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여행

다림영 2010. 9. 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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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31 ESSAY

허숭실수필가

 

인간이 평등하고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은 죽음이다. 노화와 질병, 그리고 죽음은 피하고 싶지만 굳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황혼기에 접어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어떻게 잘 죽느냐'이다. 어느덧 나도 일흔 넘은 노령이 되다보니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채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피부병의 일종인 소양증으로 한 달이나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종합검진을 받다가 담도에 종양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담도암은 지방을 소화시키는 담즙이 간에서 십이지장으로 이동하는 담도에 생긴다. 종양제거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자, 아벚는 한사코 항암치료를 거부했다. "아버지가 치료를 안 받으시면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가족 모두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뜻은 단호했다. 담도암이 예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퇴원후 산책을 다닐 만큼 회복되자 아버지는 회사 일을 정리하고 훌쩍 여행을 떠났다. 달포 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마음의 짐을 풀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동안 사업할 때 도와주셨던 사람들, 고락을 함께했던 회사 직원과 친구들을 만나 고마움을 전했다고 한다. 함께 사업하다가 배신해 당신을 만나길 두려워했던 사람들까지 찾아가 오히려 위로금까지 주고 오셨다고 했다.

 

 

여행을 다녀온 아버지는 손.자녀들가지 다 불러 목사님을 청해 고별예배를 드렸다. 당신의 장례를 위한 준비 절차도 적어 목사님께 드렷다. 아버지는 오남매를 기르며 어려운 살림을 꾸려가느라 고생 끝에 먼저 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당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장남의 아들들을 걱정하셨다. 그 손자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월 일정액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 지분을 공증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까지 팔아 회사에 투자했기 때문에 재산은 오로지 회사 지분만 있었다. 우리 4남매에게도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 시켜주지 못한 게 지금도 미안하다"고 하셨다.

 

 

유언이라며 "베풀어야 할 때는 절대 놓치지 말고 사랑을 나누라"는 말을 남기셨다.

외손자에겐 '선행<善行>'이라는 글을 써 주시고 낙권을 찍으며 당신의 호를 '소세화<小說話>'로 지은뜻을 풀이해주셨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따르기 마련이니, 될수록 말을 적게 해야 한다고 이르셨다.

 

 

항암치료를 포기한 아버지는 여섯 달쯤 지나면서 고통스러워했다.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다는 의사의 진단이었다. 아버지는 병원을 다녀오신 뒤부터 음식을 들지 않았다. 진통제도 먹으면 의식이 몽롱해진다며 거부하셨다. 물 한모금조차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든지 치료를 받도록 아버지께 애원했지만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중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어 6년간 누워 계실 때부터 아버지는 '오래 앓는 것은 가족만 아니라 환자에게도 큰 고역이다. 내가 병들면 생명연장을 위해 애쓰지 말라"고 했다. 음식을 먹지 않은 것은 그 말의 실천인 것 같았다.

 

 

"이제껏 부모님의 말씀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이제 마지막 순간에 와서 아버지 말씀을 따라야 한다니..."마치  '청개구리'처럼 된 우리 형제들은 모두 난감해졌지만, 아버지와의 마지막 배웅만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방의 창을 열라 하시고 조용히 누워계셨다. '욥의 부스럼' 같은 세상에서 75년을 살아오면서 겪었던 기쁨 , 그보다 훨씬 더 많았던 슬픔과 고난을 말하셨다.

아버지는 그동안 생사를 알 수 없던 친척들을 만났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하셨다. 일제 때 독립운동을 위해 고향을 등지고 내몽골에 간 아버지 일가들이 있었다. 이산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어찌 그런 재회의 기쁨을 실감할 수 있으랴. 아버지는 일흔 되던 해에 그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삶에 대한 애착과 희망을 미련없이 버리고, 저승사자가 먼저 덤벼들기 전에 저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아버지의 안색을 점차 노랗게 변하고 눈자위는 깊어만 갔다. 아마도 아버지는 청년 시절 내몽골에서 말을 타고 달리던 때를 꿈꾸는 듯 했다. 내몽골에서 태어난 아버지, 그리고 해방 후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 넷이서 함께 돌아온 고국, 공무원으로 일하시던 시절, 일가친척 하나 없이 평생 외롭게 살며 명절때면 눈물짓던 날들....

 

 

엷은 미소가 어린 아버지의 얼굴은 더없이 평화로워보였다. 보름 동안 곡기를 끊으신아버지의 몸은 어린아이같이 가볍고 조그마해졋다. 아버지는 고이 잠든 아기처럼 우리들의 팔에 안겨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셨다.

 

 

수의를 준비하지 말라고 하신 아버지의말씀에 따라 베로 온몸을 정성스레 감싸드렸다. 아버지는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디아스포라의 삶을 내려놓고 영원의 본향으로 돌아가셨다. 벌써 16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존엄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신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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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분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계실 때에는 더욱 맑게 사셨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부자나 가난한이나 모두가 똑 같은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욕심으로 물이들고 있다.

때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것도 참 중요하겠지만

하루하루를 열고 닫으면서 언제나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주변의 모든 이에게 마음을 베풀고 산다면 후회하는 삶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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