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기적

다림영 2008. 8. 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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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비. 몹시 무더움. 화요일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만만치 않은 기적이 있다.

어쩌면 나도 친구처럼 식당에 나가 일당을 받으며 일할 수도 있었고,

어쩌면 옆집아줌마처럼 공장에 나가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야근수당을

셈을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처럼 노동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언감생신 책을 들여다  볼 꿈도 꾸지

못하였으리라. 고된 몸을 쉴 시간도 부족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손님은 없지만 한가하게 앉아 음악을 들으며

책장을 또 넘기고 있다. 이 기막힌 시절에 얼마나 대단한 나의 기적인가.

 

 

그러고도 헤아릴수 없이 많은 기적이 내게 있음을 발견한다.

아이들이 모두 건강한 것도 내게는 기적이고

세아이를 보살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신것이 기적이고

친정엄마가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것이 기적이고

내가 업어키운 막내동생이 가끔 들려 누나를 살펴주는 것 또한 기적이고

세상사로 휘청이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우리의 울타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 또한 기막힌 기적이고

일주일에 한번 나타나 자신을 활짝 열어보이며 따뜻한 마음을 덜어주고,

그것도 부족해서 내게 필요하다 싶은 내용의 책을 놓고 가는

각별한 친구가 생긴 것 또한 나의 아름다운 기적이다.

 

불황의 연속으로 자고나면 무너지는 가게가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여름속 겨울을 견디고 있다.

이얼마나 굉장한 기적인가

겨울은 길것이나 반드시 지나갈 것을 믿는 내 마음또한 기적이다.

 

무엇을 바랄 것인가.

죽어가는 사람,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 리어커를 끌고 종이를 줍는 사람,

건설현장에서 늦은 밤 까지 밥을 나르는 사람, 보증을 잘못 서서 단칸방으로

나앉은 사람,사업 실패한 남편때문에 하루아침 호떡을 굽고 있는 사람...

어려운 이웃들이 주변에 너무도 많다.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비가 쏟아진다.

지나는 사람들을 풍경처럼 바라본다.

8월의 한 여름속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사소한 아픔들을 가슴에 안고 있으나 이렇게 살아 숨을 쉬며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음악속에서 근사한 글들과 사랑을 나눈다. 

 

일기를 쓰고 있는 도중 손님이 걸음하셨다.

무덥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굵은 빗줄기, 거기에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 이것은 내게 있어 너무나 굉장한 '기적'이다.

 

 장영희교수의 글을 불현듯 만나고 문득 나의 기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내게는 엄청난 '기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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