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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생이 괴롭다고들 하지만, 살다보면 즐거울 때도 있습니다. 괴롤때가 잇고, 즐거울 때가 있으며 ,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을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인생에는 고苦가 있고, 낙樂이 있으며, 고도 낙도 아닌 상태가 있습니다.
고와 낙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가 낙이 되기도 하고 낙이 고가 되기도 하니, 중생은 고와 낙을 끊임없이 오갑니다.
이러한 고락의 오감을 윤회라 하는데, 결국 윤회 그 자체가 고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낙을 얻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상황이 바뀌면 아내 고가 되어버리고 말아 낙의 본질도 고일뿐입니다.
그래서 '일체는 고' 라 할 때의 '고'는 고와 낙을 윤회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은 끝없이 낙을 추구하며 살아도 때로는 원치않는 고를 만나게 되고 고에 떨어져 괴로워하다가도 그 가운데서 뜻밖의 낙을 맛보기도 합니다. 중생은 고를 싫어하고 오로지 낙을 구하나, 낙은 쉽게 구해지지 않으며 구해진다 하더라도 지속되지 않기에 우리는 늘 고에 허덕입니다. 그래서 '일체가 다 고'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삶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무지無知,무명無明때문입니다. 꿈속에서 강도에게 쫒기는 사람의 두려움은 강도가 그를 해치려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니라 없는 강도를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깨닫고 보면 나를 해치려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도깨비에게 홀리는 것처럼 환영 속에 휩쓸렸을 뿐입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기 업식에 따라 생겨난 환영을 진실상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전도몽상顚倒想때문에 우리 삶의 고통이 시작됩니다. 이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환영인 줄 알아야 합니다. 꿈이 꿈인 줄알아야 합니다. 굼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같은 악몽을 거듭 꾸다보면, 꿈을 꾸는 중에도 꿈이라는 것이 알아차려지고 눈을 뜨려고 애써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눈을 뜨려는 노력은 지금 꿈꾸고 있다는 자각이 일어났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꿈속에서라도 꿈인 줄 알아야만 눈뜨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금강경] 사구게 가운데 '범소유상凡所有相 개시허망皆是虛妄' 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릇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는 뜻입니다. 허망하다 함은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텅 비어 환영과 같이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허망하다는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비유를 들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고 덧붙입니다.
'꿈과 같고 꼭두각시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또한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고 했습니다.
꿈을 꿈인 줄 알고 모두가 허망한 줄을 알아차려서 꿈에서 깨어나면, 꿈속에서의 모든 괴로움이 사라져버리니 그것을 두고 곧 부처를 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책[법륜스님의 반야심경강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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