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배우다

압류 현장에서 만난 아픔들

다림영 2010. 8. 1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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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8/12일 목요일

 

기원섭 -전 서울남부지방법원 집행관.법무사

 

"똑,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쾅! 쾅! 쾅!"손바닥으로 세게 두드려도 마찬가지엿다. 함께 간 열쇠 전문가에게 강제로 문을 열게 했다. 현관에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엉거주춤하게 바닥에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 , 왜 문 안 열어줬니?" 머리가 맨머리여서 남자 고등학생인가 싶었다. "미안합니다. 힘이 없어 말은 안 나오고.... 기어 나오느라 늦~었~습니다." 들릴락말락한 소리였지만 목소리가 여자였다. 핼쑥해 보이는 얼굴에 머리도빡빡 깎아 병색이 완연했다. "전 집행관<옛 집달리>인데요. 아주머니, 어디 아프세요?" "예 . 대장암 말기래요. 집을 빨리 비워드리지 못해..."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겨우겨우 입을 떼가며 죄송하다는 말만 거듭했다. 거실이 딸린 방 두칸에 화장실 하나인 15평짜리 다가구 주택에 사는 그녀는 월 20만원 월세를 못 내 전세 보증금 500만원까지 이미 까먹어 집을 비워줘야 할 처지였다. 인형공장을 하던 남편은 중국산 싸구려 제품에 밀려 부도를 내고,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다가 6개월 전에 집을 나갔다고 했다.

 

고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딸마저 돈 벌겟다고 집을 떠나 혼자서 산다고 했다.

애처로워 보이는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이런여인 앞에 집을 비워달라고 왔으니.... 내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여겨져 오히려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주머니, 집을 곧 비워주셔야 하는데, 어디 가실 데는 있어요. 주인에게 잘 말해보세요. 집주인도 인정은 있을 거예요." 그렇게 고개 돌리면서 난 이 집에 두 번 다시 오게되지 않길 빌었다.

 

 

"도대체 신은 있는 것입니까. 생명이 꺼져가는 이 가련한 여인을 어찌 팽개치셨습니까..."아무나 붙들고 그렇게 묻고 싶었다.

고통과 상처를 극복해야 빛나는 인생이라고 하지만 , 불행이 사람들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지만 평생을  그늘 속에서 사는 이들도 많은 게 현실이 아닌가.

그후 난 그곳을 다시 찾지 않았다. 내가 간절히 바랐던 대로 그 여인은 집주인에게 매달려 도움을 받았던 것일까. 아니면 그 사이 그연인의 명이 다한 것은 아닐까. 지금도 그 여인의 휑한 눈빛이 떠오르면 나 혼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검찰 수사관 30여년을 마치고 내 스스로 선택한 집행관의 길이지만, 때론 마주치지 않고 싶은 자리도 많았다. 내가 집행관이 되어 만났던 그 수많은 군상들.... 사업자금으로 빌려간 500만원 때문에 수십년 쌓아온 우정을 허물어뜨리고 원수가 된 사람들. 유산 때문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변한 친 형제들, 인생은 서로 상처를 내고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 모든게 바로 우리 서민들의 얼굴이고 삶이었다.

 

 

집행관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직업'이다.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있어야 할 일이 생기고, 세상살이가 어려울수록 돈 버는 그런 직업이기 때문이다. 집행관을 악마처럼 여기면 뜨거운 라면 국물을 내 얼굴에 끼얹던 할아버지. 집 곳곳에 압류딱지를 붙이자 우는 어머니를 달래며 두주먹 움켜쥐고 달려들던 어린아이들...

 

 

그러나 날 선 다툼의 현장에는 강제로 압류딱지를 붙이고 집에서 쫒아내는 그런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다. 오히려 서로 슬픈 상처를 보듬고 서로를 이해하는 그런일도 자주 만난다.

신혼부부에게 월 50만원의 사글세로 20평  아파트를 임대했는데, 단 한 번도 사글세를 내지 않아, 제기된 소송 판결을 강제집행하러 간 날이었다. 공기업에서 정년퇴직했다는 아파트 주인인 60대 남자와 함껨 아파트 에 들어서자, 혼자 집에 있던 30대 초반의 여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 전화를 왜 한번도 안 받았어요?" "돈이 없는 주제에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그런데 갑자기 집 주인은 살림살이 들어내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 주저하는 이유를 곧 알아차렸다.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놨어요?" "그냥 나가야지요. 방법이 있겠어요?" "아내, 내 말은 시간을 주면 해결 할 수 있냐고요?" 그말을 듣자 그 여인은 갑자기 "아, 예, 한 달만 시간을 주시면 밀린 돈을 내든지, 저희가 스스로 이사가든지 하겠습니다"고 힘을 내 말했다. 그 여인은 친정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바람에 돈 없이 살림을 차려 그만 이 지경이 됐다고 했다. 집주인은 그렇게한달의 말미를 준 뒤 나에게 이런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저렇게도 세상 사는 이치를 모르는 것들이.... 다 부모들 책임이지. 나도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오늘 집행 비용은 제가 다 부담하겠습니다. 쟤네들, 그 돈의 의미를 알 날이 오겠지요" 나는 그 순간 그를 보며 참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서글픈 '집행관 생활은 어쩌면 남의 작은 행복을 앗아갔는지도 모른다. 빚더미에 앉아 갈 곳 마저 잃은 서민들과 만나는 그런 날이면 나도 이 직업을 포기학 싶은 때가 많았다. 그러나 4년간 집행관을 하면서 손쉽게 법원 판결을 내세운 강제력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위로나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격려가 때론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살이가 어려울수록 ,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닫히고 막힌 마음을 열어, 서로의 마음들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은 행복은 작은 마음으로 짓는다는 믿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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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친구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를 구경했으면 하고 전화가 왔다. 이유를 물으니 우리동에 있는 아파트 를 경매로 샀는데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양한지도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집인데 어떤사연으로 경매에 넘어간 것인지 그 집의 주인이 더 걱정이 되어 몇며칠 무거운마음이었다.

 

아이엠에프때보다 더 많은 경매물이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났지만 아파트는 분양이 다 되지도 않았고 벌써 경매물건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가장들이  사업의  위기로  집을 떠나고 가족이 흩어지고 경매로 혹은  그 비슷한 이유로 오갈데가 없는이들이 어느때보다 많다고 한다.나 또한 남편이 사업에 손을 놓고 간신히 가게를 꾸려나간다.  자영업자가 아니라 비가오면 하루 공을 쳐야 하는구나 하며 창밖만 바라보아야 하는 일용직으로 하루를 사는 것 같기도 하다.

내야할 것은 꼬박꼬박 어김없이 돌아오고 들어오는 돈은 이상한 여자 춤을 추듯 짐작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친구는 경매로 집을 싸게 사서 좋겠지만 나는 잘 사는 친구에게 어떤 좋은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날 부터 친구와의 알수 없는 거리가 느껴졌다.  내 형편이 좋으면 때로 전화를 하여  저녁도 하고 술도 함께 나누자는 말을 건네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전화를 하지 않으니 상대방도  전화가 없다.

알수 없는 그러한 간극이 생기면서 친구도 그 누구도 형편이 비슷하지 않으면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나날이다.  

 

그러나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새삼  깨닫는다. 친구를 생각한다던가 술한잔 밥 한끼 이런 사치스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절망의 늪에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다.  조그만 방에  세를 들어 살다가 또 더 아래로 내려가라하면 어디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던 여자 아이들이 죽어가는 엄마를 두고 돈을 벌러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나라에서는  그런 집의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당장 이렇게 절망적인 낭떠러지에서 꼼짝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어야 하는 이들을 돌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지금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밤을 보내고 있을까?....

 

새로뽑힌 교육감들이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며 아이들의 무료급식을 가지고 운운하고 있다.  지금 그것이 문제인가 왜 모두가 무료급식에 목을 메고 있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비슷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되어 마음이 이만저만 무거운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가진이들의 넉넉한 인심으로 그들이 다만 얼마동안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죽음같은 나날이 이어질 그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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