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가만히 거닐다/전소연

다림영 2010. 9. 1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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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서

 

자신의 내부를 통해서 외부를 바라보는 일, 혹은 외부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일이 이뤄질 수 있는 시간의 산책은 특별했다. 걸음걸이의 속도, 산책의 속도, 여행의 속도, 삶의 속도... 속도에 대해서 생각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서둘러서 놓치고 사는 것보다 느릿하게 여운을 남기고 사는 것이 삶을 더 풍요롭게 사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서 뭔가 대단한 결심 이 서거나 인새의 큰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곳에서의 조용한 시간이 오랜 잔상으로 남아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이따금씩 나를 토닥여준다면, 그거면 족하다 .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국제결혼을 한 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신혼여행을 갔는데 서구의 남편은 여행을 느리게 즐기는 사람이었다.  한국의 아내는 그를 따르지 못했다. 한 곳을  다 구경하고 나면 어디론가로 빨리 향해야 하는 것이었다. 일정한 시간속에서 여러곳을 다 보아야 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습관인지 아니면 근성일까. 언제나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느리게 삶을 관찰하고 충분히 그 곳을 즐기지 못하며 그렇게 의견차이로 내내 싸웠다는 이야기가 남의 얘기같이 않았다.

<가만히 거닐다>를 빌리게 된 이유는 늘 서두르며 이것을 다 마치고 나면 다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습성에 젖은 나를 돌아보기위해 제목만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은 누군가와 마음을 다해 만날 때면 '사귄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산다'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너를 산다" 그 말이 그렇게 근사할 수 없었다. 그 어떤 표현보다 진하게 들리는 '너를 산다'는 것은 어쩌면 여기가 아닌 그곳을 사는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도시에 가서 사는것. 긴 호흡으로 사는 여행이 불가능하다면 짧은 여행이더라도 일상적인 여행으로 여행의 방식을 바꾸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살았다'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너를 산다'....그리하여 나는 '한동안 그곳에 살았다'...

자꾸만 읽어본다. '어쩌면 여기가 아닌 그곳을 사는 여행의 방식이 될 수 있다는... 낯선도시에 가서 사는.. '

그러니까 너를 산것은 너에게 산다는것.... 너에게 맞추며 너의 방식에 따라 ... 한동안 너에게 살다가 시간이 흘러 어느날 갑자기 나는 이사를 와 버린 것이구나...

 

 

 

 

자전거 한대가 지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여인은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팔 전체를 감사는 팔 토시를 하고 짙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거기에 보태어 그녀의 자전거에는 검정색 우산이 세워져 있다. 그녀는 철저하게 태양을 피하고 싶어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자전거 한대가 또 지나갔다. 그 자전거에도 마찬가지로 우산이 씌워져 있다. 일반적인 자전거가 주는 인상이 수목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것이라면 우산을 쓴 자전거는 예술전용극장에서 오후 1시에 상영하는 영화의 한장면 같다고 할 수 있다. 우산을 쓰고 있는 자전거 덕분에 오사카의 첫인상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8월의 오사카는 맑음이다. 너무도 맑음이다.

 

오사카의 첫인상처럼 지적이고 낭만적인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든 여행이든 겪어봐야 알겠지만 첫인상은 오래가는 법이다.

 

 

 

----사람이든 여행이든 첫인상은 오래 남는것...

그러나 겪어보면, 겪다보면 또 다른 두번째 세번째 각별한 느낌들이  첫인상을 지우기도 할 터...

첫인상 그대로구나...

혹은 첫인상은 그랬는데 점점 만날 수록 좋은 사람이더라...

나는 어떤 사람일까?

....

 

 

 

 

일본에 와서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혹시나 나는 괜한 욕심으로 군더더기 짐을 늘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래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나의 방에는 소통할 수 있는 '창'과 조금 사치를 부려 푹신한 초록색 '의자'가 있엇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겐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려면 부자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자가 되지 못하니 다 버린다.  다만 집과 일터사이를 오가며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찾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한 것은 아닐까. 따뜻한 식탁을 만날 수 있고 조용히 글을 읽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고 튼튼한 팔과 다리가 있고 웃을수 있는 마음이 있으니...

더이상은 모두 꿈일지 모른다.

텔레비젼 속 지리산에 사시는 어떤 남자분이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지금'입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지금을 누리고 있는데 가장좋은 금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으며 웃어야하리라. 행복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만들어야지..그래야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그러면서 무언가 나를 차오르게 하는것 ...그것이 행복이다. 요즘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온전히...

 

 

 

동네를 거닐었다.가야할 곳도, 가고 싶은 곳도 달리 없었기에 늘 다니던 골목을 거닐었다. 거리에 가로등 불빛이 빗물에 번져 이른거렸고, 빗물을 가르는 자동차 바퀴 소리는 시원스레 공기중으로 흩어졌다. 나는 비가 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만해져 있었다. "비 오는 게 왜 좋으니?"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만난 호주 친구 앤드류가 빗소리를 듣고 흥분하던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날도 오늘처럼 갑작스레 비가 내린 밤이었는데 우리가 함께 머물던 도미토리가 꼭대기 층이라 비오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었다. 

 

그 친구의 질문에 "그냥"이라고 대답하고는 밤늦도록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난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무언가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 당신에는 비를 좋아하는데 굳이 이유를 달고 싶지 않았다.

 

..

살다보면 이유를 달고 싶은 날도 있는 법이다. 나는 비오는 날의 선명함이 좋고 선명한 빗줄기를 관조할 수 있음이 좋고 그러다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비가 오니 당신 생각이 나서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다. 좀 더 간결한 이유를 이댜기 하자면, 비는 먼 곳에서부터 온 물기라는것, 그 물기를 머금고 진해지는 냄새와 물기가 대지를 적실 때 들리는 촘촘한 소리에 울렁거릴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비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도 비를 좋아한다. 그냥 비가 좋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한다. 그때의 알수 없는 느낌이라니.. 오늘도 비가 온다. 아침에도 나는 비를 맞으며 거닐었다. 맞아도 괜찮을 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우산을 쓰고 다녔다.

비를맞고 걸으면 기분이 굉장히 좋다. 왜그런지 나는 모르겠다. 그냥 좋으니까 비를 맞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비가 그만왔으면 참 좋겠다. 모든물가가 올라가고 추석이 다가오는데 이러면 안되는 것이다. 농민이 웃지 못하고 서민이 그러하고 나 또한 힘이 들고 있다.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8월달부터 시작해서 이제까지 비가 내리지 않은 주말은 없었던 것 같다.

후..

비가 너무 심하게 내린다. 점점 굵어지고 있다. 어딘가는 또 피해를 입고 있겠다. 난리구나. 이런것이 난리겠다. 없는 사람들이 걱정이다. 한여름장마같기만 하다. 뜨거운 햇살에 익어야 할 모든 들판의 것들인데 ....

 

 

가만히 가만히 책을 넘겼다. 서두르고 빠르게 무엇인가 하려고 하지 말아야 겠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또 나는 돌아와 서두르고 빠르게 앞서나가려 할 것이다. 가끔 하루 중 한번쯤은 느리게 천천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나를 쉬게 하고 그냥 창밖을 바라보고 그냥 친구와 얘기만 하고 그냥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그냥 모든 것을 내버려 두기도 하고 그냥 그렇게 지내기도 해야 할 것이다.

 

가만히  ..가만히 걷는 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가만히 앉아 사람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얼마나 은은한 일인가... 가만히 가만히 오늘도 가만히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육필로 편지를 써야 할 것 같은 날 가만히 가만히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할까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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