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메마른 사막에서 들쥐가 죽으면 그냥 메말라 버린다. 그러나 습지에서 들쥐가 죽으면 제 몸에서
구더기가 생기게 한다. 이처럼 생은 물기를 타고 돋는다.죽은 들쥐는 진 것이고 태어난 구더기는 이긴것
이다. 이겨야 살아남고 지면 죽는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생을 부지하게 하는 생명이란 생물의 소유가 아
닌 것이 동양의 사생관이다. 이러한 사생관에서 인명재천이란 생각이 나왔다.
그러나 현대인은 내 생명은 내것이고 네 생명은 네것이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모든 사물을 자기 중심으로
보려는 의식이 강해지면서 내 생명이 남읫 ㅐㅇ명보다 더 소중하다는 발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
은 개인대 개인으로 다투기도 학 인간의 집단인 나라대 나라로 전쟁을 벌이고 치른다. 전쟁은 인간으로
하여금 아군은 죽지 않아야 하고 적군은 최대한으로 죽여야 한다는 살기를 품는다.
살기는 자연을 어기는 짓이다. 왜냐하면 강한 것이 이기고 약한 것이 진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사의 현상으로 보면 강한 것은 지고 죽는 것이며 약한 것이 이기고 사는 것이 아닌가. 현대인은 이러한
자연의 섭리를 외면한다. 그래서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픔을 견디지 못하여 어렵사리 인생을 짊어지
고 가는 행군처럼 생각하지 마라. 천지에 들린 한 나그네로 자기르 생각하면서 천지에 왔다가 편안히 머
물다 ㄱ나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이 절실하게 울려올 것이다.
인간의 산 몸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인간의 죽은 몸은 굳고 단단하다. 살아 있는 초목은 부드럽고 연약하다
그러나 죽은 초목은 말라 딱딱해 진다.
살아 있는 것은 썩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다. 이처럼 목숨보다 더 끈질긴 것은 없다.목숨은 기운을 간직
한 까닭이다. 죽은 것에는 기운이 없다. 목숨이란 천지가 주는 기운을 받을 줄 알아야 생겨나 자라고 큰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숨을 쉬는 것은 천지가 주는 기운을 목숨이 받아들일 줄을 안다는 것을 말한다.
가장 어린 목숨을 씨앗이나 알이라고 한다. 짐승은 알을 배고 초목은 씨앗을 맺는다. 알이나 씨앗의 껍질
은 굳고 단단하다. 그 껍질 속에 살아 있는 목숨이 있다.
밤을 보면 목숨이란 것이 얼마나 부드럽고 연약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밤의 목숨은 세 겹의 껍질로 쌓여
있다. 밤송이는 맨손으로 만질 수 없는 가시투성이의 껍질이다. 그 밤송이 속에 밤이 간직돼 있다. 밤의 단
단한 껍질을 벗기고 나면 다시 털보숭이 같은 비늘이 보자기처럼 밤속을 싸고 있다. 세 겹의 껍질을 벗기고
난 다음에야 밤 속이 있고 그 밤속 모서리에 털끝만한 씨눈이 있다. 그 씨눈이 곧 밤의 목숨과 같고 밤속은
씨눈이 먹을 밥이다.
밤알속에 붙어 있는 씨눈처럼 밤의 목숨은 연약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 씨눈에서 우람한 밤나
무가 생겨난다는 것을 상상해 보면 목숨이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를 두고 생은 이기는 것이
고 사는 지는 것이라고 한다.
생이 이기는 것은 부드럽고 연약한 까닭이고 사가 지는 것은 굳도 단단하며 강한 까닭이다. 이러한 이치를
안다면 인간들이 믿고 있는 승패는 생사를 뒤집어 놓은 짓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강한 것이 이기고
약한 것이 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목숨을 팔아 죽음을 사는 싸움이나 전쟁을 하는게다. 이처
럼 인간은 천지에 어긋난 짓을 하면서 목숨이 이기는 짓을 버리고 지게 한다.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현상이다.
돌을 보라. 쇠붙이를 보라. 모래알을 보고 죽은 나무등걸을 보라.ㅇ ㅓ느것 하나 굳고 단단하지 않은 것이
란 없다. 이것들은 모두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것을 물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죽은 것이 없다면 산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산것이 죽은 것을 소중히 하고 죽은 것이 산것을 소중히
하는 것을 노자는 무위라고 한다. 죽은 것이 없다면 산것이 어디서 밥을 얻을 것인가.
그러므로 물질의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산것을 팽개치고 죽은것에 매달린 꼴이다. 밥을 먹을 만큼 먹어야 목숨이 산다.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목숨이 체해 억지로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밥도 목숨의 독이
되는 법이 아닌가. 이러한 법을 모르고 인간은 죽은 것처럼 굳고 강한 것이 힘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탕진하는 것과 같다. 생을 탕진하는 것은 죽음의 현상을 재촉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생의 현상이다.
초목은 생이 이기는 것이고 사가 지는 것임을 지킬줄 안다. 천길 벼랑의 깎아지른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
고 사는 소나무를 보라. 척박한 곳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 뿌리는 내리고 강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으며 햇
빛을 받아 잎새들은 먹고 살 것을 마련한다.
천길 벼랑에서 소나무가 사는 것은 바위보다 견강한 까닭이 아니라 유약한 까닭이다. 목숨을 누리게 하는
것을 덕이라고 하지 않는가. 소나무는 그러한 덕을 누릴 줄 안다.
생이란 무엇인가. 도가 덕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사란 무엇인가. 도가 덕ㅇ르 거두어 가는 것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덕을 누리게 한다음 거두어 가는 것이다.
명의 길고 짧음은 인간이 재는 치수일 뿐 도의 품안에는 긴것고 없고 짧은 것도 없다. 도는 만물의 어머니
일 뿐 편애하는 계모가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유약을 도가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의 현상이란 유약함에 있음을 인간이 안다면 삶이란 기운을 누리는 순간이지 힘을 남용하는 순간이 아
님을 알 것이 아닌가. 그러나 현대인은 목숨의 힘을 잊어버리고 물질이 내는 힘만을 앞세우려고 한다.
마치 현대인은 돈으로 목숨을 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유약한 목숨이 내는 힘은 강하다. 그러나 견강한 물질이 내는 힘은 약하다. 그래서 노자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굳고 강하고 강한 것이 약하다는 것은 목숨과 물질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천길 벼랑에 붙어사는 연약한 소나무를 생각해 보라.
그 소나무의 지혜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이기는 것은 강이다.'고 한 노자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며,
'남을 이기는 것은 역이다'고 한말을 또한 알아들을 것이다.
겉은 연약하지만 속이 강한 것을 생이라 하고 겉과 속이 다같이 강한 것을 물질이라고 여겨도 무방하다.
물질은 그저 강한 것이고 목숨은 강약을 두루 갖추고 있는 존재라고 여겨도 된다. 강약중에서 무엇이 근본
일까. 강이 아니라 약이 근본임을 알면 곧 덕을 아는 것과 같다. 이러한 진리를 노자는 밝히고 있다.
병기가 강하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무기의 힘만 믿고 목숨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군대는 아무리 강해
본들 망한다. 손에 들린 칼만 믿고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온 강도는 반드시 붙들려 감옥으로 가는 것과
같다. 물질의 힘만 믿고 목숨을 해치는 무모한 짓을 겁없이 남용하는 패거리는 아무리 강해본들 결국 지
는 것이다.
현대인이 신뢰하는 병기를 돈이라고 한다. 돈이면 못할 일이 없다고 믿는 현대인 만큼 무서운 존재는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금전 숭배의 속셈을 보면 목숨의 유괴범이 아닌 자가 별로 없으리라.
남의 목숨을 저당으로 잡고 돈을 강요하는 유괴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 때문에 스스로 제 목숨을 유괴
당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허망한 생존의 현주소가 아닌가.
현대인은 물질의 힘을 상징하는 돈이야말로 병기라고 믿고 산다. 그러한 신앙으로 산다면 인간은 모두 전
선에 나가 있는 병사와 다를 것이 없다. 어디 인간만 그러한가. 나라들도 그와 같다. 물질의 힘만 강하면 된
다고 믿는 나라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현대는 노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허황
된 말이라고 일소에 붙인다.
군대가 강하면 멸망하고 나뭇가지가 강하면 부러지고 만다.
약은 목숨의 힘이고, 강은 물질의 힘이다. 이것이 도덕을 밝히는 말씀이다. 이러한 도덕을 인간이 잊었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강조한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다시 도덕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목숨을 소중히
하면 도에 가깝게 가는 것이고 목숨을 보살피면 덕의 근처에 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은 목숨의 힘을 모르고 물질의 힘만을 알려고 한다. 그래서 강한 것이 으뜸이요, 약한 것은
버릴 것이라고 고집한다. 물질도 목숨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가.ㅇ ㅣ렇게 물으면 모두 그렇다고 대답은
한다. 그러나 생존의 실제 모습을 보면 목숨이 물질을 위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는 지경이다. 물질은
굳고 강한 것이고 목숨은 부드럽고 약한 것임을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은 노자의 말을 알아들을 것이다.
굳고 강한 것은 아래에 있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있다.
아랫것은 천한 것이고 윗것은 귀한것이다. 노자가 귀천을 따지지 마라 한것은 목숨을 두고 그렇게 하지마
라 함이요. 목숨과 물질을 놓고 보면 귀한 것은 목숨이고천한 것이 물질임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노자의 말씀을 제대로 현대인은 듣는가. 듣는체만 할 뿐이다. 왜냐하면 내 목숨은 물질 보다 소중하지만
남의 목숨은 내 물질 보다 천하다고 잔인한 속셈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셈을 저마다 하지 않는다면
돈이 사람 잡는 일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겉만 단단하고 속이 빈 열매는 씨앗을 갖지 못한다. 현대인이란 나무에 알찬 열매가 열려 있는 가 아니면
쭉정이만 달려 있는가.스스로저마다 자신에게 한번 물어 볼 사항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생의 모습이라
는 노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자기라는 나무에 매달린 목숨이란 열매가 보기 좋은 개살구가 아닌지 살
펴본다면 귀한 목숨이 천한 것으로 되어있는 사실을 보고 놀랄 것이다.p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