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중에서
9월 8일 수요일
비 뿌리고, 태풍 큰 피해없이 지나가다
OO 이 아침에 세수를 안 하고 왔다.
오른쪽 볼에 침 자국이 귀밑까지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아주 뚜렷하다.
어젯밤 OO이는 모로 누워 잠을 잔 모양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어울려 논다. 금방 싸우고 울다가도 또 금방 어울린다. 저렇게 크고 작은 갈등을 조절하고, 자기를 고쳐가야 한다. 자기를 죽이고 나를 다른 사람과 세상에 맞춰야 한다. 그게 사회다.
학교에서, 집에서,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행복을 맛보게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왜 학교라는 곳에 모아두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행복이 혼자 잘사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함께 어울려 사는 데 있음을 맛보게 해주어야 한다. 행복을 맛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행복을 찾아 산다. 행복을 찾다가 없으면 행복을 만들어 낸다. 창조적인 삶도 그런데서 나온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 때 삶의 가치가 빛난다. 사람은 죽는다. 죽으면 남는 게 무얼까? 죽음을 생각할 때 사람은 나와 세상앞에 겸허해진다. 어떻게 살아야 삶이 빛날까? 행복할까?
그게 우리 인류의 진보고 역사다. 진보의 개념을 다시 써야 한다. 경제적인 부를 찾는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없다. 안락과 편리한 생활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부르고 그것은 자원 고갈을 부른다. 이로 인해 죽어가는 자연과 인간성을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역사란 인류가 행복을 찾아가는 길의 기록이어야 한다.
10월 2일 토요일
아주 맑음
오늘 아침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맑은 하늘 아래 맑은 햇살 그리고 바람까지 분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한결 청순해 보인다. 빛이 세상의 사물들이 깊이 파고드는 가을이다.
빛이 세상 천지에 발광한다.
어제 종현이 혼낸 것이 못내 걸린다.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대하자. 풀잎에 맺힌 이슬같이, 거미줄에 걸린 물방울 같이, 막 구워져 나온 도자기같이..., 조심스럽게 대하고 정성을 다하자.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내 새끼들인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성스러운 생명, 이 푸른 싹들을 어지 내 맘대로 하겠는가. 물을 주고 쓰다듬어주고, 세상을 위해 훌륭한 인격을 가진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저 살아 움직이는 여리고 어여븐 모습들이라니!
어린이들과 지내는 하루는 지상의 낙원이다.내가 사람을 존경하고 귀하게 대할 때 내 마음도 편하고 나도 귀한 사람이 된다. 품위 있고 품격 있는 인간성도 나에게서 나옴을 알라.
11월 24일 수요일
맑음
잎 다 졌다.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구고 가만히 서 있다. 벚나무 가지를 올려다보니, 꽃눈이 있다. 내년 봄에 꽃이 환하게 피어 날 것이다.
구구단 중에서 아이들이 제일 못 외우는 단은 7,8단이다. 그중에서 8곱하기 8이다. 아이들은 거의 다 8곱하기 8을 63이라고 한다.
어떨 땐 나도 헷갈린다.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열쇠통르 눌러 교실문을 잠근다. 이럴 때면 문득 아이들과 지낸 하루가 떠오른다. 길고 긴 것 같은 하루, 오! 이런, 이 긴 하루 아이들 모두 돌아가버린 텅 빈 복도를 걸어 나온다. 그렇구나! 나는 이렇게 35년을 하루처럼 아이들과 살았구나. 복도를 울리는 내 발소리 를 들으며 계단을 내려가 텅 빈 운동장가에 선다. 아직은 지지 않은 , 그러나 다 시든 국화꽃들이 산그늘에 묻혀 초라하다. 해가, 짧은 11월의 해가 넘어갔다. 운동장가 벚나무 가지들이 앙상하다. '오늘 하루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속으로 묻는다.
12월 9일 목요일
맑음
출근해서 차에서 내리니 아이들이 달려온다. 은희가 숨을 헐떡이며 "우리 엄마가요. 소는 너무 크고요. 닭 사온대요"한다. 어제 은희와 현수가 다섯 과목 다 백점을 맞아 내가 농담삼아 "은희와 현수, 내일 소 한 마리씩 잡아오너라" 했더니 하는 소리다.
아이들도 시험 점수에 매우 민감하고 나도 신경이 쓰인다.
오늘도 OO이와 OO이가 일기를 써오지 않았다. 불러놓고 왜 일기를 쓰지 않았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을 하지 않느다. 그래서 내가 문제를 내기로 해싿.
*문제- 왜 나는 일기를 써오지 않았나? 맞는번호를 말해 보아라.
1.똥배짱으로.
2.선생님이 혹 일기 검사를 안 하고 지나갈 수도 있으니까
3. '혼내면 혼나고 말지 뭐' 하는 심정으로
4. 일기를 쓰지 않은 걸 알고도 그냥 용서할 수도 있으니까
OO와 OO이는 똑같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2번이요!"그런다.
우리모두 다 크게 웃었다.
사람들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을 경계하자. 세상이 그렇다. 무언가를 제안하면 혹시 어떤 자리라도 하나 얻을까 해서 의견을 내놓는 걸로 사람들은 금방 오해한다. 모든 일에 내가 너무 경솔한 면도 있다. 그걸 경계하자. 오랫동안 시골에서 선생님으로 살아서 모르는 면도 있다. 지금부터는 내 '직업'외의 일에는 조심스럽게 행동하자.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이 다른 일을 하려 드는구나'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오늘 일은 정말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이엇다. 세상을 생각하는 것도 세련되지 못하고 너무 서툴면 욕을 먹는다. 사적인 일로 비칠 수도 있다
국어시간이다. 이순신 장군이 죽어가면서 외친 "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를 실감나게 연기하는 시간이다. 한빈이가 이순신 역이고 다은이가 병사 역을 맡았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부하가 "짱군님!" 하며 안타까워한다. 한빈이 왈 "내 죽음을 '말"리지 마라"
아이들이 책상을 치며 웃었다.
12월 12일 일요일
맑음
살을 다 발라버린, 가시만 남은 고기처럼 마음이 앙상하게 초라해질 때가 있다.
12월 18일 토요일
흐림
비 올랑가. 오기는 뭣이든지 와야 할텐데,
날씨가 참 갑갑허고 답답허네, 그냥....
아침에 운동장에 내리니, 아이들이 달려온다. 운동장에서 더 놀라고 해놓고 교실에 들어오니, 다은이 혼자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만화<장금이>다 조금 있으니 은희가 들어온다. 은희는 요즘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내가 살이 쪘다고 하면 싫은 눈치다. 은희가 다은이 옆에 가만히 앉아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다. 둘이 붙어 앉아 있는 모습이 정다워 보인다.
그림 같다는 말이, 그림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모든 그림은 저렇게 숨을 쉬며 살아 있어야 한다. 죽은 것들,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것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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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중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몇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나는 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선생님의 모습이 약간 있기도 했지만 단순히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돈 때문에 직업을 선택했다고 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의 어떤 승진을 위해서 공부를 하느라
아이들 일기장 검사를 남편에게 맡긴다는 얘기를 들었다. 충격이었다.
선생님은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던 나는 선생님들의 생각과 행동
기타 모든 것은 보통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다.
한 권의 일기가 꼭 동화책 같이 느껴졌다.
내 마음이 청소가 되었다.
또한 즐겁기도 했고 많이 생각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김용택 선생님의 아이들은 선생님을 닮아 모두가 어린 시인같다.
자주 그의 글을 접하며 나를 살펴야 하겠다.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춥고 바람시린날 한 권의 일기가 나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한동안 나는 아이들에게 다정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고운목소리로 말을 할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꼭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겠다.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과 선생님의 일기장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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