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헤클만은 운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따금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에겐 운이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실은 "운이 나빠 큰일이구나"하고 말하려는 것이지, 운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한스헤클만을 제하고는, 그것이 좋은 운이든 나쁜 운이든 누구나 운수를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그 운수를 함께 데리고 다닙니다. 주머니에 넣어서 데리고 다니는 이도 있고, 모자 안에 구겨넣어서 함께 다니는 이도 있는 가 하면, 손가락 끝에 묻혀서 데리고 다니는 사람, 그리고 혓바닥 아래 붙이고 다니는 사람도 더러 있지요. 이건 변호사입니다. 내 운수는지금 펜촉위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공기처럼 말갛기 때문에 모습은 영 보이지 않는데 이놈이 좋은 운인지 나쁜 운인지는 이 이야기를 읽어 주시는 여러분 생각에 달려 있겠지요.
그런데 한스 헤클만에게는 운이 전혀 없었답니다. 어디서 운수를 빠뜨렸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깨끗이 한스로부터 달아나버린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한스는 워낙 벌거숭이 아기 모양 가진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운이 그다지 나쁜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가난하긴 했어도 아내나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았으니가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숨돌릴 겨를 없이 일하고도 주머니가 두둑해진 적이 전혀 없었으므로 좋은 운수라고는 결코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입을 것, 먹을 것에 별로 옹색치는 않으니 아주 쓸모 없는 운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데다 그렇다 해서 아주 쓸모 없지도 않은 것이라면 운수는 없다고 밖에 말 할 수 없지 않겠어요?
캐서린이라는 이름의 한스의 아내는 어느날 저녁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에게 전혀 운이 따라붙지 않는군요"
언제나 하루치의 양식을 사고 나면 한푼도 남지 않을 만큼의 돈만을 벌어오는 한스를 보고 한 소리입니다.
"응, 전혀 운이 안따라 붙는데...."
한스도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작정이에요?"
"어쩔작정이라니?"
"어쩔 작정이 없으면 국거리 양배추도 냄비에 들어가지 않잖아요!"
아내가 신경질을 부리자 한스는 맞대꾸를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냄비에 들어 있는 배추를 없앤 적은 없잖아"
"여보, 당신!"
캐서린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숲속 할머니네로 가서 의논해 봐요. 어디서 어떻게 운수를 빠뜨렸는지 그 할머니는 알고 있을 거예요."
"애써서 도로 찾아본들 별로 좋은 운수가 아닐지도 모르지 않소"
"그래도 어떤 운수인지 알아보기만 해도 좀 덜 답답할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캐더린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만약 맘에 안들면 그 자리에 도로 내팽개쳐 버리고 오면 되잖아요."
"엿장수 마음대로"
한스가비꼬았습니다.
"자기 운수를 찾아내면 그 즉시 싫든 좋든 주워 오지 않으면 안되게 돼 있는거야!"
한스는 이렇게 오기를 부리긴 했지만 속으로는 아내의 말대로 숲속 할머니를 찾아가 보리라 결심하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타박한 것은, 나는 이만큼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너는 그만큼 밖엔 아는 것이 없다며 뽐내고 싶었던 탓입니다.ㅇ ㅏ내가 생각해 낸 일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지 한껏 연설하고 나서야 한스는 비로소 아내의 생각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이세상에는 한스와 같은 남자가 참 많아요.
다음 날 아직도 공기가 싱그러운 이른 아침, 한스는 숲속으로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길가 담벽에는 눈이라도 소복이 내린 듯 하얀 꽃 송이가 뒤덮여 있엇습니다. 나뭇가지에서는 뻐꾸기가 울고, 사방엔 꽃향기가 넘쳐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에 찾아내는 운수는 분명히 좋은 운수 일거야'
한스는 흥겨워하며 할머니 집의 나무 문을 두드렸습니다.
"들어와요"
문 앞에 놓인 돌 위에서 구두 바닥을 여러번 문지르고 나서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 한스더러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매우 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나이든 탓으로 얼굴은 거의 잿빛이었고, 긴 머리카락은 눈처럼 새하얗게 세어 있었지요. 그리고 어깨엔 길고 지저분한 망토를 두르고 있었고, 할머니가 기대어 앉은 의자 등받이 꼭대기에는 덩치가 큰 깜장 고양이가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뭘 하러 여기 왔지?"
할머니가 한스에게 물었습니다.
"운수를 찾으러 왔어요. 제 운수 말입니다."
한스가 사정을 말했습니다.
"자네 운수를 자네는 어디서 없앴는데?"
할머니가 또 물었습니다.
"그걸 몰라서 왔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이 한동안 '흠! 흠!'하고 만 있다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자네는 굶주리지는 않았겠지?"
"네 ,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흠, 그럼 마시는 데는?"
"물은 언제나 실컷 마실 수 있었고 우유에 주린 적도 없어요. 맥주엔 늘 주렸지만"
한스가 대답했습니다.
"입는 데 불편을 느낀 적은 ?"
"네 , 없어요."
한스의 대답입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굳이 운수를 찾을 필요 없이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좋겠는데...."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운수인들 그 이상의 일은 별로 해 줄것 같지 않은걸."
"그래도 운이 좋으면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수도 있지 않겠어요?"
한스가 다그쳤습니다.
"만약 나쁜 운이라면 지금 자네가 가지고 잇는 것 마저 빼앗아 가 버릴지도 모르거든"
타이르는 할머니에게 한스는 매달려 졸랐습니다.
"그래도 역시 저는 제 운수를 찾아내고 싶은데요. 나쁜 운수라도 길들이면 되지 않을까요? 꼼짝도 못하게 꽉 잡고 말입니다. "
"글쎄 그거야 두고 봐야 알 일이지...."
할머니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한스가 계속 고집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끙끙 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절뚝 절뚝 걸어가 책장 속에서 한 권의 두꺼운 책을 꺼내어 왔습니다. 깨알 같은 글시가 가득 채워져 있는 그 책 가운데서 할머니는 간신히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말했습니다.
"한스, 자네는 3년 전 나이트링겡의 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운수를 빠뜨렸군 그래. 세 갈래 길에 돌십자가 쓰러져 있는데 자네는 그 십자가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었지? 그때 주머니에서 굴러 떨어진 은전 한 닢과 함께 운수도 빠져 달아난 거야.
자네 운수는 아주 고약한 성미를 가졌지. 그러니까 심자가를 보자마자 딱 들러붙어 버린 거라구. 고약한 성미의 운수는 좋은 것만 보면 버터에 덤벼드는 파리처럼 염치없이 붙어 버린단 말야. 한가지 다행한 일은 자네 운수처럼 고약한 놈이 십자가처럼 좋은 것과 맞닿으면 사람 눈에 띄게 된 다는 사실이지. 그 돌십자가로 가 보면 자네 운수가 십자가에 붙어서 설설 기어다니는 것이 보일거야"
할머니는 책 표지를 덮고 까만 양털로 짠 작은 주머니 하나를 한스에게 건네 주며 말했습니다. "자네 운수를 찾아내거든 그놈을 당장 이 안에 처 넣어서 주머니 끈을 단단히 묶어 두어야 하네. 그럼 다녀오게."
주머니를 손에 든 한스는 그 세갈래 길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할머니 말대로 쓰러진 돌십자가가 있었지만 한스의 운수같이 생긴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스는 한동안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까만 딱정벌레 한마리가 설설 기어다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가만있자, 이게 내 운수라는 놈인가?"
한스는 조심스레 벌레를 엄지와 집게 손가락 끝으로 꼭 잡아 눌러 보았습니다. 벌레는 아교로 붙인듯이 십자가에 딱 붙어 있었지만, 한스는 그놈을 사정없이 돌에서 뜯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딱정벌레가 아니라 그놈은 엄지 손가락 크기만한 난쟁이였답니다! 먹물같이 새까만 그 난쟁이는 발길질하고 버둥대며, 울고 소리치며, 빨간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는 등 온통 난리를 피웠습니다.
너무나 놀란 한스는 그놈을 그만 놓칠 뻔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는 주머니 속에 얼른 쑤셔 넣어 끈을 단단히 죄어 매었습니다.
한스의 운수란 우선 이렇게 생긴 놈이었답니다. 한스는 곧 자기 운수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에서 꺼내주면 너는 나한테 뭘 줄래?"
"주긴 뭘 줘!"
운수가 물어뜯듯이 말했습니다.
"좋아,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이렇게 해서 한스는 자기 운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빵찌꺼기 따위를 넣는 항아리 속에 주머니채로 박아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운수에게 또 말을 걸었습니다.
"거기서 꺼내주면 나한테 뭘 줄 거야?"
"주긴 뭘 줘!"
운수는 여전히 대들었습니다.
"좋아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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