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과 사색

빨래에 대하여

다림영 2009. 12. 8. 16:11
728x90
반응형

 

 

 

이화동의 비오는날 빨래 .

 

그날은 이른아침부터 굵은빗줄기가 쏟아졌다.

분명 이 빨래는 전날 널어놓은 것이리라.

가지런히 집게까지 꼭 집어 놓았는데

비가 그렇게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빨래를 걷지 않았다.

그런 것을 보면 분명 그들의 주인은 전날 먼 고향으로 떠나 들어오지 않았거나

술에 취해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자고 있을 것이다.

오는 비 다 맞고 끝없이 무거워진 빨래

세상은 가볍게 돌아가도 우리는 빨래처럼 버거운 일상속에 오늘을 견디고 있다.

내일은 해가 뜰것이리라 하면서...

 

 

성북동의 화창한 여름날의 빨래

 

조그만 마당 있는 집,너는 살게 될거야

순한 눈 해피도  아담한 집 한 채 대문 옆에 들여놓고

우리집 막내 말쑥하게 큰 키를 하고도 신이 나겠지

 

마당 한 켠 봉숭아 말갛게 물들어가고

점심엔 감자수제비라도 뜨겁게 끓여놓고

나는 친구 를 불러대겠지

 

소란스런 처마밑  하얗게 말라가는 빨래

기꺼이  환한 배경 되어 줄거야.

 

 

홍제동 이른가을 빨래

 

아버지 오래된 옷가지 오늘은 때 빼고 광내는 날

일주일 내내 쉬지 않고 온통 땀으로 얼룩졌었지

휴일늦은아침까지 고단한 숨소리 이어지고

창밖담벼락 빨래는 조용히 흔들리네

오늘은 아버지 쉬는날

산동네 바람결에 아버지 옷가지 춤추는 날

 

 

 

추운 겨울 부암동빨래.

 

우리형제는 다섯이나 되었고 그때 세탁기는 없었다.

아이많이둔 엄마는 우물옆에 나아가 방망이로 두들기며 찌든때를 긴시간 빼어내곤 했었다.

투명한 겨울하늘 아래 빨래 줄 가득 우리들의 옷가지는 만국기처럼 펄럭였고

언 손을 비비며 들어온 엄마에겐 찬바람냄새가 화악 몰려들었다.

종종거리며 아랫목에 불쑥 손을 밀어넣던 젊은 엄마

이제 젊은 엄마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식구들의 빨래를 시시때대로 한다.

그러나 세탁기도 있고 언손도 아니다.

세상은 하늘과 땅 만큼 변했지만

어느겨울날 마당한켠 널어놓은 말간빨래 불현듯 만나고

그때 엄마와 함께 방안에 흠씬 몰려들던 시린 찬 바람냄새가 어디선가 후욱 날아든다.

 

반응형

'풍경과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일빌라  (0) 2009.12.17
옛날에 옛날에  (0) 2009.12.12
빨래   (0) 2009.12.05
커피를 마시고 싶은 장소에서   (0) 2009.12.03
희망 문   (0) 200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