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좋은 글

책 사람사전 중에서 -

다림영 2023. 9. 1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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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사람을 죽일 수도 잇는 말, 내가 죽을 수도 잇는 말. 꼼짝하지 말고 가만히 잇으라는 말만은 제발 하지 말기를. 우왕좌왕도 좋고 허둥지둥도 좋고 갈팡질팡도 좋으니 어떻게든 움직이라고 말해주기를. 땅에서도 바다에서도

 

가면/

가짜얼굴. 이젠 멸종위기. 성형이라는 새로운 가짜얼굴 위세에 눌려 빠르게 소멸중. 가면과 함게 진짜얼굴마저 천천히 소멸중. 머지않아 듣게 될 끔찍한 대화 한 토말.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니? 예쁜게 뭐지? 다 똑같이 생겼는데.

 

가사노동/

가사가 왜 노동인지 알고 싶다면 이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어볼 것. 당신이 아이 키우고,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해서 갖다 버리는 일 말고 하는 게 뭐 있어?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정말 말도 안된다는 데 동의 한다면. 입 다물고 분업.

 

가시/

꽃에도 있다. 생선에도 잇다. 말에도 있다. 그러나 꽃을 꺾지 않으면, 생선을 물지 않으면, 말을 귀에 담지 않으면 가시에 찔릴 염려는 없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가시가 내게 덤비는 일은 결코 없다. 그런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슬 우리는 죽었다고 말한다.  가시가 무서워 죽었어. 가시에 찔릴 것 같아 죽었어. 가시를 피하다 죽었어. 이런 문장을 걸어둔 무덤은 없다.

 

그래, 가시는 피하는 게 아니라 찔리는 거다. 가끔 찔리는 거다. 따끔 찔리는 거다. 찔리면 피 몇 방울 뚝뚝 내주고 앞으로 또 앞으로 가는 거다. 반창고가 잇다. 후시딘도 있다.

 

가장/

으뜸을 뜻한다. 가장 많은. 가장 높은. 가장 앞선. 가장 예쁜. 이처럼 우리는 가장이라는 단어를 으레 영광과 연결한다. 그러나 이 단어는 상처에도 그대로 사용된다. 가장 적은, 가장 낮은, 가장 뒤진, 가장 추한. 내가 가장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 누군가는 가장 아픈 시간을 견디고 있을지 모른다. 내 웃음소리가 그에게 들릴 만큼 클 필요는 없다. 

 

가짜/

진짜의 최후. 진짜가 진짜라는 것에 만족하며 어떤 새로움도 흡수하려 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가짜가 된다.

 

가족/

한우산을 쓴다. 우산 하나에 다 들어간다. 우산이 작거나 찢어져 아빠 엄마 어깨가 젖더라도 새우산을 피지 않는다. 좁을수록 가까워진다. 젖을 수록 가까워진다. 강한 비는 그리 오래 내리지 않는다. 

 

각오/

마음의 준비. 그러나 마음만 준비하는 각오는 실패할 각오. 몸을 먼저 준비하지 않고 죽을 각오로 뛰면 죽는다.

 

간격/

밀착 이전의 상태. 밀착 이후의 상태. 사람과 사람은 밀착. 간격, 밀착, 간격을 반복하며 최적 거리를 찾아간다. 외로울 땐 밀착, 지겨울 땐 간격.

 

간접세/

연봉 1억인 사람과 연봉 1천인 사람이 똑같이 내는 세금. 형평만 생각했지 형편은 고려하지 않은 형편없는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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