았다.
그렇게 몇 주일이 지나면서 어느덧 감사일기 쓰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재미가 든 날은 세 가지가 아니라 '따뜻한 햇살에 감사하다'같은 사소한 내용으로 열댓가지를 내리스기도 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시들해지기 마련인지라 시간이 갈 수록 감사목록은 늘어났던 반면 감사하는 마음은 점점 얕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식당에서 우동을 먹다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우동면발 몇 젓가락을 건져 먹다 '참 맛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니 느닷없이 감사하는 마음이 솟구쳐 목이 메고 말았다. 이렇게 귀한 음식을 겨우 2000원에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토록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준 식당 분들은 얼마나 감사한가, 농부들은 얼마나 감사한가, 햇빛과 땅과 비는 얼마나 감사한가....
그렇게 우동 그릇엔 온통 감사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마주하던 우동은 온 세상의 노고가 깃들고, 온 우주의 자애로움이 녹아 있는 기적 같은 것이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 마음엔 행복의 근육이 있음을. 단련하면 할수록 더 크게, 가슴 벅차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있음을. -<손혜진.명상작가>
---
나도 감사일기를 써보도록 해야 하겠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얕아질망정 자꾸만 말이라도 글이라도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오늘은 손님이 몇분 계셨다. 아주 사소한 손님들이었지만 다른곳도 다 놓아두고 내게 들리시다니 감사하다.
어제 한 물건이 잘못나갔다. 난 그런줄도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분께서 물건을 가지고 오신것이다. 그분의 아내가 찾아간것인데 마음이 조금 찜찜했는데 이럴수가..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아, 그러고 보니 감사하다. 나의 남편이 살아있다. 나를 돕고 있다.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다. 정말 감사한일이다. 술을먹고 담배를 피우고 제몸을 잘 돌보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하다. 내 곁에 그가 있다.
아이들이 공부를 안하고 있다. 나는 잔소리만 늘어간다. 아, 그러나 아이들은 건강하고 착하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잘난 아이들을 부러워 말아야겠다. 그저 그 아이들대로 나는 감사하다.
친정엄마가 바쁘다. 너무나 바빠 정신이 없는 분이다. 도대체 배우는 것이 몇개인지 알수가 없다. 이젠 내년부터는 조금 덜 바쁘기로 했단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와 조금씩 쉬어가기로 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아 정말 감사한 일이다. 젊은이처럼 대학입시보는 아이처럼 그렇게 살면 삶이 버겁고 지친다. 다행이다.
북한이 뒤로 한발물러났다. 그러나 그 속셈이 또 어느때에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정말 감사한 일이다. 걱정을 많이했다.
나는 오늘도 책 한 권을 다 읽게 되었다. 감사하다. 감사하고 감사하다.나의 환경은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환경이다. 대단하고 굉장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어간다. 어제는 너무나 화가났었다. 참지못했다. 참을 수 없었다. 이제사 반성한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손님께 사과메시지를 보내야 하겠다. 그분이 원하는데로 하는데까지 해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그리고 정중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겠다. 참 다행이다. 화가 이제까지 눌러있지 않아 다행이다. 감사한 일이다. 조금 깊고 넓어진 내가 되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감사합니다.
'신문에서 배우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상<存想> (0) | 2011.01.15 |
---|---|
'큰 복지' 놔두고 '작은 복지'로 국민 속여먹기 (0) | 2011.01.07 |
長壽 (0) | 2010.12.20 |
구안능지<具眼能知> (0) | 2010.12.18 |
문심혜두<文心慧竇> (0) | 2010.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