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세계 단편선 미국편 송승환 편저

다림영 2009. 6. 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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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몰입을 하지 못하면서 다시 들어 보았다.

단편모음이고 각편마다 해설이 있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 다독으로 시간을 채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뒤늦은 나이에  산란한 정신을 붙잡으려니 도무지 소화불량인 것이다.

지금 내 몸의 상태처럼 머릿속도 닮아가고 있다.

젊음이란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일까

그때 그것을 알지 못하고 헛되이 보낸 값을 단단히 치르고 있다.

그러나 읽는다.

 

 

 

존스타인벡의 빨간 망아지가 가슴에 남는다.

성장소설이다.

주인공은 아버지에게 어느날 갑자기 망아지를 선물을 받는다.

망아지의  이름을 짓고 따뜻한 사랑으로 날마다 돌보며 친구가 된다.

그러나  겨울이 오고 망아지는 비를 흠씬 맞게 되고

시름시름 앓게 되고 급기야는 목숨을 잃고 만다.

그 아픔은 주인공에게 있어 이루 말할 수 없다.

친구를 잃을 것이나 다름없다.

눈물을 흘리며 목숨줄을 놓은 망아지 위로 날아드는 말똥가리들

그들이 마치 망아지를 죽이기나 한것처럼 주인공은 복수심에 불타 마구 죽이지만

아버지는 냉정하게 아들을 야단을 치고 그 아버지에게 말들을 관리하는 아저씨는

아이의 입장에서  소리친다.

"제기랄! , 당신은 조디의 기분도 모른단 말입니까?"

 

 

 

어릴때 우리집엔 늘  강아지 두어마리가 있고는 했다.

집 마당 한쪽 측백나무에 묶어 놓고 키우곤 했는데

사실 엄마에게 있어 그것은  어떤 작은 수입원 이었다.

이맘때이면 개장수들이 삼륜차를 끌고 동네에 나타나 개를 사러다니는데

봄내 키웠다가 동생들이 학교 간 사이  몰래 팔아버리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동생이 개들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 가방을 냅다 던져놓고

다락에 올라가 밥도 먹지 않고 종일 울다가 지쳐 잠이 들던 생각이 난다.

 

 

날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저 반기며 마음을 나누던 금쪽같던 친구..

친구가 없는 그자리는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밥을 포기할 정도로.

딱 한가지 방법만이  있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좋아하며 따르는 각별한 또다른  친구가 생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친구를 잃은 상처가 빨리 아물게 되고  이별의 고통에서 헤어날수 있는 것이다.

 

엄마는 그것을 알기에 어디선가 아주 조그맣고 똘똘한 똥강아지 두마리를 다시 사 들여 놓는다.

동생의 아픔은 구름처럼 사라지고 또 다른 아름다운 우정을 키워 나가게 된다.

뜨거운 여름이 오면 이별은 다시   찾아 오겠지만...

 

동물과의 우정 ..사랑... 그것은 아이들에게 있어 굉장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들은 그런것을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 있어 친구같던, 집에서 키우던 동물의 죽음이나 헤어짐은 쓰라린 이별을 체험하게 하고

부쩍 성숙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맑고 순수했던  마음은  점점 희미해지며 삭막한 어른이 되는 길로 걷게 되는 것이다.  

 ........

 

 

"길잡이

인간 중심주의는 신본주의에 대립하여 인간이 가장 고귀한 존재이며 인간의 이성이야 말로 모든 가치의 척도이고, 인간 이성에 의해 유토피아 건설이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바탕이 된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자율성이 중시된다.

 

모든 행동의 판단 기준이 인간의 행복이나 가치에 놓여 잇다면 결국 세계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개조되어 갈 것이다. 가령 인간이 삶의 영역을 넓히고 더 많은 재화를 얻기 위해 생물 종種을 희생시킨다고 하자. 그러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생물종의 보존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 중심주의의 모습이다.

 

 

이런 세계관에서는 멸종위기에 있는 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연은 황폐화되어가고, 자연속에 평화와 안정을 누리던 우리의 심성도 공허와 불안에 허덕이게 된다. 인간 중심주의의 폐단이 지적된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더 참다운 삶의 행복을 위해 인간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ㅇ낳는다는, 생태게 중심주의가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개빌란을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하고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여기는 조디의 사고는 원래 우리가 지녔던 아름다운 덕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정신을 잃었고, 결국 세계와의 단절만을 불러온 것이다. 현대인의 고독과 허무를 달래기 위해서도, 거칠어진 자연을 복원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세계관의 확립은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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