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무덤
1748년 건륭황제 13년 때 일이다. 장하에서 고기 잡던 어부가 물속에 잠수했다가 허리가 잘린 채 물 위로 떠올랐다. 황제는 수만 병졸을 풀어 물줄기를 돌리고 강바닥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바닥에는 화살이 장착된 1만여개 쇠뇌가 널려 있었다. 그 아래 무덤속에는 은으로 꾸민 바다에 물오리가 떠다녔다. 관 속에서는 황제의 면류관과 복장을 갖춘 시신이 나왔다. 조조의 유해였다.
건륭황제는 관운장 사당에 모셔진 유비의 소상앞에 조조의 시신을 무릎 꿇게 하고 참수했다.
믿거나 말거나, 박지원의 '열하일기' 구외이문'중 '조조수장'조에 나오는 이야기다.
청나라 포송령의 '요재지이'에도 조조의 수중 무덤에 관한 글이 나온다. 허성 밖 강가 벼랑에는 물결이 늘 세찼다. 한여름에 어떤 살마이 멱 감으러 들어갔다가 마치 칼로 베인 것처럼 잘린 시체로 떠올랐다.
이 소식을 들은 고을 관리가 상류를 막아 바닥을 드러냈다. 벼랑 아래 깊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 중간에 바퀴를 설치해 두었는데, 그 위에 예리한 칼날이 늘어서 있었다. 제거하고 들어가니 조맹덕이라고 적힌 비석이 나왔다. 관을 부수고 뼈를 흩은 뒤 함께 묻힌 금은보화를 다 가져갔다.
조조의 진짜 무덤은 벌써 여러 번 발견 되었던 셈이다. 조조가 자신의 무덤이 훼손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가짜 무덤 72개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예전부터 호사가들의 단골메뉴로 각종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2009년 12월, 중국 허난성 안양시 안평현에서 조조의 진짜 무덤이 발견되엇다 해서 화제다 하지만 이것도 진짜니 가짜니 말만 무성하다.
정작 공식 역사서에 남은 유언에서 조조는 자신의 무덤안에 금은보화조차 넣지 말고 소박한 장례를 치르라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소문이 돌았을까?
인간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라도 , 막대한 군자금을 도굴로 충당했던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제 무덤만은 절대로 그런 욕을 당할 수 없다는 집착 때문이었다는 것인데, 이번 발견되었다는 것도 정작 알맹이는 다 털린 빈 무덤 뿐이었다.
권세는 덧없고, 인간의 집착은 허망하다. 내려놓지 못한 탐욕이 죽어서까지 화를 부른다. 영원한 부귀영화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양대 교수. 고전문학.
조선일보 2월12일 정민의 世說新語/조조무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