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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산행 속에서

다림영 2008. 9. 17.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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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의 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약간 넣어 싹싹 비벼 먹는다. 세상에서 무엇이 이보다 더 맛날 수 있을까. 고추장에 혹시 기분을 가볍게 하는 요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수저 한 수저 밥을 뜨니 나의 입안은 그 맛남으로 벅차고 몸과 마음은 환희의 물결로 일렁인다.
 오늘 먹는 이 밥은 보약이다. 거뜬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것 같은 힘이 불끈 불끈 쥐어진다. 먹는 것을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던 나였다. 아무래도 남편에게서 물이 단단히 배였다.

 

  남편은 '이번엔 보리밥이야?'하고 만면에 웃음을 가득 싣고 자꾸만 내게 묻는다.
 월요일부터 나는 입을 귀밑까지 올리며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한 말을 쏟아냈었다.
 "있지, 우리 시장에 가서 노란 양푼 큰 것  하나 사자, 그거 꼭 가져가자. 그것 아님 별로야, 보리밥을 비벼먹으려면 말이지. 나물은 두 가지만 해도 충분 할거야. 상추 도 잘게 찢어 넣고 말이지 , 강 된장도 끓일까? 엄마에게 끓여 달랠까? 그럼 더 맛있겠지? 그리고 보리밥을 넉넉하게 쌓아야 할거야, 어쩌면 우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 몇은 그냥 지나치지 못할걸, 살살 웃고 또 침을 흘리며 '친구 합시다' 하면서 불쑥 앉아버릴 지 몰라....그렇지? 응?"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켜대며 침을 다셔가며  마구 늘어놓았다.
"혼탁한 세상은 아득한 저 아래 있고 우린 그 산꼭대기에서 신선처럼 혀를 차며 마주앉아 다 잊고 그저 그것에만 몰두하는 거야....
 요것 조것 모두 넣고 착착 싹싹 고추장도 듬뿍 넣고 참기름이 빠지면 안되겠지? 그 다음 막걸리 한 사발 벌컥 벌컥 농부처럼 마시고 말이야, 보리밥 한 숟가락 수북하게 떠서 입에 넣으면....
우핫하하...사람들은 너무 부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할거야 그렇지? 어때?"

 

"하하하, 우핫하, 아하하"...
그의 대답이었다.

 

  남편은 먹는 것에 굉장히 욕심을 내던 사람이었다. 그의 생활이 눈부실 때에는 식구들을 위해 친구들을 위해 맛난 것을 자주 사주곤 했다. 세상이 저를 위해 존재하는 줄만 알고 거침없이 주변 사람들을 위해 저 자신을 위해 호기를 부리곤 했다.
 어느 날 그에게 무시무시한 토네이도가 휘몰아쳐 왔다.  그는 넘어져야 했고 피를 흘려야 했고 눈물을 쏟아야 했고 다 털어 주어야 했다. 토네이도는 그의 모든 것을 앗아 가버렸다.
 그 후 그는 비에 젖은 작은 새처럼 초라하고 슬퍼 보이기가 이를 데 없었다.
친구에게 얻어맞고 들어와 엄마치맛자락을 붙잡고 고해 받치며 훌쩍거리는 아이처럼, 오로지 엄마의 온화한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에 위안을 받으며 눈물을 멈추고 샐쭉거리는 아이이듯, 내 치맛자락을 꼭 붙들고 놓지 않는 그 어린것의 마음이 되고 말았다. 오로지 아내인 나만이 그의 곁에 있었고 핸드폰이 있어보았자 편히 전화 할 때라곤 나밖에 없는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할 일이 너무 많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휴일엔 도서관에서 몇 시간씩 머물곤 했다. 그것이 내겐 첫 번 째 소중한 일이었다.
 처음엔 아직 이른 나이에 일에 손을 놓는 그가 너무 밉고 싫었다. 그저 한심하게만  생각되었다. 이런저런 남의 좋은 얘기를 언급하며 잘 살아볼 것을, 열심히 살아볼 것을 때마다 비추었지만 그는 도무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고 사형선고라도 받고 생을 체념한 사람처럼 맥을 놓았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경외과출입을 하면서 약까지 먹어야 잠이 드는 그였다. 남자에게 있어 일이란 삶의 전부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나를 위한 마음을 과감히 버려야 했다. 가장이 쓰러져 가고 있는데 무엇이 소용일까 싶었다. 남편은 돈도 문제였고 일이 사라진 것도 큰 것이었지만 사람 참 좋아하던 그가 친구들과의 단절로 인한 상처가 제일 컸다.
 진정한 친구는 그러한 시기에 위안과 위로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겐 진정한 친구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가 빛 날 때 함께 하던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나 또한 쉰을 넘게 살아온 그에게 다른 어느 문제보다 단 한 명의 친구도 곁에 없다는 사실에 고뇌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와 함께 상처를 하염없이 건드리고 덧내며 아파할 수만은 없었다.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공부를 무던히 하고 있던 터였다. 몸과 마음이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그를 부축하고 일어서야 할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아내인 나였다. 그것은 나의 책임과 의무였던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책을 읽다가도 무심결에 입에 힘이 들어가며 뻐근해지곤 했다.

 

 날마다 운동의 시간을 갖는 내겐 산행의 의미란 오로지 남편을 위하는 일이었다.
 아내인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그의 마음 방을 환기시켜야만 했다. 안에서 닫힌 그 문을 활짝 열어 빛이 들게 하고 신선한 공기가 드나들도록 하고 싱그런 화초 하나 그 창가에 놓아두어야 했다. 나는 남편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삼가 하고 다만 그가 즐거워 할 일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름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저것 남편의 구미에 맞는 것들을 정성껏 쌓아 배낭에 넣고 산에 올랐다. 집에서 먹는 그 어느 찬보다 정성을 기울이고 그와 나의 두 배낭에 가득 채웠다. 말은 그렇지만 사실 별것도 없었다. 밥은 물론이거니와 된장찌개도 보온병에 담고 두부라던가 돼지고기 삶은 것이라던가 그리고 상추 고추 호박 볶은 것이며 미역 살짝 데친 것 등등의 그저 그런 것이다.
 그러나 산 정상 높은 곳에서 펼쳐놓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것이다. 어느 때엔 지나는 이들의 즐거운 찬사에 그들을 즉석에서 초청하고 합석을 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사람 사는 얘기에 흥을 더하면 생에 있어서 더 이상 그 어느 것도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친구를 사귀는 재미에 푹 빠져서 남편은 휴일 아침 일어나면 부엌에 드나들며 나의 일을 돕고 산행을 서두른다. 또한 모든 산행의 일정이 끝나고 하산하는 그 시각부터 어떠한 각별한 메뉴를 거론하면서 다음 휴일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저 남편의 위해 시작한 산행이 커다란 보람과 기쁨으로 내게 다가왔고 우리는 산행의 둘도 없는 동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고된 산행의 정상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는 기막힘!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높고 파란하늘, 구름은 서로 어울려 흘러가고 바람은 어딘 가로부터 불어오고 나뭇잎들은 그 결에 서로 부딪히며 사각거리고....
 그리고 사람들의 정겨운 웃음과 이야기 소리 소리들....
 시라도 한 수 그저 술술 나올 것 만 같은. 어쩌면 피안의 세계가 저 먼 어디에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을이 깊어간다. 우리의 산행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예전 시아버님께서 건강하실 때 게으름을 피우던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산을 가까이 하면 신선이 된다!' 하고.  한자 신선선(仙) 자를  찾아보면 사람과 산이 함께 있다. 다만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모이고 쌓이고 합해지다 보면 모를 일이다. 신선이 되는 것은 언감생신 바랠 것은 못되지만 그  뒤꽁무니 저 끝에라도 줄을 서게 될 지.

 

 우리는 다만 산을 오르고 또 내려오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산 속에서 서너 시간 이상 머물렀다. 막걸리 몇 잔의 기운에 몸이 흔들리면 남편은 자리에 누워 눈을 부치고 그의 곁에서 나는 책을 읽는데 그가 뒤척이면 조분 조분 소리내어 읽어준다. 그러면 그는 어느새 아이처럼 코까지 골며 깊은 잠이 들고 마는 것이다.
 이제 찬 기운이 찾아들어 그렇게는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산 속에 잠시 머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좁디좁은 우리의 마음에는 산이 꽉 들어차고 혼탁함으로 물들어 있던 속은 말끔히 세수가 되고 남김없이 비워져서 웃음이 종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이번 휴일 우리의 산 정상에서의 메뉴는 보리밥이다. 입을 다시며 아주 맛있게 먹는 어린 아이 같은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지나는 이들의 늦추어지는 발길 또한 선명하게 그려진다. 남편은 그들의 눈빛과 문득 마주치면 아이처럼 우쭐해져서 벌떡 일어나 한 잔의 막걸리를 기쁘게 권하리라. 호탕한 남편의 웃음소리가 나를 향해 달려 내려오는 듯하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러한 별것도 아닌 상상으로 출렁이며 혼자서 벙긋거린다.

 고된 일주일을 무사히 견뎌낼 수 있는 우리의 힘은 휴일의 산행에서 온다. 우리는 크고 특별한 꿈을 꾸지 않는다. 그러한 사소한 기다림으로 하루 하루가 애틋하게 저물어 가는 것이다.


 어느새 금요일이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네시장에는 그 그릇들이 도무지 없고 큰 시장에까지 나가 한바퀴를 돌고 또 돌아서, 보리밥을 넣고 싹싹 비빌 넉넉한 양푼과 그 옛날 노란 주전자를 샀단다. 그리고 세상에, 막걸리 잔은 자그마치 다섯 개나 샀다고, 번잡한 시장의 분주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일터에 있는 내게 소리 높여 전하며 마구 웃어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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