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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2006년 수필 입선작

다림영 2008. 7. 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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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과 바꾼 아이/ 
나는 긴 기차에 오르며 흥분했었다. 꿈에 부풀어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쳤다. 우선 지
붕이 빨갛고 벽이 하얀 집을 지었다. 찔레꽃 울타리도 빙 둘러 심었다. 원숭이처럼 사
과나무에 올라타는 아이들도 그려보았다. 막걸리 한 사발에 땀을 식히는 남자가 그의 
아이들이 오르는 나무 그늘 밑에 있다. 그는 적당히 기른 수염을 두어 번 쓰다듬으며 
멋드러지게 늙어간다. 굵고 긴 연필로 쓱쓱쓱 스케치하는 화가처럼 단숨에 그렸다.  그
들 사이로 무언가를 조달하려고 바삐 뛰어다니는 여자를 빠뜨릴 순 없다. 흰 도화지의 
파아란 그림은 신들린 듯 그려졌다. 나는 하늘을 떠도는 풍선이라도 된듯 좁은 의자에 
앉아서도 내내 자유롭고 신이 났었다.
남편의 고향은 경북 봉화, 산골짜기였다. 칠 년 동안 그와 연애를 하면서 그가 살았다
던 옛집에 방문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엔 그의  먼 인척이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그다
지 오래 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작은 아이들이 우리 어릴 때 종종 보던 까만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고무신만큼이나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까까머리는 부서져 내
린 가을햇빛으로 반짝였다. 몇 되지 않은 아이들은 망아지처럼 이리 저리로 뛰어 다녔
다. "세상에, 이런 산골도 있었네"하고 나는 시냇물의 징검다리를 토끼처럼 건너뛰며 
별천지에 온 듯 신기 해 하였다.
우리는 그곳의 사정을 꿰고 있던 남편의 사촌을 앞세웠다. 어린 날의 추억의 길을 밟는
두 사람은 "여기가 거기였지?, 저기가 누구네 아냐?" 하면서 이 집 저 집 아이들처럼 기
웃거렸다. 그러한 또 다른 설레임으로 동네를 돌아보는 그들보다 내 마음은 더 들뜨고 
벅차 올랐다. 그들만이 아는 얘기를 하는 사이에도 나는 참새처럼 조잘대며 끼어 들곤 
하였다. 사촌이 있어서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머릿속으로는 재빠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 그러면 아이가 많이 있어야 할꺼야, 어쩌면 좋아, 내 나이가 몇 살
이야, 더 늦기 전에 빨리 아이 하나를 낳아야 하겠네, 남자아이여도 괜찮고 여자아이이면  
정말  근사 하겠지? 아!... 어쨌든 그래....그래야지..."
바쁘고 정신 없이 일에 매달려 살던 우리였다. 남편은 마음을 먹었으니 내려가는 길에 
일사천리로 진행 할 것이라 하였다. 사촌의 장인 댁에 미리 연락을 해 두었다.  이곳 저
곳 택시를 타고 돌아보면서 소백산 기슭까지 올랐다. 가는 곳마다 메밀꽃이 구름처럼 피
어 나고  사과밭은 줄을 이어 나타났다. 나는 개처럼 킁킁거렸고 싱그러운 향기에 취하여 
쓰러질듯 흔들거렸다.
딱히 우리와 맞아떨어지는 땅을 구하는 것은  마음만 먹는다고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선뜻 와 닿는 곳도 있었으나  남편은 계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다. 
남편의 결심은 확고한 듯 보였고 그의 주머니엔 계약금도 들어 있었다. 세상의 그 누
구보다도 최고가 된 듯 나는 행복 해 하였다. 서른 여섯의 만만치 않은 나이도 잊은 
채 그 밤 셋째아이를 가질 욕심을 남편도 모르게 품었다. 
다음날 몇 곳을 더 돌아보았다. 남편은 금방이라도 사서 내게 무엇을 안겨줄 듯 하더니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소개하는 이의 전화번호만 받아들고는 연락을 취하마 하였다. 
불같은 나의 성질 같아서는 대충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다면 선금을  불쑥 쥐어주고 계
약서를 받지 싶었다.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싣는 마음은 내려 올 때와는 전혀 다른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모습이었고 조금 더 생각해보자는 남편의 말에 "그러면 그렇지, 내복에 
무슨..." 그러한 말을 마음속으로 몇 번씩이나 되뇌였다. 
며칠이 지났다.  남편에게선 특별한 말이 없었다. 좀더 알아보려나 하고 생각하던 중 
문득 궁금하여 물었다. 그 시기는  IMF가 들이닥치기 바로 직전이었다. 세상은 온통 술에
취한 것처럼 어지러웠다. 얼마만 있어도 은행에 넣어두고 그 이자로 사니 마니 하던 무렵
이었다.  남편은 고심 끝에 은행에 근무하던 형에게 재차 의논을 한 모양이었다. 그는  "어
느 때인데 바보같이 시골 땅을 사느냐" 하며 맡기라 하였다. 세상물정 환하고 박식한 사람
이었으므로 남편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형에게 큰돈을 모두 맡겨 버리면서도 아내인
내게는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나는 어떠한 허무함으로 한동안 삶의 회의를 느끼고는 하였
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행에 넣어둔 돈이니 알토란같은 이자를 품어내어 주겠지 하고 점차
잊게 되었다. 
과수원 때문에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간 그 날 밤 앞 뒤 잘 재지 않는 나는 일을 만들어 
버렸다. 그럭저럭 건강했던 몸 이였는지 하룻밤 사이에 아이가 들어섰다.  몇 며칠 과
수원의 기막힌 만리장성을 쌓아가던 나였다.  다만 뱃속의 아이가 딸이기만을 학수 고대
하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모른 척하고 돌아설 수 있었는지 도무지 그 속을 알 길이 없
었다.
남편에게는 남자 형제들이 셋 있었고 나에게도 남자형제만 넷이나 되었다. 이러한 환
경에서  각별한 노력 없이 마음만으로 쉽게 딸을 얻을 수 있겠는가. 나는 또 한 아들을 
낳고 말았다. 우리 집은 아이들 할아버지를 위시해서 남자가 자그마치 다섯 명이 되어 버
렸다.  과수원이 날아간 마당에 아들 둘에 이슬 같은 딸이 하나 있었더라면 하는 서운함 
으로 한달 열흘 눈시울을 적시곤 하였다. 
세월의 물살은 거침없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무렵이었다. 가끔 
남편에겐 사업상의 돈 사고가 터지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한 친구들과의 술
자리에서 과수원을 사려던 돈의 행방에 관한 기막힌 얘기를 듣게 되었다. 형은 동생과 의
논도 없이 제 돈인 듯이 증권에 투자를 한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돈은 모두 날
아갔다는 얘기였다. 그 당시 경기도 변두리에 가면 조그만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그러
한 금액 이었다. 나는 너무나 황당하여 아무런 말도 이을 수가 없었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마다 불거져 나오는 주제가 되고 말았다.
"퇴직금을 타면 주마 " 하던 남편의 형이었다. 그는 퇴직하고 부동산중개소를 열면서 일
부만 주었고  일이 잘되면 다 주겠다 하였다. 수많은 사유로 쪼들리던 나는 줄 곳 남편
에게 물어 보았지만 일절 함구하였다.  그는 좋은 차 한 대를 더 뽑았다.  그것은 내가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다.  과수원을 사려고 했던 동생의 돈이 형의 증권투자로 흔적도 없
이 사라진 것은 우리 셋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남편의 휘청거리는 사업을 보면서 애간
장을 태우던 나는 가족모두에게 다 터뜨리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새차를 
끌고 다니면서 더군다나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그를 어찌 내가 이
해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지금껏 단 한 건의 일도 성사시키지 못해 집에도 돈을 가
져가지 못한다 하니 나는 돌아서서 입을 닫아야 했다. 쏘아버린 화살처럼 되돌아오지 않
는 돈에 대한 얘기는 더 이상 남편에게 하지 않는다. 간혹 "그 돈이라도 있었으면...." 하
는 헛말을 노인처럼 혼자 중얼거릴 뿐.
과수원을 사려고 했던 어떠한 계획 때문에 나는 졸지에 아들 하나를 만들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코앞까지  다가왔던 과수원이 사라진지 몇 년이 되었다.  아이는 어느새 훌
쩍 자라 초등학교 이 학년이 되었다. 어제는 무슨 일로 아이의 키를 재어보았는데 내가 
잘못 잰 것은 말하지 않고 "어머, 줄어버렸다! 큰일났네!" 하였더니 아이는 금새 눈물을
떨구는 것이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11시부터 잠을 자야 키가 잘 크는데 엄마 때문에 그렇
게 되었다 하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하게 들썩이며 자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차분한
위의 두 형과는 너무도 다른 성격의 소유자인 그 아이 때문에 나는 가만있다가도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고는 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면 "엄마야-" 하고 
제일 먼저 반기며 달려나온다. "엄마의 꿈!, 엄마의 희망!" 아침마다 학교에 보내면서 내가
종종 하던 말을 아이가 내게 한다. 남자다운 것을 최고로 아는 아이는  조그마한 몸으로
멋지게 나를 안아주고 엄마가 기뻐할 얘기만 한다. 종일 엄마와 떨어져 있고 매일마다 밤
열시가 훨씬 넘어서야 만나게 되는 나에게 염소 똥처럼 주르르르 하루의 일과를  쏟아내어
놓는다.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두기도 하고 빨래를 걷으면 내 옆
에 바짝 붙어 앉아 내가 가르쳐 준대로 양말을 곱게 개어 놓는 과수원과 바꾼 아이 때문에
첩첩 산중의 고달픈 삶 속에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굽이굽이 고단한 세월은 또다시 강물을 타고 먼 대양으로 흘러갈 것이다. 나는 눈처럼 흰 
머리카락을 갖게 되고 지팡이로 몸을 의지한 노인이 되고  동구 밖 그루터기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젊은 날을 회상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러한 어느 
날 꿈을 찾아 떠난 건장한 그 청년은 진주 빛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문득 다가오리라. 완강
한 어깨에 수많은 가지를 키우고 실한 열매를 달고 보름달이 길을 비추듯 주변을 환하게 만들며...


♬ Red river valley / Michael Martin Murph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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