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헤아리기
내 단골 카페에서는 아주 맛있는 커피를 판다.
늘 같은 여성이 한 잔 한 잔 마음을 담에 넬 드립방식으로 커피를 내려준다. 현란한 손기술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원두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유난히 맛있다.
이집 커피가 맛있는 이유가 단순이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녀가 내려준 커피의 진수가 마지막 한 모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였다. 입에서만 맛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맛이 있어서, 따뜻하고 충만한 느낌이 쉬이 가시지 않았다.
요즘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첫 입에 맛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요리든 술이든 마찬가지다. 우리의 미각은 첫입에 맛있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걸까. 하지만 첫입에 맛있다는 것은 어쩌면 맛이 진한 것뿐인지도 모른다.
일본 요리에서 국은 마지막 한 모금에서 진정한 맛이 느껴지도록 만든다. 첫입은 다소 싱겁지만 두 입, 세 입 먹다 보면 점차 최고의 맛에 도달하도록 요리한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비결이 있나요?"
어느 날 카페의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가만히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손님의 '기운'을 헤아리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손님의 기운에 따라 오늘은 어떤 맛으로 내려 드릴지 결정하고 그 맛이 잘 나왔는지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아요."
나는 감짝 놀랏다.'기운'을 헤아린다는 표현이 조금 무섭게 들린 것도 사실이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커피를 주문한 손님이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유심히 헤아린 뒤 거기에 맞춰 맛을 미묘하게 조정하고 마음을 담아 커피를 내린다는 말이다.
요리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라고 내게 가르쳐준 사람은 요리 연구가 우엔 씨였다. 커페의 그녀가 들려준 대답에서 나는 우엔 씨의 말이 떠올렸다. 맛이란 입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요리의 목적은 단순히 먹는 사람의 배를 채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루의 피곤함을 덜어주고 내일도 건강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라고 우엔 씨는 말했다.
카페의 그녀도 분명 이런 마음으로 매일 커피를 내릴 것이다. 상대방의 기운을 헤아리는 마음가짐은 일과 일상에서 잘 살려봄직한 소중한 자세이다. 상대방의 기운을 헤아려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이 행복할지 끝까지 지켜보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 마음을 상대방의 마음으로 향하게 하면, 그 안에서 사랑이 피어나 모든 일에 마법처럼 작용한다.
물론 내 기운을 헤아리는 것도 잊지말자. 그리고 무슨일이든 마음을 담아 하자. 정성스럽게.
책 <일상의 악센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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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고 있다. 언제나 손님과 부대끼는 순간들이 많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서로가 다른 입장이니 서운함을 표현하는분도 있고 손해가 나도 나 또한 어쩔수 없이 입을 다물고 마는 순간도 있다. 요즘엔 그런일 이 생겨날 때면 이렇게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행복하다면..." 웃음이 나지만 나를 위한 처방이다. 당신의 행복이라 했지만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종일 그 상처로 먹구름 속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니말이다.
커피집이 너무 많다. 그 속에서 경쟁을 뚫고 이기려면 분명 책속의 주인처럼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잇속을 챙기다보면 손님의 마음은 볼 수 없게 될 것.. 날마다 공부하고 날마다 내려놓는 자세로 임하는 날들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아름답게 늙어가게 되는 길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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