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텅 빈 충만/법정

다림영 2010. 5. 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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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큰절에 우편물을 챙기러 내려갔다가 황선 스님이 거처하는 다향산방多香山房에 들렀었다. 내가 이 방에 가끔 들르는 것은, 방 주인의 깔끔하고 정갈한 성품과 아무 장식도 없는 빈 벽과 텅 빈 방이 좋아서다.

 

 

이 방에는 어떤 방에나 걸려있음직한 달력도 없고 휴지통도 없으며, 책상도 없이 한 장의 방석이 화로 곁에 놓여 있을 뿐이다. 방 한 쪽 구석에는 항시 화병에 한두 송이의 꽃이 조촐하게 꽂혀 있고, 꽃이 없을 때는 까치밥 같은 빨간 나무 열매가 까맣게 칠한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곤 했었다.

 

 

물론 방 이름이 다향산방이므로 차가 있고 차도구가 잇게 마련이지만, 그것들 또한 눈에 띄지 않는 벽장 속에 갈무리되어 있다.

 

이 방 주인이 하는 일은 관음전觀音殿에서 하루 네 차례씩 올리는 사중寺中기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아주 힘든 소임이다. 이런 힘든 소임을 1천일 동안 한 차례 무난히 마쳤고, 작년부터 두번째 다시 천일기도에 들어갔다. 기도 중에는 산문 밖 출입을 일체 금하는 질서를 스스로 굳게 지키고 있다.

 

 

송광사에서 5,6년 에 걸쳐 도량을 일신하는 중창불사를 별다른 어려움과 장애 없이 원만히 진행하게 된 것도, 그 이면에는 이 방 주인과 같은 청정한 스님의 기도의 공이 크게 뒷받침되었으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런데 오늘 이 방에 이변이 생겼다.방 안에 화로도 꽃병도 출입문위에 걸려 있던 이 방의 편액도 보이지 않았다. 빈 방에 덩그러니 방석 한 장과 조그마한 탁상시계가 한쪽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웬일인가 싶어 방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았더니, 새로운 각오로 정진하고 싶은 그런 심경임을 말 없는 가운데서도 능히 읽을 수 있었다. '과부 사정은 과부가 안다' 는 속담이 있지만, 중의 사정은 중이 훤히 안다. 너절한 데서 훨훨 벗어나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다.

 

 

속을 모르면 남들은 갑작스런 변화를 보고 이 무슨 변덕인가 할지 모르지만, 본인으로서는 안일한 일상과 타성의 늪에서 뛰쳐나와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 그의 소망은,부모 형제를 떨쳐버리고 집을 나올 때의 그 출가정신에 이어진다. 출가란 살던 집을 등지고 나온 것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성에 차지 않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남이요, 거듭거듭 떨치고 일어남이다.

 

 

그런 출가정신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칼을 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잇다. 칼날이 무디어지면 칼로서의 기능은 끝난다. 칼이 칼일 수 있는 것은 그 날이 퍼렇게 서 있을 때 한해서다. 누구를 상하게 하는 칼날이 아니라 버릇과 타성과 번뇌를 가차없이 절단하는 반야검般若劍,즉 지혜의 칼날이다.

 

 

서슬푸른 그 칼날을 지니지 않으면, 타인은 그만두고라도 자기 자신도 구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다향산방의 주인은 나보다는 너그러운 편이다. 나 같으면 편액을 걸어두었던 그 못까지도 빼 버리고 그 자국마저 종이로 바르고 나서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언젠가 마음이 변해서 다시 그 자리에 편액을 거는 일이 있더라도, 한번 마음이 내켰을 때는 철저하게 치우고 없애야 한다.

 

 

그때 그 심경으로 치우고 없애는 그 일이 바로 그날의 삶이다. 작심삼일, 이런 결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할지라도 그날 그때의 그 결단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이런 비장한 결단 없이는 일상적인 타성과 잘못 길들여진 수렁에서 헤어날 기약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누가 내 삶을 만들어줄 것인가. 오로지 내가 내 인생을 한층한층 쌓아갈 뿐이다.

선종사善宗史를 보면 방거사龐居士라는 특이한 선자禪者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에 걸쳐 살다 간 재가신자在家信者인데 마조馬祖:중국의 위대한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어록이 전해질 만큼 뛰어난 삶을 살았다.

 

 

그는 원래 엄청난 재산을 지닌 소문난 부호였다. 그런데 어떤 충격을 받고 그랬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나, 어느날 자신의 전재산을 배에 싣고 바다에 나가 미련없이 버린다. 어떤 문헌에는 바다가 아니고 동정호洞庭湖로 기록되어 있다. 그가 전재산을 바다에 버리기 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줄가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에게 '원수'가 된 재산을 남에게 떠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결심을 단행한다.

 

 

살던 저택을 버리고 조그만 오막살이로 옮겨 앉는다. 대조리를 만들어 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이으면서 딸과 함께 평생 동안 수도생활을 한다.

있던 재산 다 버리고 궁상맞게 대조리를 만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그의 행동을, 세상에서는 미쳐도 보통 미친 것이 아니라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진짜로 전개된다.

삶의 가치 척도는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요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 의 어록에는 이런 계송詩이 실려 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지만

나는 순간의 고요를 즐긴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고요 속에 본래의 내 모습 드러난다

 

 

또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탐욕이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요

어리석음 없는 것이 진정한 지계指戒요

잡념 없음이 진정한 구도다.

 

 

악을 두려워하지 않고

선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인연따라 거리낌없이 사니

모두가 함께 반야선般若船을 탄다

 

 

 

며칠 전 여수 오동도로 동백꽃을 보러 갔다가 현정이네 집에 들렀었다. 거실에 있는 오디오 장치를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 오디오는 당초 현정이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우리 방에 설치 해 준 것인데 한 일 년쯤 듣다가 예의 그 '변덕'이 일어나 되돌려준것이다.  인편에 들려오기를, 처음 이 오디오를 우리 방에 설치해 주고 나서는 그렇게 흐뭇해 하고 좋아했는데, 되돌아오자 몹시 서운해 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이 오디오 말고도 산에 살면서 두 차례나 치워 없앤 적이 있다. 음악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더미가, 소유의 더미가 싫어서였다.

치워버릴 때는 애써 모았던 음반까지도 깡그리 없애버린다.

일단 없애버려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맨 먼저 찾아오는 사람한테<물론 그가 낯선 사람이 아닐 경우> 그날로 가져가라고 큰절 일꾼을 시켜 지워서 내려보낸다. 그가 음악을 이해하건 안하건 그건 내게 상관이 없다. 그가 가져가겠다고 하면 주어버리는 것으로써 내 일은 끝난다.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으면 내 감성에 물기가 없고 녹이 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때부터 하나 또 들여놔볼까 하는 생각이 일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밖에 나가 알아본다. 될 수 있으면 면적을 작게 차지하면서도 산방의 분수에 넘치지 ㅇ낳은 것으로 고른다. 다시 필요해서 들여놓을 때라도 그전에 주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렇게 홀가분한 것으로서 내 삶으 내용을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 손수 사들인 것은 선뜻 남에게 주어버릴 수 있지만, 큰 맘 먹고 선물해준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되돌린 것이다. 그리고 그 오디오를 설치할 때 나는 1년만 듣고 보내겟다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었다.

 

 

이제 내 귀는 대숲을 스쳐오는 바람소리 속에서, 맑게 흐르는 산골의 시냇물에서, 혹은 숲에서 우짖는 새소리에서, 비발디나 바하의 가락보다 더 그윽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가득 찼을 때보다도 더 충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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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한동안 손님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큰동생이 친하게 지내는 동생을 보내주었다.

그저 고마워서 잘 해주겠노라 몇번이나 얘기했었다.

.

그런데...

잘해주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만 물건 하나를 계산에서 빠트리고 만것이다. ..

다른동네에서 일부러 아는 형 누이 도와준다고 온 사람인데..그에게 다시 전화하여 이러한 상황을 얘기할 순 없었다.

 

나이를 어디로 다 먹은 것인지.. 하필 그때 이상한 손님은 오셔서 나를 헛갈리게 한 것인지.. 왜 오늘 꽃씨를 뿌린다고 힘이들게 아침부터 일을 한 것인지...

오만가지 일들을 연결하면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합리화를 시키고

바보같은 나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나서 진정이 되질 않는 것이다.

..

 

그러나 놓아두기로 한다.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본다. 내 그릇은 아주 조그만 것이라고..

아직도 깨닫지 못한 나를 위한 어떤 가르침이었다고...

 

동반자에게 이러한 얘기를 하니  전화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큰동생을 친형처럼 따르는 동생에게 축하의 큰 봉투를 전한 것이라고 전했다.

 

 

한동안 가슴이 쓰려서 맥을 못추겠지만 텅빈 나의 곳간속에도 어떤 충만함이 들어차리라 믿어본다. 이 아름다운말씀에 나의 조악한 마음을 가져다 붙이는 것이 가당치도 않지만...

손해를 보았다는 마음이  안개처럼 사라지기를 기원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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