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황문수 옮김

다림영 2009. 6. 27.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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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 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은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특별한 태도는 몇 가지 전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이 전제는 단독으로 또는 결합되어서 이 태도를 뒷받침해준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들이 이 목적을 추구하는 몇가지 방법이 있다. 남자들이 특히 애용하는 방법은 성공해서 자신의 지위의 사회적 한계가 허용하는 한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여성이 애용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매력을 갖추는 것이다.

 

 

남녀가 공용하는 또 한 가지 매력 전술은 유쾌한 태도와 흥미 있는 대화술을 익히고 유능하고 겸손하고 둥글둥글하게 처신하는 것이다. 사랑스러워지는 여러가지 방법은 성공하기 위해, 곧 '벗을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과 같다. 사실상, 우리 문화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하는 경우, 그 의미는 본빌적으로는 인기와 성적性的매력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假定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낟. 이 태도에는 근대 사회의 발전에 바탕을 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사랑의 대상'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20세기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이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많은 전통적 국가의 경우처럼 대체로 사랑은 다음에는 결혼으로 이어지게 될, 자발적이며 개인적인 경험은 아니었다. 반대로 결혼은 관습에 의해-쌍방의 가족에 의해, 또는 중매인에 의해, 또는 중매인 같은 중개자의 도움 없이-계약되었다.

 

 

 

결혼은사회적 고려를 기반으로 결정되었고, 사랑은 일단 결혼이 성립한 다음에 전개 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개념이 서양에서 거의 보편화된 것은 최근 몇 세기 동안의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관습적 성격을 가진 고려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낭만적 사랑' 곧, 다음에는 결혼으로 이어지게 될 사랑의 개인적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의 이와 같은 새로운 자유개념은 '능력'의 중요성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대상의 중요성을 몹시 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문화의 또하나의 특징적 성격은 이러한 요소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우리의 모든 문화는 구매욕에, 또한 상호간 유리한 거래라는 관념에 기초를 두고 있다. 상점의 진열장을 들여다 보며 느끼는 스릴과 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현금 또는 할부로 사는 맛, 이것이 현대인의 행복이다.

 

 

 

그는 <또는 그녀는>사람들도 매력있는 남자는 탐나는 경품이다. '매력'은 보통 인기 있고 퍼스낼리티<Personaliry>시장에서 잘 팔리고 있는 품질 좋고 멋지 포장을 의미한다.

사람들을 특히 매력있게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시대의 유행에 달려 있다.  1920년대에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튼튼하고 성적 매력이 있는 소녀가 매력적이었다.

 

 

 

 

오늘날의 유행은 오히려 가정적이고 얌전하기를 요구한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는 매력적인 '포장'이 되려면 남자는 공격적이고 야심적이어야 했으나 오늘날은 사교적이고 관대해야 한다. 어쨌든 사랑하게 되었다는 느낌은 보통 자신의 교환 가능성 범위에 있는 인간 상품에 대해서만 나타난다.

 

 

 

 

내가 거래를 하러 나갔다고 하자. 상대는 사회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보아 바람직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자도 나의 명백한 또는 숨겨진 재산과 능력을 고려한 다음 나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의 교환 가치의 한계를 고려하면서 서로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최상의 대상을 찾아냈다고 느낄 때에만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질 수 있다.

 

 

 

부동산을 사는 경우, 앞으로는 개발될지 모르지만 현재는 숨겨져 있는 가능성이 대체로 거래에서 중요한 역활을 한다. 시장 지향적이고 물질적 성공이 현저한 가치를 지니는 문화권에서 인간의 애정 관계가 상품 및 노동시장을 지해하는 교환 형식과 동일 하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전혀 없다.

 

 

 

 

 

사랑에 대해서는 배울 필요가 없다는 가정에 이르게 하는 세번째 오류는 사랑을 '하게되는'최초의 경험과 사랑하고 '있는'지속적 상태, 혹은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사랑에 '머물러'있는 상태를 혼동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남남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갑자기 그들 사이의 벽을 허물어 버리고 밀접하게 느끼며 일체라고 느낄 때, 이러한 합일의 순간은 인생에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격앙된 경험 가운데 하나다.

 

 

 

 

특히 폐쇄적이고 동떨어져 있어서 사랑을 모르고 지내던 사람의 경우라면 특히 놀랍고 기적적인 경험이다. 갑자기 친밀해지는 , 이 기적은 성적 매력과 성적 결함에 의해 시작되는 경우, 대체로 더욱 촉진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두 사람이 친숙해질수록 친밀감과 기적적인 면은 점점 줄어들다가 마침내 적대감, 실망감, 권태가 생겨나며 최초의 흥분의 잔재마저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그들은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이러한 태도, 즉 사랑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는 태도는 반대의 경우에 대한 압도적 증거에도 아랑곳 없이 사랑에 대한 일반적 관념으로서 지속되고 있다.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이것이 다른 활동의 경우라면 사람들은 열심히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려 하고 개선법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이 활동을 포기할 것이다. 사랑의 경우, 포기는 불가능하므로,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적절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인 것 같다. 곧 실패의 원인을 가려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초의 조치는 삶의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사랑도 기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우고 싶다면 우리는 다른 기술, 예컨대 음악이나 그림이나 건축, 또는 의학이나 공학 기술을 배우려고 할 때 거치는 것과 동일 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기술을 배울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는 무엇인가?

편의상 기술 습득 과정을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이론의 습득, 둘째는 실천의 습득이다. 만일 내가 의학 기술을 배우고자 한다면 나는 먼저 인간의 신체와 여러가지 질병에 대한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이러한 이론적 지식을 모두 배웠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은 의학 기술에 숙달되지는 못했다.

 

 

 

상당한 실무를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의학 기술에 숙달되고 마침내 이론적 지식의 결과와 실천의 기술이 합치될 것이다.   곧 나의 직관이 모든 기술 숙달의 본질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천의 습득 외에도 어떤 기술을 숙달하는 데 필수인 세 번째 요인이 있다. 곧 기술 숙달이 궁극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음악에도, 의학에도 건축에도 그리고 사랑에도 해당된다. 우리 문화권의 사람들은 사랑의 경우 명백히 실패하고 있으면서도 왜 사랑의 기술은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는가?

 

 

 

이런한 물음에 대한 대답도 아마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것이다. 사랑을 뿌리 깊이 갈망하면서도 사랑 이외의 거의 모든 일, 곧 성공, 위신, 돈, 권력이 사랑보다도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우리의 거의 모든 정력이 이러한 목적에 사용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의 기술은 배우려고 들지 않는다."

 

 

...

 

 

"남자와 여자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알게 된 다음, 그들은 분리 되어 있고, 그들이 서로 다른 성性에 속하는 것처럼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서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직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남남으로 남아 있다<이것은 아담이 이브를 감싸기보다는 오히려 비난함으로써 자신을 지키려고 한 사실에서도 매우 명백하게 드러난다>

 

 

 

인간이 분리된 채 사랑에 의해 다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 이것이 수치심의 원천이다. 동시에 이것은 죄책감과 불안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구는 이러한 분리 상태를 극복해서 고독이라는 감옥을 떠나려는 욕구이다. 이 목적의 실현에 '절대적으로'실패할 때 광기가 생긴다. 우리는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물러남으로써 분리감이 사라질 때에 완전한 고립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인간이 분리되어 있던 외부 세계도 사라져 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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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지 올바른 대상을 찾아내는 것만이 필요하며, 그렇게 되면, 그리고 싶어하면서도 기술은 배우지 않고, 올바른 대상만을 고르면서 대상만 찾아내면 아름답게 그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태도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랑은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관계하는 성격의 방향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받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가지 사랑의 형태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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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성적 결합의 소망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경우, 육체적 관계에는 탐욕이나 정복하려는 또는 정복당하려는 소망은 없고 부드러움이 섞일 뿐이다. 육체적으로 결합하려는 욕망이 사랑에 의해 자극되지 않는다면, 성애가 동시에 형제애가 아니라면, 이러한 욕망은 도취적이며 일시적인 합일 이외의 합일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성적매력은 순간적으로 합일의 환상을 일으키지만 사랑이 없는 한, 이러한 '합일'은 낯선 사람들의 이전과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져 있게 한다.

 

 

 

 

때로는 이러한 '합일'은 서로 부끄러워하게 하거나 심지어 서로 미워하게 만든다. 환상이 사라질 때 그들은 이전보다도 더욱 뚜렷하게 격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은, 프로이트가 믿고 있는 바와는 달라서, 결코 성적 본능의 승화는 아니다. 부드러움은 형제애의 직접적 결과이고 비 신체적 사랑의 형태와 마찬가지로 신체적 형태의 사랑에도 있다.

 

 

 

 

성애에는, 형제애와 모성애에는 없는 독점욕이 있다. 성애의 이러한 배타적 성격은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흔히 성애의 독점욕은 소유적 애착으로 오해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서로 '사랑하고'있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이 사랑은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이기주의다.

 

 

 

 

그들은 서로를 동일시하는 두 사람이고, 그들은 단일한 개인을 둘로 확대함으로써 분리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들은 고독의 극복을 경험하지만, 그들 이외의 다시 사람들과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여전히 서로 분리된 채로 있고 그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곧 그들의 합일 경험은 환상이다. 성애는 배타적이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전 인류를, 모든 살아 있는 자를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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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행위, 곧 나의 생명을 다른 한 사람의 생명에 완전히 위임하는 결단의 행위여야 한다. 이것은 결혼은 결코 파기할 수 없다는 사상의 배경을 이루며, 또한 두 배우자가 결코 서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선택되어 서로 사랑할 것을 기대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전통적 결혼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

 

 

 

 

...

 

목공 기술을 배우는 자는 나무를 깎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피아노 연주를 배우는 자는 음계연습부터 시작해야 한다. 궁술<弓術>의 선적禪的기술을 배우는 자는 호흡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기술에 숙달하려면 삶 전체를 이 기술에 바치거나 적어도 이 기술과 관련시켜야 한다. 자기자신이 기술 훈련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에 대해서 이 말은, 이 기술 분야에서 명장이 되려는  야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삶의 모든 국면을 통해 훈련, 정신집중, 인내를 '실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훈련을 하는가? 우리 할아버지들은 이 물음에 더 잘 대답할 자격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권고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불필요한 사치에 탐닉하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훈련에는 분명히 결점이 있다. 이러한 훈련은 엄격하고 권위주의적이었고, 절약과 저축의 미덕에 집중되어 있었고 , 여러가지 면에서 생활에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훈련에 대한 반발로서 '어떠한 '훈련 이든 의심하고 훈련을 받지 않은채, 생활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여덟 시간 일하는 동안에 부과되는 규격화된 생활 방식과는 반대되는 것에 탐닉해서 균형을 잡으려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 하루의 일정한 시간을 명상, 독서, 음악감상, 산택등에 할당하는것, 최소한의 시간 이상으로는 탐정소설이나 영화같은 도피주의적 활동에 탐닉하지  않는것 과식하거나 과음하지 않는것 등은 분명히 초보적 규칙이다.

 

...

 

내가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집착한다면, 그 또는 그녀는 생명을 구조하는 자일 수는 있지만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홀로 있으려고 해본 사람은 누구든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침착하지 못하고 조바심을 느끼며 심지어 상당한 불안까지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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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없이 자기 자신을 맡기고 우리의 사랑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불러 일으키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을 뜻한다. 사랑은 신앙의 작용이며 따라서 신앙을 거의 갖지 못한 자는 거의 사랑하지 못한다.

 

...

 

사랑은 활동이다. 내가 사랑하고 있다면, 나는 그나 그녀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에 놓여있다. 내가 게으르다면, 내가 끊임없는 각성과 주의와 활동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나는 사랑받는 사람과 능동적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잠자는 것만이 비활동에 적합한 상태다. 각성 상태는 게으름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상태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여 있는 역설적 상태는 깨어 있을 때에도 반쯤 잠들어 있고, 잠잘때에 또는 잠들고 싶어할 때에도 반쯤 잠들어 있고, 잠잘 때에 또는 잠들고 싶어할 때에도 반쯤 깨어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깨어 있다는 것은 싫증을 느끼지 않기 위한, 또는 싫증내지 않기 위한 조건이다.

 

 

사실상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는것, 싫증을 내지 않는 다는 것은 생활의 주요 조건의 하나이다. 내면적인 게으름을 필하기 위해 수용적, 축적적 형태로든, 자신의 시간을 단지 낭비하는 상태로든, 하루종일 자신의 눈과 귀로 느끼고 사고하고 있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데 불가결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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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절대적 기술이 필요하다.

대책없는 사랑은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모든 사랑은 또 지나가기 마련이다.

아니다. 사랑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지나가는 것이리라.

 

책장이 아주 잘 넘어가는 책 '사랑의 기술'..

다시 한번 읽고 싶어서 자꾸만 넘기고 뒤적인다.

내일은 반납해야 하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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