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집을 지음에 있어서 온통 벽돌만을 사용한다. 벽돌의 길이는 한자, 넓이는 다섯 치여서 둘을 가지런히 놓으면 이가 꼭 맞고 두께는 두 치이다. 한 개의 네모진 벽돌박이에서 찍어낸 벽돌이건마는 귀가 떨어진 것도 못쓰고, 모가 이지러진 것도 못 쓰며, 바탕이 비두러진 것도 못쓴다.
만일 벽돌 한개라도 이를 어기면 그 집 전체가 틀리고 만다. 그르므로 같은 기계로 직어냈건마는 오히려 어긋난 놈이 있을까 염려하여, 반드시 곡척曲尺으로 재고 자귀로 깎고 돌로 갈아서, 힘써 가지런히 하여 그 개수가 아무리 많아도 한금으로 그은듯 싶다.
그 쌓는 법은 한 개는 세로, 한 개는 가로로 놓아서 저절로 감坎 이 괘가 이룩된다. 그 틈서리에는 석회를 이기어 붙이되 초지장처럼 엷으니 이는 겨우 둘 사이가 붙을 정도여서 그 흔적이 실밥같아 보인다. 화를 이기는 법은 굵은 모래도 섞지 않고 진흙도 기忌한다. 모래가 굵으면 어울리지 않고 흙이 진하면 터지기 쉬우므로, 반드시 검고도 부드러운 흙을 회와 섞어 이기어 그 빛깔이 거므스름하여 마치 새로 구워 놓은 기와와 같다.
대체 그 특성은 진흙도 쓰지 않고 모래도 쓰지 않으며, 또 그 빛깔이 순수함을 취할 뿐 아니라, 거기다가 어저귀<아욱과의 일년초, 섬유식물> 따위를 터럭처럼 가늘게 썰어서 섞는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초벽하는 흙에 말동을 섞는것과 같으니 질겨서 터지지 않도록 함이요. 또 동백기름을 타서 젖처럼 번드럽고 미끄럽게 하여 떨어지고 터지는 탈을 막는다.<도강록>
이런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좀 당혹스럽다. 벽돌을 직접 찍어내고, 집을 지어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다지도 세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이 연암의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인지, 아니면 앎의 배체에 관한 시대적 차이에 기인하는 것인지는판단한 길이 없지만. 어쨌든 연암의 지적 체계와 우리들의 그것 사이에 엄청난 심연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기와나 온돌법에 대한 논변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장인적 숙련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석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연암이 이렇게 주거환경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의 여건이 너무도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서는 집이 가난해도 글읽기 를 좋아해서, 겨울이 되면 백천 명의 형제들 코끝에는 항상 고드름이 달릴 지경이니, 이 법을 배워가서 삼동三冬의 그 고생을 덜었으면 좋겠다"고.
그가 보기에 조선의 온돌제도는 결함투성이이다. "대체 우리나라 온돌제도는 여섯 가지 흠이 있으나 아무도 이를 말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내 시험조로 한번 논할 테니, 자네는 떠들지 말고 조용히 들어보게." 마치 판소리 광대가 '허두가'虛頭歌를 할 때 처럼 구수하다. 이어지는 논변도 운문처럼 매끄럽다. .."
서문중에서
..
따라서 열하일기는 일회적이고 분석적인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읽을 때마다 계속 다른 장을 펼쳐보인다. 계속 다르게 사유하도록 독자들을 부추긴다. 그래서 열하일기를 읽을 때마다 내 지적 편력기에는 계속 새로운 이정표들이 그려진다. 나도 이제 편력이 아니라. 유목을 하고 싶다! 내 글쓰기도 유목적 지도가 되었으면!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노마드'<nomad>가 되기를! 어느덧 내 욕망의 배치는 이렇게 바귀고 말았다. <열하일기>가 준 가장 큰 선물!
그 즐거움과 경이로움을 좀더 많은 벗들과 함게 하기 위해 이글을 쓴다. 이 여정마다 새로운 마주침들이 일어나기를! 그 마주침 자체가 또하나의 유목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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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박지원을 천재라고 했다. 천재들은 대부분 싸늘하지만 그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했다.
박지원의 글을 나는 좋아한다. 어쩌면 그의 글보다 인간적인 냄새가 절로 느껴져 자꾸만 그의 글을 집어드는 것이다. 그의 가슴따뜻함에 마음기울이며 끝까지 긴시간 읽었고 다시금 뒤로 돌아보며 뒤적인다. .그의 글과 지은이의 설명으로 다시 또 박지원의 글을 찾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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