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군에 가는 아들에게 쓴 편지

다림영 2009. 8.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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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에게

 

 

너의 스물을 지켜보면서 엄마의 스물을 떠올려 본다.

엄만 스물도 채 되지 않아 직업전선으로 나갔단다.

그 때 가장 부러웠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바로 지금의 너 같은 대학생이었다.

얼마나 대학생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회사에 출근하면서도 대학교에 간 친구들을 스치거나 만나면 엄마는 육지와 떨어진 먼 섬.. 그곳에 유배된 옛사람처럼 막막한 슬픔을 느끼곤 했다.

 

네가 대학교에 첫발을 내딛던날, 엄마는 얼마나 가슴벅차고 기뻤는지 모른다. 화서역에서 너희 학교 통학차가 있는 곳으로 주춤거리며 걷던 네 뒷모습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하루종일 너의 뒷모습만 어른거렸고 궁금했고 자꾸만 네게 묻고 싶었지. ..

 

 

너는 참 즐겁고 재미난 학교 생활을 그런대로 누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진실되게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렴

너는 그 고마움과 감사함 이런 것을 한번이라도 생각한 적은 있었는지...

 

너는 결코 성실한 모습은 아니었다.

엄마의 실망은 컸고 고뇌는 깊어졌다.

만약 엄마가 그 아름다운 스물에 대학교에 다녔더라면 , 공부를 하고 책 속에 빠졌더라면, 구체적인 삶의 계획속에서 자신을 일구고 땀을 흘렸더라면 지금쯤 엄마의 세계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었을까?

.....

 

'가지 않은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렇게 대학교에 가고 싶었으면 혼자의 힘으로라도 왜  노력을 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돌아보니  엄마는 그저 주어진대로 살았던 것이고  변화를 꿈꾸지 않았고 목표가 없었고 그 꿈을 향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온 것이다.

 

 

세월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엄마를 데려왔다.

삶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실려온것이다.

열심히 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엄마는 깨닫는다. 좀더 열심히 훨씬 더 열심히 삶의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진지하게 살았더라면 하고 말이다.

 

..

 

그곳으로 향하는 길,  너는 착찹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네 삶에 있어 헛되이 지나가는 시간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각별한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고된 시간들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견뎌내는 숭고한 시간들은 너를 단단하고 넓고 깊은 마음을 지닌 아름다운 청년으로 만들어 줄것이다.

 

 

두서없이 어지러운 글이 되었구나.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려있음을 너도 알거야.

감사한 마음 고마운마음으로 싱그러운 아침을 맞고 숙연한 저녁을 만나는 기쁨이 네게 찾아오리라 엄마는 믿는단다.

 

 

환한 모습으로 우리 만날 수 있게 되겠지?

엄마도 좀더 근사한 모습으로 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네가 많이 보고 싶어질꺼야.

잘지내렴.

 

 

 

2009년 8월 17일 너를 많이 생각하게 될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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