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여행이 수준 높은 놀이의 일종으로 대접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생활의 양념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관광이 중요한 산업으로 시행되고 있고, 교통수단으 발전으로 인하여 현대인들은 선조들보다 여행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은 오늘날 사멸한 예술로 전락한 듯한 기분이 든다. 왜일까?그것은 여행에 대한 잘못된 인식때문이다.
여행의 참다운 방법이나 효험을 모른채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그 때문에 여행의 결과는 항상 아쉬움과 노곤한 몸만이 남는다. 여행이란 얻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다. 버리기 위해 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우선 잘못된 여행에 대하여 알아본다면 보다 명확하게 다가올 것이다.
여행의 목적으로 잘못된 것 중의 첫째는 정신적인 발전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이 그렇게 쉽사리 향상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동아리의 모임이나 강연에서도 우리는 정신의 향상을 바라겠지만 실상 그렇지 못하다.
여행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여행안내인이란 참을 수 없는 제도를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여행지의 어느 길모퉁이나 동상 앞에서 누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다는 등의 쓸데없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나는 전에 묘지에서 수도원의 수녀들이 인솔하고 있는 학생일행을 만난 일이 있다. 그 일행이 어떤 묘비앞에서자 수녀는 학생들에게 묘지의 주인에 대한 잡다한 강의를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에 어떤 성실한 여행자들은 고지식한 학생처럼 열심히 메모를 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여행의 잘못된 목적 두 번째는 후일의 이야깃 거리를 만들기 위한 여행이다. 그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기보다는 그곳에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을 더욱 중요시한다. 때문에 진정으로 가슴에 와 닿는 감상보다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의해 더욱 많은 장소를 바쁘게 뛰어다니고 셔터를 눌러 대곤 한다.
이런 한심스런 여행자들은 떠나기 전부터 완전한 일정표를 만들고 그것을 철저하게 지킨다. 집에 있을 때도 시계와 달력에 묶이던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서도 시계와 달력의 노예임을 자랑스러워 하는 격이다.
참된 여행이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어야 한다. 잊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들은 생활하면서 많은 면에서 구속받는다. 체면도 지켜야 하고 예절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서는 그 누구도 알아보지 않는 보통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여행의 참된 동기일 것이다.
참된 여행자에게는 언제나 방랑의 기쁨과 유혹과 모험심이 있다. 여행이란 곧 방랑이다. 방랑이 아닌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여행의 참뜻은 아무런 의무감 없이, 시간에 쫒기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없이 훌훌 털고 떠나가는 목적 없는 길이어야 한다.
진짜나그네는 방향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의 이름조차모르는 것이다.
여행에서 어떤 감흥이나 소재를 얻으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그런 목적을 가질 때 당신은 먼 나라를 여행하거나 앞뜩에서 서성대거나마찬가지가 되고 만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느끼는 마음과 무엇을 보는 눈을 갖추었느냐 아니냐인 것이다. 이것이 없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에 불과 할 뿐이다.
무엇을 보고자 하면서 걷는 많은 나그네들은 실상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걷는 나그네만이 실제로 많은 것을 보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고 떠나야 한다. 그리하여 문득 눈에 들어오는 신선한 감동과 만나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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