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안양사람들의 문학회였다. 창간호다...
엊그제 같기만 하던 나의 문학회가 떠올랐다.부족하지만 열의에 가득차 하루하루 글쓰기에 몰입했었다. 몇권의 문학회 책도 내었었는데 아쉽기만하다. 그때의 그 벅참이란.... 그모든 것을 잊고 글쓰기는 이어가고 있는지 그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손을 놓고 나니 마음은 늘 있으나 글쓰기에 몰입이 되지 않는다. 그저 책읽기가 전부가 되고 말았고 그냥 적어보는 일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차 한잔 하실래요?/김말희-본문 중에서 -
거리에 낙엽이 뒹굴기 시작할 무렵이면 가을이 깊어간 것을 느끼게 된다. 쏴 하게 물결 빠져 나가듯 나무들도 잎사귀를 한꺼번에 털어내 버리면 빈 가지가 허름한 곳간 옆에 세워둔 사다리처럼 높이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어디선가 낙엽태우는 냄새가 코를 간질이고 사그락 사그락 낙엽 슬어 모으는 소리도 들린다.
한때는 도시 정책으로 가을 정취를 도심에서도 느껴보라고 뒹구는 낙엽을 쓸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다. 수북하게 갈잎 쌓인 길을 걸으면 바스락거리는 가을 소리가 들린다. 소리에서 계절을 느끼게 되면 저절로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집중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바람이 지나갈 때 마다 휘날리는 낙엽, 그 낙엽을 감당하지 못해 짜증나듯 쓸고 있는 경비아저씨를 보고 있자니 공연히 답답해졌다.
"뭐 하러 낙엽을 쓸어요, 그냥 두시지요."
슬쩍 한마디 하고나니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부아를 돋운 건 아닌 지 마음이 쓰였다. 내 성격이 사람들을 곧 잘 맥 빠지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자기생각만 하는 것이라고 핀잔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리나케 집에 올라와 달여 놓은 차 한 잔을 타다 경비실 앞에 내려놓았다. 싱긋 웃으시는 경비아저씨의 표정에서 좀 전과다른 느긋함을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을이 되면 왠지 향긋한 차가 그리워진다. 누군가 '차 한잔 하실래요?'하며 말을 걸어 올 것도 같다. 그러면 쓸쓸해지기 쉬운 마음 한 켠에 빨간불이 켜질 것도 같다.
신혼 때 살았던 집 거실은 두 사람이 살기에 너무 넓어 안온한 온기가 없었다. 더구나 난방이 들지 않는 마루로 된 거실이라 찬바람이 불면 어디서 들어왔는지 거실에도 한데처럼 추웠다. 그 썰렁함은 부모님을 떠나온 허전함만큼 크게 느껴졌다. 전기난로를 켜 보았지만 찬기는 가시지 않고.... 그런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아버님께서 석유난로를 사 오셨다
하고 많은 난방기기를 두고 왠 석유난로인가 싶어 심드렁해진 내 모습을 읽었는지 석유도 한가득 넣어주며 불 켜는 방법까지 일러주고 따뜻하게 보내라며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한동안 난로를 지피고 끌 때마다 석유냄새가 싫어 사용을 꺼려했는데 추위가 기상이변으로 삼한 사온을 지키지 않고 일주일 가까이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별 수 없이 석유난로를 저녁마다 켜 놓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난로의 불꽃이 조금씩 온기를 더해 갔고, 난로위의 주전자에서는 보글보글 물이 끓어 집안의 습도를 조절해주고 썰렁한 분위기를 훈훈하게 채워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석유난로에 친숙해 질 즈음 주전자에 생강과 대추, 말린 귤 껍질을 넣어 끓여 보게 되었다.
맹물만 끓일 때보다 주전자에서 퍼져 나오는 향기도 한 몫을 해 집안 분위기가 여간 운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전자의 물이 반쯤 줄어들어 찻물이 진해질 즈음이면 밤도 깊어가서 난롯불을 소등할 때가 된다. 진해진 차에 굴 한 스푼을 넣어 남편에게 건네주면 낮 동안의 피로가 말끔히 가셔진다고 좋아했다.
그때부터 습관처럼 찬바람이 나면 생강과 대추를 챙긴다. 요즘은 계피를 넣어 향을 좀더 강하게 해서 끓인다. 아이들에게도 한 철 내내 이렇게 해서 먹이다 보니 감기도 덜 걸린다.
요즘에는 웰빙이라면서 커피보다는 몸에 좋은 우리 차를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치자차, 인삼차, 국화차 등 그 종류도 다양하게 많다. 그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추와 생강 그리고 말린 귤껍질과 계피를 넣은 차만큼 향긋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차 맛이 아직은 내게 익숙해지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겠지만 신혼을 보냈던 석유난로 위에서 끓던 그 향긋한 추억 때문은 아닐까.
나뭇가지들의 울음소리가 윙윙 들린다.
마지막 잎새 하나가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 있을 것 같은 차가운 계절이면, 내 집 거실에는 매콤하고 달큰한 향이 피어오른다. 그 향기와 더불어 빨간 불빛 속에 모락모락 서리던 김, 어느 시골 작은 구벙가게에서 밤늦도록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며 피어놓은, 가느다란 불빛이 유리창 너머로 새어나오는, 풍경 속에나 있던 석유난로의 모습도 함께 피어오른다.
피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소박하지만 따스한 차 한 잔 건네주는 마음, 그 여유로움이 생겨나는 차를 끓인다. 석유난로의 뭉근한 끓임이 아닌 까닭에 그 때처럼 깊은 맛을 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해 보기도 한다.
주방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들린다. 어느 틈엔가 계절의 향기에 나보다 먼저 젖어든 남편이
"차 한 잔 하실래요?"
휘둥그레진 내 눈 속에 붉은 찻잔과 함께 향긋한 차 향기가 어느 새 신혼시절로 돌아가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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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내리는 비는 농사에 꼭 필요한 비라고 한다.
미소를 띄운 얼굴로 가을의 풍년을 기도하며 분주할 농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날 나같은 자영업자들은 어쩌면 날씨 탓을 하며 흐린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오는 날의 공식은 언제나 어김없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는 비는 또 다른이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모두가 공평하게 좋을 수 많은 없는일이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조금 깊게 나를 살필 수 있는 날이 되기도 하니 감사하다.
모든이들이 빠져나간 농촌도 아니고 도시도 아닌 이곳의 거리는 조용하기만 하다.
누군가 나를 방문하면 나는 환한 얼굴로 그의 방문목적을 물어보기 전에 ' 차 한잔 하실래요?' 하고 물을 것만 같다. 그러면 오늘의 흐림은 문득 사라지고 좋은 친구 한 분 만나 환한 일과가 펼쳐질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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