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왜 아침마다 빙그레 웃으면서 떠오르는 것일까.
세상을 살다보면 이따금 견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사람'으로 단정해 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기는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사람이다.
미래는 재미있게 놀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보다는 재미있게 살 궁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젊은이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무대다.
소나무는 멀리서 바라보면 참으로 의연한 자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년 인색한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소나무는 어떤 식물이라도 자기 영역 안에서 부리를 내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소나무 밑에서 채취한 흙을 화분에 담고 화초를 길러보라. 어떤 화초도 건강하게 자라서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래서 대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있어도 소나무는 군자의 대열에 끼일 수가 없는 것이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ㅇ니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진실하면 모두가 詩 입니다.
깍두기의 팔뚝에 '차카게 살자'라고 새겨진 문신. 비록 맞춤법은 틀렸지만 새길 때의 그 숙연한 마음을 생각하면 깍두기도 그 순간은 시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두 종류의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는 자신의 외모를 비추어볼 수 잇는 마음밖의 거울이고 하나는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마음 안의 거울이다. 그대는 어느 쪽 거울을 더많이 들여다보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도 하늘 비친몽요담에 귀를 씻는 모월봉.
그리움은 과거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흩날리는 낙엽이고 기다림은 미래라는 시간의 나무에서 흔들리는 꽃잎이다. 멀어질수록 선명한 아픔으로 새겨지는 젊은날의 문신들.
문은 들어가기 위해서 만들어졌나요. 아니면 나가기 위해서 만들어졌나요. 세상에는 간혹 이 따위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문은 드나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전자가 옳다느니 후자가 옳다느니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잇다.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코는 숨을 들이쉴 때 쓰는 거니, 아니면 내쉴 때 쓰는거니.
어떤 외국인이 한식집에서 밥을 먹다가 주인에게 '선생구이'를 한 접시만 더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그에게 '생선구이'한 접시를 날라다 주었다. 구한말에 떠돌던 유머라 썰렁이기는 하지만, 선생이 '바담풍'이라고 가르쳐도 '바람풍'으로 알아듣는 제자는 있다.
척박한 땅에 나무를 많이 심는 사람일수록 나무그늘 아래서 쉴 틈이 없다. 정작 나무그늘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들은 그가 뙤약볕 아래서 열심히 나무를 심을 때 쓸모없는 짓을 한다고 그를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이다.
그대의 신분이 낮음을 한탄치 말라. 이 세상 모든 실개천들이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어찌 저토록 넓고 깊은 바다가 되어 만 생명을 품안에 거둘 수가 있으랴.
어렸을 때 ,내가 어른들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른들은 이구동성으로 금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금이 먹으면 또 생기고 먹으면 또 생기는 음식인 줄 알았다. 먹지도 못할 금 때문에 사람들이 저토록 비굴하게 살아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반성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라는 말이 현대에 이르러 속담처럼 자주 쓰인다. 잘난 체할수록 못나 보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찌질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그들은 왜 다양성을 인증하지 못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지만 다양성이 곧 정당성은 아니라는 등식을 염두에 두지 않은 항변이다. 인간의 외모를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은 있는데 인간의 내면을 비추어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먹고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자고 싶을 때 잘수 있으니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그리고 이 행복은 바로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했던 젊음에서 유래된 것이다.
인생의 정답을 알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정답을 실천하면서 살기가 어려울 뿐.
꽃이 피었을 때는 꽃을 즐길 줄 알고 열매가 열렸을 때는 열매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어던 인간들은 꽃이 피었을 때는 열매가 열리지 않았다고 知랄을 하고 열매가 열렸을 때는 꽃이 피지 않았다고 知랄을 한다. 그래서 知랄을 할 때마다 써먹으라고 '철 모르는 놈'이라는 말이 생겼다.
포기하지 말라. 절망의 이빨에 심장을 물어뜯겨본 자만이 희망을 사냥할 자격이 있다.
아무나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가슴 안에 한 송이 꽃이라도 피운적이 있는 사람이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가난 한 사람들은 대개 돈을 욕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 같은 놈의 돈, 원수 놈의 돈, 썩을 놈의 돈, 더러운 놈의 돈,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든 물건이든 욕을 하면 더욱 멀어지기 마련이다.
인간반성- 병아리들이 "엄마 우리는 왜 하늘을 못날아"하고 물어볼때 어미닭은 제일 복장이 터진다. 그래서 만약 자녀로부터 열등한 부분을 지적당한 어미닭이라 하더라도 "한번만 더 그 댜위 소리를 지껄이면 주둥이를 확 뭉개버릴 거야"라고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부모라면 "우리의 먹이는 땅에 있기 대문에 하늘을 날 필요가 없단다"라고 의연하게 대답해주는 성품이 필요하다.
욕쟁이 할머니들이 경영하는 음식점을 손님들이 즐겨 드나드는 이유는 욕을 얻어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욕 속에 용해 되어 있는 할머니의 정감을 얻어먹고 싶어서다. 정감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내공의 산물이 아니다. 곰삭은애정을 바탕으로 손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터득되는 비술이다.
배가 지나가면 물결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더러는 무력에 취해서 배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는 사공이 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으면 도대체 무엇으로 깨달음을 얻겠는가.
모른다는 사실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모른 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혀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 비판이나 비방을 일삼지 말라. 그것은 무지라는 이름의 도끼를 휘둘러 남의 뒤통수를 찍으려다 자신의 이마를 쪼개는 행위나 다름이 없다. 나무관세음보살.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모르면서 아는 척 설치는 것은 죄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뱔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 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어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가지고 싶은 건 한없이 많은데 주고 싶은 건 하나도 없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 끝없이 먹기는 하는데 절대로 배설은 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뱃속에 똥만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실직한 아빠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그러자 아들이 호기있게 대답했다. 대통령이요. 아빠가 아들에게 다시 물었다. 네가 대통령이 되면 아빠는 뭐 시켜줄거냐. 기대감에 찬목소리였다. 아들이 재빨리 대답했다. 탕수육이염!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스튜어디스가 통로를 지나가면서 탑승객들에게 서비스로 음료수를 제공하고 잇었다. 그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네 살짜리 여자애가 부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탄성을 발했다. 아빠, 여기 정말 장사 잘된다. 그치.
이외수가 어떤 도인에게 물었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습니까. 그 도인이 대답했다. 하늘을 나는 일은 나비나 새들ㅇ한테 맡겨두시게.
젊은이여. 인생이라는 여행길은 멀고도 험난하니, 그대 배낭 속을 한 번 들여다 보라. 욕망은 그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소망은 그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법. 젊었을 때부터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잡다한욕망들을 모조리 내던져 버리고 오로지 소망을 담은 큰 그릇 하나만을 간직하지 않으면 그대는 한 고개를 넘기도 전에 주저않고 말리라. 하악하악.
한가지 일에 평생을 건 사람에게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격언이 무의미하다. 그에게는 오늘이나 내일이 따로 없고 다만 '언제나'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운이 꼬일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초래한다. 하지만 헤어나는 방법이 있다. 일부러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무조건 베풀어라. 그러면 거짓말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리게 된다.
살아남는 비결 따위는 없어. 하악하악. 초지일관 한가지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 조낸 버티는 거야. 하악아학 , 그러니까 버틴다는 말과 초월한다는 말은 이음동의어야.
'비밀 꼭 지켜' 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비밀은 누설된 것이다.
티끌같은 노력으로 태산같은 보상을 바라지 말라. 그런 사람이 축적할 수 있는 재산은 티끌같이 미흡한 존재이유와 태산같이 거대한 불평불만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을 만나면 그래, 산에는 소나무만 살지 않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산은 정지해 있으되 능선은 흐르고 있고, 강은 흐르고 있으되 바닥은 정지해 있다. 그대가 두 가지를 다 보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산과 강의 진저안 모습을 보았다고는 말하지 말라.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많이 깨닫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라. 태산같이 높은 지식도 티끌같은 깨달음 한번에 무너져버리나니, 오늘도 몽요담 돌거북은 번개 한 번에 삼천리를 두루 살피고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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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끼고 싶은 사람이었고 깨닫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요즘은 고뇌에 빠져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
나이가 들어도 늘 헤맨다.
가다보면 길은 보이겠지 한다.
정해놓은 틀이 자꾸 바뀐다.
남들은 한 길을 잘 도 가는 듯 보이는데
나는 자꾸 이길 저길 왔다 갔다
깨달음은 커녕 느끼지도 않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침에 깨달았다하다가
저녁이면 다시 방황하고
저녁에 알았다 하다가
아침이면 다시 헤매이고
아직도 길 찾기 중이다
다 그렇게 살진 않을터인데
내 숙제는 왜 이렇게 많은지..
이외수님의 글을 읽다보니 웃을일도 있고
한참 웃다가 깨닫기도 하다가 느끼기부터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왔다.
오늘은 김밥하는날..일은 왜 이렇게 많은지.. 쑥은 삶아놓고
방앗간에는 내일 무슨수가 있어도 가야 하고
일년치 쑥떡.. 난 왜 일을 만들어 하는가..
우엉은 불에 올려 놓고 주적거리다가 다 태울뻔했다..
한곳에 집중하고 하나씩 하면 되는줄 알면서도
모두 욕심으로 비롯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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