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한국사회에 외치는 '탈북자들의 수기' 중에서..

다림영 2010. 8. 2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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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20

안용현 기자..

 

의사축신인 탈북자 C씨는 "북에서 잘 사는 간부들의 집을 도둑질할 때는 '조절한다'는 용어를 쓴다"고 말했다. 함남 홍원군의 한 절도범은 군당 책임비서의 집을 '조절'해 창고에 있던 컬러TV5대중 2대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피해자인 책임비서는 자기 집에서 컬러 TV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C씨는 "가진놈은 많이 가지고도 탄로 날까 두려워 도둑맞고도 도둑맞았다는 소리를 못하는게 북한"이라고 썼다. 간호사 출신 탈북자 D씨에 따르면 마취약이 없어 18살 병사는 맨정신으로 6시간의 개복開腹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 어린 병사는 "선생님 저 18살입니다. 그만하면 많이 살았습니다. 지금 죽어도 좋으니 배를 봉합해 주십시오" 라고 애원하더라는 것이다.

 

콧물도 얼어버리는 북한추위에도 그 병사의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탈북자 E씨는"북한 법관들은 돈이 없어 뇌물을 주지 못하면 '너는 이때까지 뭐하느라 돈도 못벌었냐.X대가리 같은새끼'라고 욕을 한다"라고 했다. 북에서 법관의 수임은 누가 돈 많은 죄인을 담당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돈만 있으면 유죄 有罪도 무죄無罪가 된다는 것이다.

 

북송된 탈북 여성은 낙태주사 맞고...

탈북자 F씨는 혜산보위부에 갇혔을 때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임신부를 만났다. 그는 "9개월째인 임신부는 한밤중에 불려나간 뒤 3-4시간만에 돌아왔는데 울기만 한다.병원에서 낙태주사를 맞았다는 것이다. 얼마 뒤 남자 아기가 시커멓게 질려 죽어서 나왔다. 알몸의 아기를 내보낼 수 없었던 임신부는 때묻은 러닝셔츠를 벗어 아기를 싸주었다. 그리고 고무대야에 담으려는 순간 참았던 분노를 쏟으며 울었다. 그러나 보위부원은 '중국종자'운운하며 임신부의 뺨을 때렸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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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아이를 날때였다. 나는 아이를 낳느라 12시간이상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가진돈이 전무할때였다. 자연분만밖에 할 수 없었다.

수술을 해달라는 소리를 나도모르게 외쳤다.

18살 북한병사의 말처럼 죽고 싶기도 했다.

많은 조취를 취하고서도 죽을만큼의 고통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고통을 재워줄 약품과 고도의 의료장비와 의료진들속에 병원으로 향할 수 있다.

 

 

기가막힌 그곳의 풍경이다.

병원이 병원이 아니다. 차라리 그 소년의 말처럼 죽는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무슨희망이 있어 살고자 할까 싶다.

죽음을 무릅쓴 탈북이 이어진다.

요즘며칠 북한에 대한 뉴스가 지속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굶어서 헤매는 꽃제비가 카메라에  잡혔다.

몰골이 몰골이 아니다.

한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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