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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재 문학회/금요일의 요정/동화

다림영 2008. 7. 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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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의 요정/


 “쉿! 조용히 해봐, 지금부터 아주 특별한 음 그러니까 너희들이 전혀 모르는 숨은 얘
기 하나 들려줄게, 요정에 관한 이야기야, 음, 금요일의 요정! 들어본 적 있니? 없다고?
 그럼 들어볼래?” 형제는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헐레벌떡 아줌마에게 달려왔어요,
언제나 그랬어요. 엄마가 따뜻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는 집보다도 먼저 들리는 곳
이었어요. 사실은 아줌마가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로 약속했었거든 요.


"형, 도무지 무슨 이야기일까?" "글쎄, 저번에 그 얘기도 무지 재미있었는데 그렇지?"
어젯밤에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얼굴을 맞대고 수군거리며 짧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냈
습니다. 두 아이들과 아줌마는 아주 친한 친구였습니다. 엄마가 바쁠 때이거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푸른 산과 그 앞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 같은 아주 정다운 사이였지요.
아이들에게 는 아줌마가 이사 온 후로는 마냥 즐거워 노니는 망아지 같은 나날이었습
니다. 가방은 훌쩍 벗어 구석으로 던져놓고 얼굴만 바짝 들이대고 있었습니다만 아줌
마의 쉿 하는 소리에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습니다. 송아지처럼 검고 동그란 눈은
빛을 뿜게 되었고 구태여 머리까지 가다듬을 일은 없었지만 조금은 어수선한 머리를
가지런히 앉히려는 듯 손을 몇 번씩이나 가져갔습니다.

 


"그래, 되었어, 그래……." 아줌마는 아이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형은 동생의 허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동생은 구겨진 종이 같은 이
마가 되어 허리를 움켜쥐었습니다. "자, 그만! 이제 시작합니다. 쉿!" 아줌마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입에 대더니 잠시 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아이 들은 헛
간에 숨어있는 고양이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옛날에, 아주 옛날이 아니고 조금 옛날에 말이다, 너희들이 태어나기 전 이었을 거
야. 저기, 기찻길 너머 있잖아? 거기, 호수 말이야, 금요일의 요정이 살고 있었대. 그
호수에 가 본적 있니? 금요일 아침에 말이야."
"아니요? 학교 가야 하는데 어떻게 가요?" 형제는 합창하듯 입을 크게 벌리며 말했습
니다. 꼭 어항에서 뻐끔거리며 사람을 바라보는 듯한 순한 붕어들 같기도 하였습니다.
어찌 그런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렇구나, 한 번도 가보지 않았구나? 금요일 아침에 가봤으면 참 특별한 느낌을 받
았을 텐데, 저런, 어쨌거나 안 가봤다니 들어 보렴?",
 "네", 아이들은 조그맣고 동그란 두개의 호박 같은 엉덩이를 들어 앞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대답했어요. 아줌마는 물을 한잔 마시고 속삭이듯 조용히 얘기를 이어갔습니다.
 
"금요일 아침이면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없는데 말이다, 울렁울렁 물이 이상하게
움직이곤 한대, 금요일의 요정이 슬슬 일과를 시작하려고 하는 그런 거였대, 무섭겠지?
혼자 있으면 정말 무섭고 두려울지도 몰라.  어떤 남자가 언덕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대. 그 사람은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는지 눈물이라도 흘릴 듯 우울한 모습으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대, 그런데 그때 호수가 꿈틀꿈틀 지렁이 허리처럼 조그맣게 움
직이는 것을 그 사람은 지켜볼 수 있었대. 그것은 눈을 고정하고 조용히 관찰하지 않
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것이었대, 그리고 는 조금 후엔 갑자기 기다란 물기둥이 쑤욱,
 코끼리보다 더 큰 몸집으로 높은 하늘을 향해서 마구 올라갔대, 그리고는 다시 푹
 주저앉아 꺼지면서 잠잠해졌대. 모두 잠들어버린 깊고 고요한 밤처럼 말이야.

 


그 남자는 너무나 놀라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다 쏟고 말았대. 그리고 한참을 멍
히 귀신에 홀린 것처럼 주저앉아 있었대, 조금 있으니까 '쉭쉭 쉭쉭' 그런 소리 만 들
렸대, 참 이상한 소리였대, 당나귀처럼 귀를 크게 열고 몸을 한층 기울여야 했대.
보통 사람들은 잘 들 을수도 없는 그런 깊은 산 속의 동물의 움직임 같은 소리였대.
아무것도 안보이고 그 소리만 들린 거지, 그 사람은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말을 떠올리면서 토끼처럼 놀란 마음을 꽉 움켜쥐고 있었대,
그리고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뜨고서는 납작하게 엎드려서 지켜보기 시작했대,
그 쉭쉭 쉭쉭 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아무것도 보이진 않았대, 너무나 이상했대,
그 남자는 태풍이 불어닥친 여름들판의 나무처럼 몸이 부들부들 아주 심하게
떨리고 흔들렸대. 그래서 더 바짝 언덕에 가슴을 대고 엎드리지 않으면 안되었대.
거의 언덕의 일부분처럼 말이야. 송아지가 싸놓은 똥처럼 엉덩이만 불룩 올라와 있었대." 

"네? 송아지 똥이요? “ "그래, 송아지똥! 호호호."
 "본적 있니?"  "아니요? 송아지도 못 보았어요."

 


 "절대 강아지 똥하고 비슷하지는 않아, 전혀! 저런, 언제 엄마랑 아빠랑 시골에 가
보자고 하렴" "네" .  두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바쁘셨습니다. 눈코 뜰 새 없
이 열심히 일만 하셨지요. 그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였어요. 총명하고 착한 아이들은 엄
마와 아빠의 근사한 미래의 꿈이었거든요. 휴일도 없이 땀 흘리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때문에 다른 친구들처럼 가까운 곳이나 먼 곳 그 어디든 여행을 한다 는 것은 조
금도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작은 물고기들이 어항을 뱅뱅 돌며 놀듯 집주위에서 노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줌마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잠시 우울한 얼굴이 되기
도 했습니다.  두 아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다시 얘기를 이어 갔습니다.

 

 

"그래서 금요일의 요정은 사람들이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만 그렇게 물 속에서 기어
 나오는데 그날따라 그 사람이 언덕에 혼자 얌전히 앉아 있었던 것을 눈치 채지 못한
거야. 가끔 누구나 실수하잖아? 어른도 말이야, 하느님은 절대로 사람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 하셨지만 금요일의 요정들은 그만 실수를 하고만 거지. 그 날 남자
는 물빛셔츠를 입고 있었대. 눈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나이든 요정들은 그가 그냥 물
 인줄 알았던 거야. 조금 못 생긴 물 말이야, 남자는 굉장히 고독한 사람이었대.
늦가을처럼 언제나 외롭고 쓸쓸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그런 사람이었던 거지.
호수언덕에서 작은 움직임하나 없이 거의 언덕의 일부분처럼 엎드려 있었지만
요정들의 행렬 맨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 나서던  막내 금요일의 요정의 눈에 띄게
된 거야.“

 

 

“막내요정은 아주 또릿또릿했대, 어렸지만 손톱 끝처럼 조그만 개미들도 잘 볼 수
있는 밝은 눈 을 가지고 있었대.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막내요정은  멀리 걷고 싶지
 않았던 거야, 다리가 아기처럼 아주 조그만 했으니까. 어른요정들처럼 성큼성큼 걸을
 수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두와 함께 행군 을 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
씩씩하게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고 어른요정 들은 막내요정을 업어주지도
안아주지도 않았던 거야. 금요일만 되면 더위를 잘 이기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지치곤
했대. 투정도 부려보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대. 막내요정은 할 수없이 투덜투
덜 조금은 슬퍼하기도 하면서 맨 뒤에서 걷고 있었지. 그런데  어른요정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그 우울한 남자를 막내요정이 문득 발견한 거야. 

 


수정처럼 맑던 요정의 눈을 속 일순 없었어, 막내요정은 엄마가 없는 자신처럼 그 사람
이 가여워 어쩔 줄 몰랐지. 막내요정은 아기때 엄마를 잃었어. 요정은 엄마가 죽은
줄만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모두들 쉬쉬하는 가혹한 벌을 받은 여자였어.
아무도 그 얘기에 대해선 언급을 못하게 하였단다. 막내요정은 때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가 그리워서 우울하고 는 했지만 냇물처럼 시간이 흐르고  아주 가끔만 슬퍼
하게 되었지. 우울한 남자의 표정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서 왈칵 눈물이 나려고도 했지만 막내 요정은  임무를 결코 잊지 않았어.
남자에게 풍선처럼 부풀어 날아오르는 가볍고 즐거운 마음을 선물하고 싶어졌지.
그리고 자신도 그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던 거야.

 


막내요정은 엄마에 대한생각을 몇 번 고개를 흔들며 털어 내었어. 여름장마처럼
오랫동안 길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을 막내요정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요정은 씩씩하게 행동을 개시했어,
 “우울한 가요. 마음을 열어요, 파란 하늘을 올려다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우리,
 친구와 함께 해, 친구와 함께 해, 구름처럼 하얀 마음, 마음을 열어봐, 마음을 열어
봐, 랄랄라…….”
특별한 금요일의 요정노래를 아주 조그만 열매 같은 입으로 소리 높여 부르며 행
군의 대열에서 빠져나왔지. 그리고는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서 그 얼음 같던
가슴으로 뛰어 들게 된 거야."

 

“금요일의 요정들은 금요일이 되면 모두 사람들의 몸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그들
세계에서 오래 전부터 당연히 해내야 할 숙명이었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특별한
하느님의 임무였던 거지. 만약 베짱이처럼 게으름을 피운다거나 혹은 그 일을 하지 않는
다면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이라는 것은 호수에서 쫓겨나 평생 사람으로 살아가기도
하면서 요정의 임무를 때때로 실천해야 하는 거였대. 그것은 요정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벌이었어, 때로 요정의 법을 어기고 호수 밖으로 쫓겨나는 요정들의 소문도
들리곤 했단다. 하여간에 금요일의 요정들 세계는 사람들이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곳이
었지만 마음이 착하고 따뜻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보이기도 한다는 소문 역시 바람
처럼 전해 듣곤 하였단다. “ 


두 아이들이 괜스레 숙연해지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아줌마는 잠시 말을 잊고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언가 그리운 듯 젖은 눈망울이 되어 오랫동안 턱을 괴고
는 말을 이을 줄 몰랐습니다.  두 아이들이 아줌마의 팔을 잡고 흔들며 다음 얘기를
재촉하자 그제야 돌아보며“그래, 알았구나. " 하며 이어갔습니다.
,
"어디까지 했더라?..음, 그래, 거기였지,  그래서  남자는 잠시 몸이 흔들리다가
새끼줄처럼 꼬이기도 하더니 팔이 높이 올라가는 커다란 기지개를 펴게 되었대.
그리고는 아주 유쾌한 웃음들이 콩자루속 콩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대,
남자는 도무지 믿어지질 않았대, 방금 전까지 굉장히 우울해서 그 누구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았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웃음이 쏟아지고는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버린거야, "나야, 잘 있었니? 갑자기 네가 생각났어, 여러 가지 내가 많이 잘못한
것 같아, 보고싶다! 우리 얼굴본지 너무 오래되었지?"
그것뿐만이 아니었어, 맛난 저녁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니 말이다."
두 아이들의 서로를 바라보며 궁금해했습니다.  동그래진 눈으로만 물었지요.
아줌마는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 너무 서두르지 말렴, 깃털같이 많은 시간이란다."

"음…….그러니까, 금요일의 요정 임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인데 일주
일 동안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야 하잖아? 주말이 가까워지면 얼른 일을 서둘러 마쳐
야 하고 또 때로는 더 힘들어지기도 해 ,그래서 금요일 오후쯤 되면 서서히 자유스러
워지고 싶기도 하고 모든 구속된 것에서 탈출하고 싶은 거야 . 넓은 하늘을 새처럼
 날고 싶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건……. 그건 말이지, 모두 다 금요일의 요정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였단다. 하느님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게 사는걸 아시지. 그래서
 주말이 가까워지는 금요일이 되면 요정을 시켜서 케이크 위에 올려진 달콤하고 빨간
 체리처럼 살짝, 조금만 즐겁게 해주고 싶으셨던 거야. 주말이 되어  한꺼번에 떨어지
는 폭포수처럼 즐거워지면 어디론가 급하게 떠나고는 자취를 감출지도 모르고
또  안개처럼 슬며시 사라져서 어쩌면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니까"
동생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지 않을 수 없었지요. 형은 빨
리 이야기를 다 듣고 싶어서 동생에게 두어 번 눈짓을 했지만 동생은 아랑곳 않고 아
줌마에게 공처럼 훌쩍 질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아줌마, 사람들이 돌아오고 싶지 않은 이유를 난 이해 할 수 없어요?
그래도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형이 있는 집이 얼마나 좋은데……."
아줌마는 동생의 물음에 재빨리 대답을 해 주어야 했습니다. 형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지고 있었으니까요.
"글쎄, 음! 가끔 너희들도 학교 가기 싫을 때 있잖아 왜?"
 "네", 동생 혼자 크게 대답했어요. 형은 무슨 이유인지 대답이 아주 작았어요.
신경이 조금 은 쓰였지만 아줌마는 묻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이야기를 해주면 되었지요.
"그래, 똑같아, 어른들도 그럴 때 있거든, 어른들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척척해
내고 그런 것만은 아니야, 사실 견뎌내기 어려운 일이 세상엔 너무 많지.
하느님은 무척 염려가 되신 거야,  사람들이 모두 떠나서 세상이 엉망이 될까봐 금요
일의 요정을 만드신 걸지도 몰라, 지금도 요정들은 호수에서 우글우글 무지무지하게
많이 살고 있대. 모두들 금요일 외에는 절대 밖에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잠만 자야한대. 그래서 금요일 이 되면 모두들 깨어나는 거야. 그리고 그들은
동네로 향한 길로 아무도 모르게 투명하게 줄을 지어서 행군을 하는 거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말이지. 발을 맞추고 노래를 부르면서 즐거운 금요일을
선물 해주려고 말이지. 이제 그들이 동네 중앙으로 난 넓은 길로 들어서면 서서히
기운이 이상해지는 거야. 이상하다고 하는 것은 나쁘다는 것이 아닌 줄 알겠지?"
"네……."

 

 

아이들의 눈은 약속이나 한 듯이 문득 너른 길로 향했습니다. 잠시 바다 같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아이들은 무엇인가 열심히 살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답니다. 그저 드문드문 하늘 위의 흰 구름처럼 몇몇 사람들만 오고 갈 뿐이었고
그렇다고 사람들의 얼굴도 그다지 밝아 보이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금요일이었는
데 말입니다. 분명 아줌마가 다 꾸며낸 얘기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었지요. 형은 군
대 간 삼촌처럼 제법 무게 있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아줌마? 그거, 아줌마 마음대로 지어낸 얘기죠?"
아줌마는 형을 지긋이 바라보며 잠깐 눈을 크게 뜨는가 싶더니 조그만 벌래 처럼
몸을 한껏 웅크렸습니다. 


“우울한 가요. 마음을 열어요, 파란 하늘을 올려다봐, 세상에서 가장 귀한 우리,
 친구와 함께 해, 친구와 함께 해, 구름처럼 하얀 마음, 마음을 열어봐, 마음을 열어봐,
랄랄라……. “ 아줌마의 고운 노랫소리가 꿈속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그 순간이었습니다. 두 아이들의 눈엔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싶더니 세상이 온통 구름
 속에 들어선 것처럼 하얗게 변했습니다. 창밖으로 눈을 가져가니 편편하고 반듯 하
던 길이 시소처럼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듯도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무나 이상했
습니다. 동생은 제 얼굴을 마구 꼬집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잠시 후엔 느닷없이 붕 -하고
풍선처럼 몸이 높이 떠오르는 듯도 싶었습니다. 고독했던 그 남자처럼 몸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끼줄처럼 뒤틀리며 꼬이는 듯도 싶었습니다. 꿈처럼 아득한
현상이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고 몸은 여름 한 낮 처럼 나른해지는가 싶더니
 깃털처럼 금세 가벼워졌습니다. 어쩌면 새들처럼  팔을 옆으로 휘젓기라도 하면 넓고
 파란 하늘로 훨훨 날아오를 것만 같았습니다.

 

불현듯 형이 말을 꺼냈습니다. "집에 가자? 너무 늦었다! 일어나야겠어, 엄마가 걱정
하실 것 같아 " 냇물처럼 졸졸졸 다정하게 들리는 형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은 달리기를 시작하는 말처럼 길지 않은 머리를 잠깐 흔들다가는
멈추고는  불쑥 형을 툭 치며 천천히 말을 잇는 것이었습니다.
"형, 저기, 있잖아, 그때, 엄마가 형 소풍갈 때 준 그 돈, 사실 내가 가져간 거야.
정말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해 줘" 형은 잠시 엄마의 눈빛처럼 동생을 바라보다가
말했습니다. "사실, 난 다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얘기해주니 된 거야." 형은 동생의 손을 잡았습니다.
참으로 의젓하고 믿음직스러운 형이었습니다. 동생은 언제나 형을 따라다니며 장난을
 심하게 걸고는 했지만 그 날 처럼 형이 근사하게 보일 때는 없었습니다.
 형은 구석에 처박혀 있던 동생의 신발주머니와 가방을 건네주며 제 것도 챙기고 어
깨에 메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줌마가 앉았던 자리를 향해 돌아서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하고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형의 까만 눈은 연극무대의 커튼이 젖혀지듯 점점 크게 열렸습니다.
동생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줌마 언제 나가셨니?"
 "몰라?" 동생도 어안이 벙벙한 채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은 한참을 서로 마주보며
나무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마땅히  앉아 있어야 할  아줌마가 어디론 가로 사라졌으니 말입니다.
걸음을 서두르던 해님이 창가에 내려앉았습니다. 눈부신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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