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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름으로 가득 차 있다/느린거북

다림영 2023. 9. 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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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나는 인디언 이름을 받는 의식을 거쳤다. 와시피 왐파노그 족의 어른들은 나에게 '느린거북'이란 이름을 주었다. 그것은 내가 사람들과 대화할 때 반응이 무척 느리고 동작 또한 굼뜨기 때문이리라.  인디언들은 그것을 무척 지혜로운 행동으로 여긴다. 거북은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항상 목을 빼어 주위를 살핀 다음에 걸음을 옮겨 놓는다.

 

인디언들은 사람이나 사물의 이름을 정할 때 이런 식이다.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물이 세상에 차지하고 있는 위치 등을 기준으로 이름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디언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 한결 쉽다. 그 사람의 성격과 특징이 곧바로 이름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비하면 당신들의 이름은 기억하기도 어렵고 별다른 의미도 없다.

 

인디언에게는 이름이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을 부르는 호칭일 뿐 아니라 그 사람의 고유한 영혼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언 세상은 그러한 이름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8명의 자식을 낳았고 12명의 손자를 보았는데 맨 마지막으로 나온 손자는 '오타쿠웨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것은 우리 인디언 말로 '이젠 끝' 이란 뜻이다. 어떤 사람은 비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비를 유난히도 좋아한 어느 인디언은  '빗속을 달려'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그는 늘 비만 오면 소리를 지르며 평원을 내달리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막안에 앉아서도 그 비명소리를 듣고 밖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일의 징조처럼 폭우가 쏟아지더니 곧이어 폭설로 변해 평원 전체에 쏟아지기 시작했고, 빗속을 달려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르면서 평원을 달려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빗속을 달려의 가족들은 평원에 나가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사라지고 말았는지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이름이 그러하듯이,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우리 인디언들의 믿음이다. 빗속을달려는 평원에 내리는 빗속을 달려 어디론가 떠나가는 것이 그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었던 것이다. 

 

당신들은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똑 같은 길을 걸으라 학, 똑같은 기도문을 외라고 한다. 당신들의 교회에 가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당신들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똑같은 기도문을 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저마다의 영적인 길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각자 자신의 기도를 말한다. 스스로 자신의 기도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당신이 내 기도문을 사용해선 안 된다. 그것은 나를 모독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기도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언어들로, 당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넣어서 스스로의 기도문을 만들어야 한다. 

 

빗속을달려의 길이 특이하다고 해서 모두가 비 내리는 날이면 평원을 개들처럼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인디언은 또한 남이 써 놓은 경전을 읽으면서 "이것 봐! 이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러한 경전이 필요치 않다. 우리는 모든 날이 우리 자신의 방식에 따라 새로운 날임을 이해한다. 그리고 생명은 영원한 것이며 결코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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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거북은 왐파노그 족 인디언입니다. 이 글은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글모음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정신세계사)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책 국어시간에 수필읽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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