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산중일기/최인호

다림영 2010. 3. 1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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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소위 친구라는 미명하에 저희들끼리 떼 지어서 술을 마시고, 서로의 인연으로 사교를 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우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부처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좋아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벗을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벗은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은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26세로 요절한 일본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 중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친구들이 모두 나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날,

이 날은 꽃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하고 노닌다.

 

26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젊은 시인이 어찌 그런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을까. 요즈음 나는 아내에게서 내가 평생을 통해 사귄 단 하나의 친구와 같은 우정을 느끼고 있다.

 

 

병석에 누워 지내는 동안 아무일도 하지 못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지만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이 시간은 내게 단순히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그간 휴식을 모르고 황소처럼 일해 오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결국 온전히 버려지는 시간이란 없다. 아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그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보내고 있든, 다만 우리 스스로 그 시간을 체념한 채 버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눈으로 사물을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쩌면 모두 눈 뜬 장님들인지도 모른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한다. 마음의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부처도<보왕삼매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다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길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고 하셨느니라'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 가고 있고 언젠가는 정말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저를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도 결국에는 친구가 몇 명 남아 있어야 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을 향해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제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 주소서. 제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 가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들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수는 없사오나 제게 겸손한 마음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저도 가금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 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저로 하여금 뜻하지 않는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소서.

아멘.

 

 

 

 

어느날 스님 하나가 찾아와서 동산에게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이에 동산은 대답한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이에 동산은 대답한다.

"추울때는 그대를 더욱 춥게 하고 더울 때는 그대를 더욱 덥게 하는 곳이다"

 

슬픔이 없는 곳은 바로 슬픔이 있는 곳이며, 기쁨이 없는 곳 또한 바로 기쁨이 있는 곳이다. 고통과 슬픔을 피해 다니는 동안 세월은 물끄러미 사라져 간다.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없는 자리가 바로 고통과 슬픔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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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종일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행적을 들으며 산중일기를 넘겼다.

산속에 있지 않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산속인듯 고요한 마음이 들게 되는 날을 기다리며 앞서 세월을 이겨낸 아름다운 스승들의 삶을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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