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는 이제야 도를 깨달았다. 마음의 눈을 감는 자, 곧 마음에 선입견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는 사람일수록 보고 듣는 힘이 더욱 까탈스러워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라고.
이제까지 나를 시중해 주던 마부가 말한테 발을 밟혔기 때문에 그의 뒷수레에 실어놓고, 이젠 내 손수 고삐를 붙들고 강위에 떠 안장위에 무릎을 구부리고 발을 모아 앉았는데, 한 번 말에서 떨어지면 곧 물인 것이다.
거기로 떨어지는 경우에는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성정性精을 삼을 것이리라. 이러한 마음의 판단이 한번 내려지자, 내 귓속에선 강물 소리가 마침내 그치고 말았다. 그리하여, 무려 아홉 번이나 강을 건넜는데도 두려움이 없고 태연할 수 있어 , 마치 방안의 의자 위에서 앉고 눕고 기동하는 것 같았다.
옛 적에 우 임금이 강을 건너는데, 누런 용이 배를 등으로 져서 매우 위험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죽고 사는 판가름이 이미 마음속에 분명해지니 그의 앞에는 용인지 지렁인지 그 크기는 족히 문제가 되지 않는것이다.
소리와 빛깔은 바깥 사물에서 생겨난다. 이 바깥 사물이 항상 귀와 눈에 탈을 만들어 이렇게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게 하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한 세상 인생살이를 하면서 겪는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훨씬 심하여 보고 듣는 것이 강물보다 더 할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연암골로 돌아가 다시 물소리를 들으며 이것을 경험해 볼 것이다. 그래서 처세에 능란한 자들의 교묘한 몸놀림을 경계할 것이다.
-일야구도하기 <一夜九渡河記>중에서
나무쪽을 붙이는 데에는 부레풀이 제일이고, 쇠끝을 붙이는 데에는 붕사가 그만이며, 사슴 가죽이나 말가죽을 붙이는 데에는 찹쌀 밥풀보다 잘 붙는 것이 없다. 벗을 사귐에 있어서는 <틈>이 가장 중요하다.
연나라와 월나라 사이가 멀지만 , 그런 틈이 아니다. 산천이 그 사이에 가로막혔다 해도, 그 틈이 아니다. 둘이서 무릎을 맞대고 자리에 나란히 앉아다 해서 <서로 밀접하다>고 말할 수 없고, 어깨를 치며 소매를 붙잡았다고 해서 <서로 합쳤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그 사이에는 틈이 있을 뿐이다.
옛날에 상앙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자 진나라 효공은 못 들은 척하며 졸았고, 응후가 노여워하지 않는 척하자 채택은 벙어리처럼 말을 못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어 남을 꾸짖는 것도 반드시 그럴 처지의 사람이 있겠고, 큰 소리를 치면서 남을 노엽게 만드는 것도 반드시 그럴 처지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옛날 공자 조승이 소개한 성안후와 상산왕은 그 사귐에 틈이 없이 사귀었다. 한 번 틈이 벌어지면, 아무도 그 틈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랑스러운 것도 틈타서 결합되며, 고자질도 그 틈을 이용해서 벌어지게 만든다. 그러므로 남을 잘 사귀는 자는 먼저 그 틈을 잘 타야 한다. 남을 잘 사귀지 못하는 자는 틈을 탈 줄 모른다.
대체로 곧은 사람은 곧바로 가 버린다. 굽은 길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의 뜻을 꺾어가면서 무슨일을 하지는 않는다. 한마디 말에 의견이 합해지지 않는 것은 남이 그를 이간질 시켜서가 아니라, 제 스스로 앞길을 막은 셈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이르기는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하였고, <구들목에 아첨할 바에는 차라리 아궁이에 아첨하라>하였는데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아첨하는 데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자기 몸을 가다듬고 얼굴을 꾸민뒤에 말씨도 얌전히 할뿐더러 명리에 담박하며, 다른 사람들과 사귀기를 싫어하는 척해서 자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둘째, 곧은 말을 간곤하게 해서 자기의 참된 심정을 나타내되, 그 틈을 잘타서 이편의 뜻을 이해시키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셋째 말발굽이 다 닳고 자리굽이 해지도록 자주 찾아가서 그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잘 살펴서, 그가 말하면 덮어놓고 칭찬하며 그의 행동을 무조건 아름답게 여긴다면, 저편에서 처음 들을 때에는 기뻐한다. 그러나 오래 되면 도리어 싫증나고, 싫증나면 더럽게 여기게 된다. 그제는 '전ㅁ이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법이니, 이는 하첨下諂이다.
관중은 아홉 번이나 제후들을 규합했고, 소진은 여섯 나라를 합종하였으니, <천하에 가장 큰 사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빌어먹고 덕홍은 시장 바닥에서 미친 노래를 부를 지언정, 말 거간꾼의 나쁜 술법을 쓰지는 않았다. 하물며 글 읽는 군자는 더 말해 무엇하냐?
-마장전<馬장傳>중에서<진정한 우정에 대하여>
독서하는 방법으로는 일과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제일 좋고, 오늘 읽을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 하지도 말라. 순서를 정해놓고 날마다 해야 한다. 그리고 가리키는 대의를 정밀하고 분명하게, 음성은 무르녹게, 뜻은 익숙하게 한다면 절로 암송할 것이며, 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한다.
책을 대할 때는 하품하거나 기지개를 켜지 말라. 책을 마주 해서는 침을 뱉지 말 것이며, 기침이 나오면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하라. 책장을 넘길 때 침을 바르지 말고 표시할 때 손톱으로 하지 말라. 책을 베거나 그릇을 덮지 말며, 책을 난잡하게 늘어 놓거나 책으로 먼지를 털지 말 것이다. 책에 좀이 슬면 볕이 들 때 볕에 쪼여라.
남의 서적을 빌렸는데 글자가 틀렸으면 고치고 찌지가<표시하거나 적어 붙이는 종이쪽지>찢어졌으면 기워주고 책을 묶은 끈이 끊어졌으면 묶어서 되돌려 주라.
첫닭이 울면 일어나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전에 암송한 것을 복습하면서 가만히 반복 해 암송하라. 그 내용을 파악하는 데 충실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다시 살펴 심신으로 체득해야 하며 스스로 깨달음에 기뻐해야 한다.
등불을 밝혀 의복을 갈아입고 엄숙히 책상에 마주 앉은 다음, 새로운 편을 묵묵히 반복해서 음미한다. 몇 줄씩 끊어서 암송한 뒤 서산書算을 접어 옮겨놓고, 가만히 훈고적 의미를 따져보며, 상세히 주소를 점검하여 그 차이점을 변별한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음과 뜻을 밝게 알고 침착한 마음으로 자기의지에 합치되도록 한다. 그리고 사사롭게 너무 천착하거나 억지 의심은 하지 말고, 심신에 자득할 수 없는 경우는 반복하고 그냥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
하늘이 훤히 밝아지면 세면을 마치고 즉시 부모님 침소에 나가 문 밖에서 살피다가 혹 안에서 기침 소리나 하품 소리가 나면 방으로 들어가서 문안을 한다. 부모가 혹 심부름을 시키면 바쁘다고 돌아가지 ㅇ낳아야 하녀, 책을 읽는다는 핑계로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혹, 책을 읽는다고 신체를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는 독서가 아니다. 부모가 물러나라 명하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먼지를 소제하고 책상을 털며 책을 가지런히 정리하고는 단정히 앉아 잡생각을 그치고 한참 지난 뒤에 책장을 펴서 읽는다.
너무 느리게도 너무 빠르게도 읽지 않는다.
긴급한 말이 아니면 말대꾸 하지말고, 바쁜 일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가 부르면 책을 덮고 즉시 일어나고 귀한 손님이면 책을 덮는다. 음식먹을 때면 책을 덮고, 식사를 마치고는 곧 일어나 천천히 걸어다니다 소화가 된 뒤에 다시 읽는다.
부모님이 아프면 일과 공부를 그만두고, 제사지낼 때도 책을 덮는다. 부모의 초상에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도 3년 까지는 예서禮書를 읽으며, 어린이들은 그대로 읽던 책을 읽는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아비가 죽으면 그 아비의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아비의 손때가 책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안에 전해오는 책은 모두 묶어 다락에 넣어두고 읽지 않아야 하는가?" 라고 옛날 증자이 아버지 증석은 양고기와 대추를 즐겼는데, 그가 죽은 뒤에 증자는 양고기와 대추를 먹지 않았으니 마치 부모의 명을 듣고 머뭇거리는 행동이 없기를 생각하며, 친구와 약속을 해놓고 곧 실행함을 생각하는 듯하여 주저함이 없었다.
이것이 독서하는 도리이다. 천하의 사람들이 편안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그 천하는 아무 일 없는 태평 세상일 것이다."
-원사原士<선비란 누구인가> 중에서
...
"이렇게 말고 시원한 곳이 있군. 신선이 사는 곳과 별반 차이가 없을거야"
얼마 뒤에 밖을 보니 여러 하인들이 심부름을 하느라고 마루 아래에 섰는데 너무 추워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그 집의 자제가 끓는 국을 엎질러서 손을 데었다고 야단들이었다.
김공이 껄껄 웃으면서 "뜨거운 곳에서 일찍 물러나니까 시원한 재미를 보네. 그렇지만 눈 속에서 발을 구르는 자들은 고기 한 점도 얻어먹지 못했으니, 정말 가엾네." 나는 젊은이들이 국을 엎질러 손을 덴 사실을 들어 그에게 암시하면서 옛날이나 오늘이나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나타났다가 물러나고 어떻게 영광을 얻었다가 욕되게 되는지를 극렬하게 논하였다.
김 공은 서글프게 말하였다."실컷 부귀를 누린 끝에야 비로소 넉넉한 줄 알거나, 다 늘그막에 이르러서야 쉬려고 생각한다면 이미 때가 늦은 거라네. 무슨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도 정치에서 일찍 물러날 것을 용감하게 결정하지 못했지만 그가 이렇게 말한 것만 해도 역시 마음속으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서쪽 개성으로 와서 돌아다니다 양정맹과 친하게 지냈으므로, 그 아버지이 별장을 가서 논 적이 있다.
꽃과 나무가 줄지어 섰고, 집과 뜨락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는데, 그 마루의 이름을 <만휴당晩休當이라고 했다. 양노인은 아주 순박하여 옛날 어른의 기풍이 보였다.
날마다 같은 마을의 노인들과 어울려 활쏘기와 장기 두기로 일을 삼았으며 거문고와 술로 하루를 즐겼다. 명예.이익.권세의 길을 일찍이 그만두고, 늘그막을 편안하게 즐기는 것이다. 이야말로 늘그막에 쉬는 즐거움<晩休樂>이 아니겠는가.
그가 나에게 기記를 지어달라 청하였다. 아아, 김 공도 일찍이 이 고을의 사또로 있으면서 공이 갈려 간 뒤에도 그 고을 사람들은 공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와 함께 전골을 먹던 옛일을 이야기하면서 양 노인의 '늘그막에 쉬는 즐거움'을 치하한다. 또한 이 글을 써서 시끄럽게 굴다가 손을 세상 사람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만휴당기晩休當記<늘그막의 쉬는 즐거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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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음가짐의 사람이 되려하는데에 치중해야 할 것이다.
더이상의 욕심을 부려서 길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 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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