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길에서 시와 소설을 만나다./소설가 임동헌의 이미지 여행

다림영 2009. 1. 1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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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오후는 정중동淨中動이다. 낮에는 밤을 기다리고, 밤에는 낮을 기다린다.바다의 철썩임에 밤 내내 젖은 몸을 한나절 내내 말리다 보면 다시 밤이 온다.얽히고 설킨 인생도 그와 같다. 그러면서 정신의 피륙에 살집이 오르다 보면, 인생의 보풀이 이런것인가 헤아릴 즈음이면 죽음이 다가와 있다.해서 인생은 낮과 밤이 뒤바뀌는 것과 닯아 있다.그렇다고 절망할 것은 없다. 어둠속에서도 어디선가 빛이 반짝인다.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밝아도 그 어딘가에 어둠이 도사리고 있다가 저녁 나절, 자신들의 무리와 힘을 합친다.

 

 

 

 요철은 인생과 닮아있다. 기쁜날이 있으면 슬픈날이 있고, 돈이 생기면 돈을 써야 할 일이 생기는 것과 같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도 마찬가지다. 융기하고 가라앉은 진흙들은 서로의 빛을 위해 몸을 드러낸다. 어두운 빛은 밝은 빛을 위해 몸을 낮추고, 밝은 빛은 어둔 빛을 위해 몸을 낮춘다. 갯벌조차 이렇게 인간적이다. 서로 시기하지 않으니 공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뜻도 모르고 사람들은 어둡다커니 밝다커니, 예쁘다커니 밉다커니 제 주장만 펼치다 스르르 잠들고, 잠 속에서도 제 성질을 참지 못해 부르르 떤다. 요철이란 사람들의 스승이다.

무릇 쉬고 있어야 나갈 수 있고, 나가 보아야 들어올수 있다. 스님의 말도 아니고 신부의 말도 아니다

 

 

 

꼭 길이 나 있어야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가. 또 자전거는 꼭 타고 가야만 자전거일 수 있는가. 때로는 자전거 바퀴 역시 흙냄새를 마고 싶어할 수 있다. 주인과 더불어 있을 때 주인은 한 발 두 발 내딛고, 자전거는 한 바퀴 두바퀴 구를 수 있기를 소망했을 수도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 가는 것은 정처없는 길이 아니라 어디든 함께 할 수 있는 길이다. 무엇이 행복인가.

 

 

흙은 모든 뿌리의 고향이다. 흙은 부드럽게, 그러나 강인하게 작물의 뿌리내림을 돕고 마침내 결실을 돕는다. 태양이 그 결실을 끌어주고, 마침내 그들 앞으로 수확기가 다가온다. 세상에 완벽하게 죽어있는 것은 없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죽은 것은 아니다. 수확을 증거하는, 사물화된 작물이 그걸 말한다. 사물화된 작물의 역할이란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숨죽이고 있는 흙의 힘을 증명하는 데 있다.

 

 

유선형은 부드러움의 다른 이름이다. 모든 배는 날카롭지 않고 유선형이다. 모든 배는 나아가기 위해 만들어지지 무엇인가를 찌르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배를 만드는 모든 사람의 뜻이 이랬다. 그 배를 만든 사람들 중 일부는 누군가를 찌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배를 만들 때의 초심을 잃었던 탓이다. 자세히 보라.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게 만들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엇인가를 찌르기 위해 만들지는 않았다.  모든 생산물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다만 사람들이 그걸 잘못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적요롭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영영 숨죽이고 있는 것은 없다.  잔잔하다는 것도 그렇다. 그것은 분명, 거칠게 물결치기 위한 전단계이다. 어찌 같은 모습으로만 존재 증명을 할 수 있는가. 하물며 바다라는 것은 더욱 그렇다.어찌 포구에서 배의 삶을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배 역시 바다 한가운데 있을때 행복한 법이다. 만선 깃발 역시 그렇다. 깃발도 흔들리고 싶어한다.

 

 

모든 과일은 빛과 시간의 세례를 받아 단단해지고, 역시 빛과 시간의 세례를 받아 물러진다. 나무는 열매가 맺을 때부터 시작해 튼실한 과육의 몸이 되었을 때까지 그 과일의 무게를 견고하게 받아준다. 과일이 어떤 형식으로든 나무를 떠날 때까지. 그런 점에서 나무는 희생적이다. 과일도 그걸 안다.  웬만해서는 나뭇가지가 꺾이도록 제 몸의 무게를 늘리거나 부풀리지 않는다.

 

 

가치 있는 것들은 대개 숨어 있다. 땅 속이거나 집 뒤뜰이거나 항아리안이거나, 아무튼 그렇다. 그것은 얼핏 숨어 있는 것들입장에서는 섭섭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가치로운 것은 쉽사리 몸을 드러내지 않는 법이라는 것을.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지만 화려한 것일 수록 일찍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대체로 굵고 짧게 산다고 허풍떠는 존재들이야말로 아무도 뒤돌아 보지 않는 법이다.

 

 

모든 문은 당당하지 못할 때 작아보이고, 허세로 가득 찰 때 커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문은 누군가 들어서라고 존재하는 것이고 누군가 길을 나서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문이 문의 의미를 아는데 사람이 왜 문앞에서 주저해야 하는가. 문 앞에서 당당한 사람만이 문 안으로 들어설 수 있고 , 문 밖으로 나설 수 있다.

 

 

모든 섬은 형제처럼 살아간다. 모든 섬은 서로를 향해 손을 뻗는다. 함께 비를 맞고, 함께 안개에 묻힌다. 그러지 않으면 형제가 아니다. 그들 곁으로 시간이 지나간다. 배도 지나가고 배를 모는 사람도 지나간다. 모든 것이 지나가지만 지나갔다고 해서 영영 다시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서로 손을 잡는 것도 중요하고,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어떤 것이 참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한사람이 손을 내밀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손을 잡는다. 한 사람이 어깨에 팔을 두르면 또 한 사람이 어깨에 팔을 두른다. 악수며 어깨 동무며 하는 것보다 인간적인 몸짓은 없다. 모든 것은 둘 이상이 되었을 때 조화롭다. 꿈도 균열도 모두 둘 이상일 때 생긴다. 혼자 조화로운 것은 없다. 또 있다. 혼자 만드는 꿈은 공허하다.  둘 이상이 만드는 꿈은 비록 이루지 못할 꿈일지언정 밀고 당김 속의 물보라 처럼 눈부시다.

 

 

 

불분명하다고 해서 미심쩍다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불분명한 것은 단지 흐릿할 뿐이다. 미심쩍다는 것은 정직하지 않아 보인다는 뜻이므로 흐릿한 것과는 다르다. 길게 자신의 그림자를 끌고 간다고 해서, 그 그림자가 또렷하지 않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식의 오류다. 바다든 땅이든  살아간다는 것은 수학 공식으로 풀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은 끝끝내 붙잡고 늘어지면 풀리지만 삶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삶이 수학보다 어렵다고 단정하는 것도 오류이다. 바다의 저, 명료하지 않은 자취가 그걸 증명한다.

 

........

 

여행은 가난한자에게 있어 언제나 꿈이다. 먼 밤하늘 반짝이는 별이다.

그러나 가난한자는 꿈을 버리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며 그깜깜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소설과 시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이미지 여행..

책과의 부지런한 만남을 이루었어야 하건만.. 

텅빈 만남으로 ..부족한 독서로 인한 나의 여행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소설속의 이야기에 그저 아프다.

다만 뒤적이며 깨달으며 세상을 저만치 두고

책속의 눈부신  길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참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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