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희망의 이유/제인 구달/박순영 옮김/출판사 궁리

다림영 2010. 9. 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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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구달

Jabe Goodall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나, 남부 해안에 있는 본머스에서 자랐다. "타잔을 읽으면서 타잔의 애인인 제인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아프리카 밀림을 동경했다. 1957년 아프리카 케냐로 간 그녀는 저명한 고생물학자 루이스 리키와 함께 침팬지연구를 시작했고 1960년 여름에는 혼자 탄자니아 곰베로 가서 야생 침팬지 연구에 착수했다. 1965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행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Gombe Stream Research Center를 설립하기 위해 탄자니아로 돌아왔다. 1975년 야생침팬지 연구를 계속 지원하기 위해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했다.

 

서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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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도취된 그 영원의 순간은 내 인생을 통틀어 신비로운 무아의 경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간이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태고의 먼지가 우연히 선회하다가 바로 그 순간 이끌려 나왔다고 어떻 믿을 수가 있겠는가? 하늘로 치솟은 성당, 그 성당을 설립한 사람들의 집단적인 영감과 신앙, 바흐의 출현, 진실의 음악으로 옮겨놓은 바흐의 두뇌,

그리고 그때 나 자신이 그랬듯이 가차없는 진화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필연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우주에는 인도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다시말해, 하느님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과학자로서 나는 직관적이고 영적이기보다는 논리적이고 경험적으로 생각하도록 배웠다. ..

 

 

본문중에서

 

나는 세상일이란 것이 한때 그래 보였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이란 모호함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홀로코스트는 나를 깊이 동요시켰다 일생동안 나치와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사람이 그런 고문을 견디고 살아 날 수 있었을까? 나는 전생애를 통해 이 질문을 던져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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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동물과 자연에 더 가까이 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내스스로에게 다가갈 수 있었고 점점 더 주변의 영적인 힘과 조화되어 갔다. 자연과 함께 홀로 있는 즐거움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말로도, 갑자기 예견치 못한 순간에 다가오는 아름다움과 영원성이라는 강력하고도 신비로운 지식을 전달해줄 수가 없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지만, 진실로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은 몹시 드물었다. 그 순간들은 예고없이 다가오곤 했다. 희미하게 붉어지는 동틀 녘을 바라볼 때, 푸른 색과 갈색을 띤 거대한 숲의 검은 그늘이나 살랑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한점의 유혹적인 파란하늘을 올려다 볼 때, 어둠이 드리워지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나무 둥치위에 한손을 얹은 채 탕가니카 호수의 부드러운 물 위로 흔들리는 초저녁 달의 반짝임을 바라볼 때, 바로 그 순간 영원한 아름다움을 깨닫기도 하였다.

 

홀로 시간을 보내면 보낼 수록 이제는 나의 집이 되어버린 마술적인 세계와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갔다. 나는 생명이 없는 사물들엑도 모두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의 성 프란치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이름을 붙여주고 친구로서 인사를 하였다. 매일아침 봉우리에 도착해서는 "좋은아침이야, 봉우리야", 물을 들 때는 "안녕 , 개울물아", 머리위에서 바람이 세차게 불어 침팬지들의 위치를 알아내기 어렵게 되면 "아, 바람아, 제발 잠잠해다오" 라고 말하곤 했다. 특히 나무라는 존재에 대해서 깊이 느끼게 되었다. 강한 햇빛을 받아 껍질이 따뜻해진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나, 서늘하고 부드러운 껍질을 가진 어린 나무를 만지면, 보이지 않는 뿌리로부터 흡수되어 머리 위 높은 나뭇가지 끝까지 올라가는 수액을 이상한 직관적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때때로 왜 우리는 인간 선조들은 다른 유인원들처럼 나무를 살 곳으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혹은 우리가 나무에서 사는 영장류로 시작했다면 왜 땅으로 내려온 것일가 등에 대해서 의문스러워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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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번잡하고 물질적인 세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이 이른 시간에 자연의 일부가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침팬지들과 하나가 된 것을 느꼈다. 이러한 느낌은, 그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는 슬픔도 없이 단지 그들과 함께 있을 필요를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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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느꼈던 발견의 즐거움, 서구인의 눈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들을 보는 즐거움,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서 느끼는 평온함, 사람을 위축시키면서도 감정을 고양시키는 세계.

이런것들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나는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갑자기 폭풍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아니라 바로 내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늘은 어두워져 거의 검은빛이 되었고 비구름이 산꼭대기들을 가려버렸다. 주변이 어두워지면서 열대호우가 내리기 전에 종종 있는 고요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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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팬지가 있는 지역동물원들을 방문하여 관리 방식과 사육환경을 살펴보았다. 그러한 방문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침팬지들은 굶주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보살피는 사람과 그 가족들조차 먹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콩고-브라지빌, 우간다, 앙골라의 동물원들에서는 우리가 모은 약간의돈과 그 지역 출신 교포 공동체의 도움으로 좀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

미국과 유럽의 의학 연구소와 실험실의 사육환경은 상황이 더 나빴다. 먹을 것이 충분하기는 했지만 환경 자체가 적막하고 쓸쓸하여 침팬지들은 지루하고 메마른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물 연구에 정부와 산업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는 상황에서, 담당자들이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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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네가지이다. 인간의 두뇌, 자연의 회복력, 전세계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또 타오르게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굴의 인간정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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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에게 "제인, 당신은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를 얻나요? 그렇게 빡빡한 스케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죠?' 하고 물으면, 늘 미소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영적인 힘의 도움을 많이 받는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부분은 제가 만나는 위대한 사람들로부터 오지요."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찾아나서는 여행길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아마도 그러한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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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어요. 마치 사람의 눈을 보는 것 같았지요. 그리고 그 눈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어요.'아무도 저를 도와주지 않나요?"

바로 그러한 눈빛을 나는 아프리카의 시장에 묶여 있는 침팬지들의 눈에서, 서커스 침팬지들의 주름 장식 아래에서, 그리고 실험실 감방의 철망 뒤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고통받는 다른 동물들의 눈에서도 보이는 눈빛이다. 그리고 종족 갈등의 와중에서 부모를 잃은 부룬디 아이들의 눈에서도 보인다. 길거리에 사는 아이들의 눈에서, 도시 한가운데에서 폭력에 사로잡혀 있는 아이들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이 정말로 많다. 슈바이처는 자신의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기도만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자신을 투신할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도 주변 생명들의 영장선상에 있는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는 그러한 눈들을 보게 되고,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게 되어 전투에서 투신하고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여기에 미래를 위한 진정한 희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운명, 연민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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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중요하다고 강조되던 근본적인 가치들, 즉 정직함, 자기통제, 용기, 생명 존중, 공손함, 연민,관용과 같은 것들을 오늘날 많은 어린이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서구의 풍요로운 사회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폭력을 즐기고 온종일 '가상'현실에서 살면서, '진정한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책임감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을 자랄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을 제공할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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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이야기 할 때 나는 그들에게, 우리 각자 모두가 주위의 세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말하곤 한다. 정말 사소한 일들부터시작 할 수 있다.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하거나, 불행한 개가 꼬리를 흔들게 하거나, 고양이가 만족스러운 그르렁 소리를 내게 할 수도 있고, 시들어가는 식물에게 물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보통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때가 많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굶주리는 아이들과 살마들을 모두 도울 수는 없겠지만, 주위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노숙자들,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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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학교에서는 공부만을 위한 수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공부가 전부일까 ...

도무지 인정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을 가끔 보기도 한다. 얼마전에는 엘레베이터 앞에서 고양이를 발로 마구 찼던 여자가 처벌을 받는 이야기를 들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존중하며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 하는 따뜻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주인을 잃은 애완동물들의 눈빛을 차마 들여다 볼 수 없다. 그후 그들의 마음이 짚어지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을 함부로 짓밟는 것은 악한 인간성에 고개가 흔들린다.

자연으로 돌아가 삶을 일구어나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을 배려하며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일일지 모른다.

 

 알수 없는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때를 알수 없지만 언젠가는 영화속의 일들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지구를 사랑하며 오래전 과거의 삶처럼 자연속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아름답게 공존하려면 편리한 생활을 점차  물려야 할 것이다.

 

지은이의 깊은 눈 빛 속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는 어릴때부터 습관되어진 것이었다. 그의 아름다운 눈빛을 기억하며 그 말씀과 함께 한 명절이었다. 좋은사람 좋은이웃 좋은나라가 되기에는 큰 것의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변의 작지만  소중한 생명 하나에도 사랑과 존중을 잊지 말아야 하고 자연을 사랑하며  아픔을 지닌 가까운 이웃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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