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메밀이 번개 맞은 까닭/안데르센

다림영 2009. 5. 2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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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는 많은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호밀, 보리, 귀리 같은 것들이 서로 어울려 쑥쑥 자라더니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했지요.

"귀리는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호밀이 보리에게 말을 걸었어요.

"맞아요, 이삭이 너무 근사해요, 꼭 노랗고 작은 새 카나리아 한무리가 앉아 있는 것 같아요!"

보리가 말하자, 호밀은 생각났다는 듯이 또 말했어요.

 

"저는요., 귀리가 이삭이 익으면 익을 수록 점점 더 머리를 숙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이말을 들은 귀리가 말했어요.

"이삭이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이는 건 우리 모두 마찬가지예요. 보세요. 보리도 호밀도 모두 그래요."

 

"어머머 정말이네?"

호밀과 보리는 깔깔 웃어 댔어요. 사실 거의 모든 곡식들은 익을 수록 고개를 숙였어요. 이 들판에서 머리를 꼿꼿하게 들고 있는 곡식은 오직 메밀뿐이었지요. 메밀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고개를 숙이는 곡식들을 우습게 생각했어요.

 

"저런 바보들! 왜 온종일 고개를 조아리고 있지? 무슨 죄라도 졌나?"

메밀이 빈정거렸어요. 그러다가 느닷없이 씩 웃으며 팔짱을 끼며 말했지요.

"하긴 고개를 숙이는 마음을 알 만도 하다. 나야 사과꽃처럼 아름다우니까 고개를 들고 있지만, 재들은 다르지. 볼품이 없잖아!"

 

메밀이 혼자 떠드는 걸 버드나무가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러자 메밀이 버드나무를 흘긋 쳐다보았어요.

"버드나무야, 너도 나를 정신없이 보고 있구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허락해 줄게. 나를 실컷 보렴. 이 들판에는 나보다 예쁜 게 도통 없기 때문에 봐 주는 거야."

 

 

메밀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이번에는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 날 저녁이었어요. 무서운 폭풍이 불어왔어요.

"모두 고개를 숙여, 엄청난 바람이야."

꽃들이 모두 머리를 아래로 떨구었어요. 하지만 메밀은 더욱 힘을 주고 고개를 든 채 꼿꼿하게 서 있었어요.

'메밀아, 너도 어서 고개를 숙여. 안 그러면 부러지고 말거야."

 

"뭐라고? 웃기고 있네. 숙이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숙여라.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으니까?"

메밀은 꽃들의 말을 우습게 생각했어요. 곡식들도 메밀에게 소리쳤어요.

"그러지 말고 어서 고개를 숙여, 뿌리채 뽑힐 수도 잇어."

"참견하지 마. 나는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니까. 나는 너희들하고는 다르단 말야."

 

 

메밀은 곡식들의 말도 우습게 생각했어요. 버드나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메밀을 타일렀어요.

"너 , 왜 그러니? 우리 말좀 듣지."

"몰라서 물어? 나는 너희 말을 들을 수가 없어. 왜냐고? 나는 특별하니까. 너희들하고는 다르잖아?"

버드나무는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하지만 메밀을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할 수 없구나. 하지만 이거 한 가지만은 내 말에 따라다오."

"뭘?"

 

 

"있다가 구름이 열리면서 커다란 빛의 막대기가 떨어질 거야. 그 때만이라도 하늘을 보지말고 얼른 고개를 숙여  알겠지?"

버드나무는 걱정스럽게 말했어요. 하지만 메밀은 오히려 으스댔어요.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내가 특별하다는 걸 보여 줄 좋은 기회로구나. 빛의 막대기가 떨어질 때 나는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 볼거야. 그래도 나에게는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 난 너무도 특별한데, 왜 너희들에게 생기는 일 따위가 내게 생기겠니?"

 

 

메밀은 남의 말은 조금도 귀 기울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정말로 빛의 막대기가 떨어질 때 바짝 들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으악!"

 

그게 메밀의 마지막 목소리였어요. 폭풍우가 지나간 뒤 정신을 차렸을 대, 모두들 메밀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메밀만이 새까맣게 타 있었던 거예요.

"어쩌면 좋아. 그러게 우리 이야기를 들었어야지."

 

"걱정해 주는 말도 아니꼽게 듣더니, 이게 무슨 일이람?"

곡식들은 몸에 묻은 물을 떨어 내며 수군댔어요. 바람이 이리저리 오가며 젖은 곡식들을 말려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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