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그 남자의 가방/안규철

다림영 2010. 1. 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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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나는 왜 이런것일까? 최근에 나는 우연히 떠오른 한 가지 생각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데, 그것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날 문득 내가 너무 교훈적인 인간이 아닌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들 앞에서 늘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존재가 되어야 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들 앞에서 늘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모든일을 '잘' 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일'들을 '잘하겠다'는 생각, '타의 모범'이 되고 '교훈'이 되겠다는 생각에 대해서 나는 이제까지 한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 혹 이런 것들이 나의 잘못이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이 나이게 되어서야 비로소 해본다.

 

내가 너무 근엄한 자기 검열로 일관했던 것이 문제는 아니었나? 그림으로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 이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다른 한쪽으로는 즐거운 유희 일 수도 있음을 나는 잊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모든 사람들이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사는 이 세상 속에서 나는 이제 조금 덜 중요한 일, 조금 더 사소한 일들에 눈을 돌리고 거기서 아주 사소한 깨달음을 조금씩 얻는 삶을 되찾고 싶다. 사소한 것이 아름답다.그렇게 되면 그림 앞에서 나의 장황한 말과 글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다. ..

 

..

취미가 없기 때문에 휴일에도 나는 취미가 아닌 '일' 밖에는 할 것이 없다. 만드는 일이든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이든 또는 집안일이든 나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 일을 한다.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간혹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졌을 때, 낮잠도 없는 나는 집 안에서 빈둥거리다가 기껏해야 혼자서 술이나 몇 잔 기울일 뿐이다.  그나마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어서 술 자리에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런 자리에서 조좌중을 즐겁게 하는 말재주도 없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들의 부지런함이 내게는 없으며,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탐닉하는 기호품도 없다. 음식의 맛에 관해서는 어디서나 일체 불평을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있으며, 몇 년 전부터는 몸에 나쁘다는 담배도 끊은 터이다.

 

무취미한 나의 인생...., 이제 여기서 커피만 마저 끊는다면 나는 먹고 마시는 일에서도 아무런 취미가 없는 맹물 같은 인간이 될 것이다.

 

여자를 감히 잡기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 방면으로도 별 재주나 전망이 없는 것 같다. 매력적인 여성을 보면 주제넘게도 마음이 쓰이는 것이야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어떤 은밀한 사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했을때 거기 수반될 번거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인생은 얼마나 즐길 만 한 것인가? 더 나이가 들면 못 누리게 될 온갖 즐거움을 막차 타는 심정으로 즐기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한다. 일하는 삶이 얼마나 갑갑하고 재미없는 것이면 사람들은 저토록 시간만 나면 거기서 풀려나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일까?

 

내가 나의 이 무취미한 삶을 그런대로 견디고 심지어 즐기기까지 하는 것은 물로 내가 특별히 고고한 천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정말 다행스럽게도 조각이라는 나의 본업이 그 자체로서 즐거운 것이어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가장 큰 행운이며, 그렇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지는 빚이다. "

 

 

 

덧붙이는 글/이재룡

..

"문명이란 언어와 이미지가 주도권을 다툰 투쟁의 역사란 말도 있지만 안규철의 차분한 글에는 '투쟁'이나 '주도권' 같은 험악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말과 이미지가 다투지 않는 그의 작품은 꾸밈없는 언어로 일상적 대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으로 번뜩이고 있다. 신선한 발상은 오랜 관찰과 수곡, 그리고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래 버티기 힘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 푹 빠져들다가도 미술에 문외한인 내게 이런 궁금증은 들었다. 연재의 주제를 왜 하필 사물롤 삼았을까? 이상하게도 나는 글을 읽다가 사물이란 단어를 만나면 과속 방지턱을 넘는 것처럼 잠깐 긴장하고 멈칫거리는 습관이 있다. 평탄한 길을 산책하듯 연재를 읽다가 느낀 그 궁금증이 예전에 품었던 다른 궁금증과 겹친다. ... "

 

 

 

 

 

안규철/서른셋에 유학을 떠나 독일 슈트르가르트 국립 미술학교에서 수학.

1992년 첫 개인전.

주로 익숙한 사물을 낯선 상황에 배치하여 일상적인 삶의 이면을 드러내는 개념적인 작업 발표.

서구 현대미술의 체험을 기록한 <그림없는 미술관>을 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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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성공한 이들을 보면 취미를 특기로 특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는 어떠한 취미도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취미가 무취미일정도로 일에 빠져 행복한 남자의 가방을 한 이틀  들여다 보았다.

그의 각별한  작품과 함께 산책같은 글읽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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