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무엇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김용택

다림영 2010. 5. 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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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다 돌아간 운동장은 적막하다. 텅 빈 운동장에는 햇살들이 정직하게 내리쪼이고 한쪽은 벌써 산그늘이 내렸다. 아, 저 적막한 산그늘, 운동장 끝에 걸린 호수의 물이 깊어졌다. 농사철이라 물을 빼고 있는 모양이다. 운동장 가의 언덕에는 진보라색 꿀풀꽃들이 한창 피어난다. 꽃송이를 쏙 뽑아서 꽃끝을 쪽 빨면 꿀같이 단 물이 나온 데서 이 풀꽃 이름은 꿀풀꽃이다.

 

 

산그늘에 덮인 꿀풀꽃은 참으로 서늘하다. 꿀풀꽃뿐이 아니다. 산그늘에 덮인 토끼풀꽃은 얼마나 깨끗하게 희고, 늦게 핀 씀바귀꽃은 얼마나 샛노랗게 그 자태가 아련한가. 이렇게 산그늘이 내린 운동장을 나는 어슬렁거린다.

 

 

 

학교 뒷밭에 언제 심었는지 옥수수가 나박나박 자라서 제법 잎이 휘어졌다. 나무막대기에 기댄 고추도 땅맛을 알았는지 몸을 비틀며 추스른다. 그밭 아래 하지감자꽃이 하얗게 피었다. 그 밭 가운데에 있는, 잎이 필 때를 가장 좋아한다. 역광을 받은 작은 감잎은 황금색으로 현란하게 빛난다.

 

 

 

나무들이 잎을 새로 피우는 것은 시인이 시 한 편을 새로 쓰는 것과 같고, 역사를 새로 쓰고 나라를  새로 세우며 정부를 새로 다듬는 것과 같다. 지는 해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던 감잎이 이제 짙은 녹색으로 완전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의연하게 서 있다. 감나무에 곧 감꽃이 피겠지?

 

 

제 모습을 맘껏 그린 나무들이 이룬 6월의 산은 또 얼마나 장엄하게 저녁을 맞고 있는가. 그 산자락 마을에 나이 드신 농부들이 흙을 뒤집어 쓰고 들판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 길을 가다가 나이 드신 농부의 부부가  경운기 가득 파란 모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난다.

 

 

 

어렵고 힘겹게 같은 모습들을 보면 나는 정말 목이 멘다. 나도, 세상을 알 만큼은 안다. 오,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의 저 힘겨운 수고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 날이면 날마다 터지는 저 부끄러운 정치권력들의 추태가 저 산천의 아름다움과 우리들의 늙으신 어버이들에게 무엇인가. 허리 굽혀 땅을 파고 농사짓는 사람들을 외면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타락하고 더러워졌으며, 인간들은  부끄러움을 잃었다.

 

 

 

해지는 산 아래 감나무의 옷을 보지 않으니, 옷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고, 들과 산과 언덕에 피는 작은 풀꽃들의 어여쁨과 빛나는 아름다움을 보지 않으니, 손과 얼굴과 몸에 추한 것들을 치렁치렁 달고 다니며 뻔뻔 스럽게 으스댄다.

 

 

저 우거진 산밑 들에 나가, 뜨는 해와 지는 해 아래의 아름다운 나뭇잎들과 풀꽃들을 보라. 옮겨 앉은 땅에 뿌리를 내리며 푸르러지는 논의 벼들을 보라. 저 산의 나무와 저 언덕의 풀꽃과 저 들판의 곡식은 무엇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가.

 

 <한국의 명수필 2>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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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화려하고 대단한 것들이 아름답고 좋은 줄로만 알았다.

그것만을 향해 위로만 오르고  땀을 흘렸다.

언제나 옆에 있고  작고 흔한 것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다.

 

 

노인에게 친절하고  이웃에게 정겨운 인사를 나누는 일....

아이들과의 사소한 약속을 지키고 순조로운 오늘에 감사하는 일....

가족을 위해 따뜻한 한 끼의 밥상을 차리는 일....

때로는  이름모를 풀꽃에 눈을 맞추고 

파란하늘을 올려다 보고 오솔길을 걷는일....

 

나는 이제 알았다.

너무나 미미해서 흘리는 것들 속에 

단단함이 깃들어  있음을

세상을 눈부시게 만듦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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