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윤구병/휴머니스트

다림영 2010. 9. 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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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가난한 어느 나라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닌 것이리라.

주변의 이웃과 비교를 하며 더없이 가난해 지고 있는 요즘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기위해 기를 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거늘 어찌하여 욕심은 자고 일어나면 또 고개를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언젠가 읽은 책인데 나는 또 이책을 읽고 있었다.

참 이상도 하다. 그 많은 책중에 왜 늘 비슷한책을, 읽었던 책을 고르고 있는 것일까...

변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다.

마음이 가는대로 가야지 나를 밀어내며 특별한 것을 찾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보다. 가장 나다운 것이 특별한 것일지도 모른다.

높은 위치에 있다가 불현듯 모두 밀어내고 각별한 삶을  일구어가는 지은이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참으로 어려운 삶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가장 쉬운 삶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은 참말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누구나 선택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이루어 낼 수는 없는 그러한 일...

늘 마음속에 땅을 일구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간간히 하지만 용기가 부족하여 이 자리에 굳은듯이 머물고 있다.

어찌되었든 앞선이들의 삶을 미행하며 공부해야 하리라. 언젠가 그렇게 지내다 보면 무언가를 분명 만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의 환한 웃음을 들여다 보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본문중에서

 

다른 건 다 제쳐놓고 얼마만큼 먹느냐,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는데, 하물며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살면서 땀 흘려 일해서 건강을 지키고, 옛 어르신들 방식 따라 농사지어 땅을 살리면서, 그 건강한 땅에서 나는 농약 때, 화학 비료 때 안 묻은 깨끗한 곡식과 냄새를 제철에 거두어 먹는다면, 우리 모두 얼마나 건강하게 잘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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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가난하고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힘겨운 우리 살림이 초라해 보인다면'제대로 사는 길은 가끔 좁고, 험하고 가시덩굴에 덮여 있는 수가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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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 모습을 돌아봅니다.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을은 깊고 해는 저물어가는데 제 안에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것을 바쳐 섬길 수 있는 생명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 동안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이날 이때까지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한 탓입니다. 바로 이웃에 한 끼 식량이 없어 죽어가는 형제가 있는데 천년만년 살아도 다 쓰지 못할 재산을 쌓아올리고도 모자라 남의 몫까지 가로채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은 죽음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사람들은 좁쌀이나 강아지풀만도 못한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가치로 따지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좁쌀도 강아지풀도 한 알의 씨앗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희셍의 제물로 내놓습니다. 그열매 하나하나는 모두 목숨이 깃을어 있는 생명의 씨앗입니다.

 

생명계의 일원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목숨을 나누어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다른 생명체들을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남도 살리고 자기도 살아남습니다. 저는 지금 해 저무는 들녘에서서 깊숙이 고개 숙인 벼이삭들의 속삭이는 죽음과 부활의 합창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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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끼니가 걱정되는 가난은 원수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하는 가난한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난은 나눔을 가르쳐줍니다. 잘 사는 길은 더불어 사는 길이고, 서로 나누며 더불어 사는 길만이 행복에 이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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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문화'의 유산은 대부분이 미래의 스레기더미로 바뀌고 맙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지을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헐리게 될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생명체만이 미래로 이어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 '기르는 문화'만이 우리 아이들을 품에 감싸 건강한 세상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너무 늦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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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이라느느 말에도 '교육'이라는 말에도 '기른다'<育>는 뜻이 담겨 있다. 식물을 예로 들 때 '기르는 일'은 씨앗을 땅에 부려 씨앗에 숨어 있는 꽃피고 열매 맺는 힘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일이다. 그런데 도시 문명중심의 상품경제 사회는 기르기보다는 만들기에 길들여져서 참된 교육 과정이 어떤 것인지를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도시사회에서 이른바 교육은 기묘한 형태로 일그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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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핵가족 단위의 가정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로 드러나는 과거의 삶이 없다. 부모로 상징되는 현재와 자식으로 상징되는 미래만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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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없는 줄기에서 열매가 맺힐 수 없고, 생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온전한 삶이 꽃피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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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힘겹게, 좀 더 불편하게, 좀 더 가난하게 살면서 너나없이 마음 놓을 수 있는 잊혀진 마을- 이것에 제가 꿈꾸는 공동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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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공동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서로에게 알게 모르게 입히는 상처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만남은 상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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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나야합니다. 만나서 서로 껴안아야 합니다. 상처를 입으면서도 함께 땀 흘려 '정든 땅' '정든 산천'을 다시 일구어야 합니다. 해님과 달님과 별님들, 바람님과 물님과 그 밖의 온갖 임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공생의 세상,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 뼈를 묻어 여한이 없는 행복한 마을 공동체, 기초 생산공동체를 되살려 내야합니다. 이 길만이 제가 살고, 당신이 살고, 온 세상이 되살아나 마침내 '하나'가 되는 길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 당신의 마음에 돋아난 가시를 '뼈아픈 각성의 바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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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서서 혼자 자신안에서 싸워 만신창이가 되는 것보다 더불어 살면서 한판 붙는 게 정신 건강에 훨씬 더 도움이 됩니다. 싸우면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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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깨우침은 고통의 체험에서 출발합니다. 스스로를 해방하고 남을 건지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몸으로 남의 고통을 열 배, 백 배 더 뼈저리게 체험해야 합니다. 이 체험의 길이 백장선사가 이야기 하는 '짓는'길입니다. 하루 지었는데 그것도 죽을 힘을 다해서 지었는데 하루 먹을 수 없을 때 고통은 극대화합니다. 이 극대화된 고통을 관념이 아니라 살로, 몸으로 받아들일 때 부처를 이루는 길이 열린다고 믿습니다. 부처 중에서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미륵불은 민중의 이 극대화한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여 이 더러운 땅을 맑은 부처의 세상으로 바꾸려고 땀 흘려 일하는 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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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사랑은 늘 현재입니다.'사랑했노라'는 말도 빈말이고 '사랑하겠노라'는 말도 헛된 약속입니다. 사랑에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늘 바로 '지금''여기'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저 세상이거나 관념의 공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는 오늘 이 순간이고 지금 이곳입니다. 우리가 뿌리내리고 사는 구체적인 현실이고 더 어렵게 말하자면 '현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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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 언제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이면서 늘 '지금''여기'서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 공용어이자 생명계 공용어는 '사랑'밖에는 없습니다. 그말은 침묵 속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고 말씀하신 분도 예수님이던가요? 사랑이 우리 입을 통해서 나올 때만 지금 여기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때의 '입'은 육체의 일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몸을 지탱하고 움직이는 생명의 기운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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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것이 없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분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더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약속해서는 안됩니다. 경제주의의 해로움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약속은 할 수 있겠지요. '같이 먹고 같이 굶읍시다.' 이 약속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믿음직한 것이 되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합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이 살아야 합니다. 밖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내 살갗을 벗어나서 커지고 힘이 세지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럿으로 갈라져 있넌 '나'가 하나로 뭉치면, 그래서 몸집도 커지고 생각도 넓어지고 힘도 세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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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맞서지 않습니다. 느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일도 나누지만,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낌이 달라서, 뜻이 안 맞아서, 이야기가 안 통해서, 하는 일이 달라서 속상하는 일도 있지만, 마침내는 하나 됨을 위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까닭은 뜻을 '모으기'위해서 입니다. 낯선 말을 쓰자면 행동의 통일을 위해서 이론투쟁을 하는 것이지요. 나는 어느 누구도 내 밖으로 두고 싶지 않습니다. 내 밖에 두어 나와 맞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두와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 바뀌지 못한 구석이 남아 이리 저리 잘도 걸려 넘어집니다.

 

부처님은 팔만사천 번이나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삼라만상들과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겠지요.그러니까 부처님은 말하자면 먹물 중의 먹물, 탁월한 이론가였던 셈인데 사람들이 알고 있는 문제를 같이 머리 맞대고 풀기 위해서 그 많은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윤구병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오고 월간 '뿌리깊은나무'편집장을 거쳐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지냈다. 어린이책 기획자로도 활동하면서 한국 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전집형 어린이 백과 사전을 만드는가 하면, 번역사가 판치던 유아 그림책 시장에서 한국 아이들의 모습과 현실을 담은 창작그림책 시대를 열었다. 그역시 수많은 어린이 그림책의 저자이다.<어린이 마을>,<달팽이 과학동와><개똥이 그림책>등을 보면서 그의 사랑과 노력을 느낄 수 있다.

1995년 대학교수직을 그만두고 전북 부안으로 낙향, 농사를 지으면서 대안교육을 하는 '변산교육공동체'를 설립했다. 20가구 50여명이 모여 사는 변산공동체에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젓갈 효소 술 같은 것을 만들어 자급자족하면서 공동체 삶의 소중함을 배우고 가르쳐왔다.

지금은 변산공동체를 비롯한 모든 일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자연인 윤구병으로 돌아가 거처없는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소망했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지은 책으로는 <조그마한 내 꿈 하나><실험학교 이야기><잡초는 없다><있음과 없음><모래알의 사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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