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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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속을 불문하고 삶이 힘들어진 요즘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한 권 내는 일도 왠지 미안하고 염치없는 일인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세계화였는지도 몰라도 우리네 살림살이가 더 어려우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정망하는 이도 있고, 앞날이 불안하기만 하여 상심하는 이도 많다.
이런 때 진정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불경의 한구절이 가슴을 친다. 부처님께서 우루벨라로 가시다가 숲속 나무 아래서 좌선하고 계실 때였다. 한 무리의 젊은 남녀를 이끌고 한청년이 유녀遊女를 찾았다. 부부동반으로 나들이 나왔다가 자신은 아내가 없어 유녀를 구해 데리고 왔는데, 그 유녀가 귀중품을 가지고 도망쳤던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그 청년의 얘기를 듣고는 "젊은이들이여, 유녀를 찾는 것과 자시자신을 찾는 것중 어느쪽이 더 중요하겠는가."라고 물었고, 비로소 젊은이들은 자기를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다.
불교는 지금 이 순간 속에 존재하는 자기를 찾는 가르침이다. 또한, 선禪은 자기를 찾는데 가장 극적이고 빠른 길이다. 세상이 천변만화하여도 언제나 중심은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의 '나'이기에 참으로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인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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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개원 20년<741>에 형악의 젖법원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남악 회양을 만났다. 회양은 마조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물었다.
"그대는 왜 좌선하고 있는가."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자 회양은 부근에 있던 벽돌을 하나 들고 갈기 시작했다. 마조가 물었다.
"벽돌을 갈아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거울을 만들가 하네."
"벽돌이 거울이 될 리 있습니까"
이때 회양이 일갈했다.
"벽돌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다.!"
"어찌해야 합니까?"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수레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수레를 때려야 하겠는가. 아니면 소를 다그쳐야 하겠는가."마조가 대답을 못하자 회양이 다시 말했다.
"그대가 지금 좌선하고 있는 것인지, 좌불坐佛을 익히고 있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좌선을 익히고 있는 중이라면 선이란 결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며, 좌불을 익히고 있는 중이라면 부처는 원래 정해진 모습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머무름이 없는 법에서는 응당 취하거나 버리지 않아야 하네. 그대가 만약 좌불을 흉내내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부처를 죽이는 행위와 다름없네. 보잘 것 없는 앉음새에 집착한다면 정작 깊은 이치를 깨닫지 못할 것일세."
회양의 가르침을 들은 마조는 마치 제호醍호를 마신 듯하여 절하며 물었다.
"마음가짐을 어떻게 하면 무상삼매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지금 심지법문을 익히고 있는 것은 마치 스스로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그 법의 요지를 말해주는 것으니 마치 하늘이 내려주는 단비와도 같은 것이네. 그대에게 이미 기연機緣이 닿아 있으므로 반드시 도를 보게 될 걸세."
"도가 모습色相이 아니라면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심지법안心地法眼으로 도를 볼 수 있지. 무상삼매도 마찬가지라네."
"거기에도 성주괴공成住塊空이 있습니까"
"변화하는 바탕에서 도를 보려 한다면 도는 결코 보이지 않을걸세. 자, 나의 게송을 듣게나."
심지는 모든 종자를 머금어
촉촉한 비를 만나면 어김없이 싹이 튼다.
삼매의 꽃은 모습 없는데
무엇이 파괴되고 또 무엇이 이루어지랴.
이에 마조는 문득 개오하고 마음이 초연해졌다. 이후 마조는 회양을 10년간 시봉하니 날로 그 경지가 깊어갔다.<마조어록>의 이 장면은 7대 조사인 회양인 8대 조사가 되는 마조에게 심인心印을 전해주는 이야기다.
실제로 남창 복언선사에 가면 회양이 마조를 깨우쳐주기 위해서 벽돌을 갈던 마경대磨鏡臺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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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만났던 스님이 떠오른다.
서둘러 재촉하던 걸음을 마다하고 생전처음보는 이의 길을 찾아주기 위해 발길을 서슴없이 돌리셨고 긴 설명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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