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책추천]달팽이 손광성 수필선

다림영 2020. 5. 2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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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 번째 장미 

 

남대문 꽃시장에 간 것은 네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세 시면 파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리 되고 말았다.

생각했던 대로 꽃가게들은 거의 문을 닫은 뒤였다. 살 형편도 못 되면서 보석가게 앞에서 공연히 서성거리다가 시간을 너무 많이 보낸 것이 잘못이었다. 불이켜져 있는 집은 대여섯 집,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노랑 장미를 살 생각이엇다. 그러나 다 팔리고 없었다. 대신 분홍 장미를 사기로 했다.

열송이 한 다발에 4000원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서른하고 한 송이니까 세 다발을 사고 한 송이는 덤으로 받으면 꼭 맞아 덜어지는 셈이었다. 지갑을 꺼내면서 꽃집 주인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세 다발을 주세요."

아주머니가 꽃을 싸고 있었다. 이제 한두 송이 덤으로 끼워 넣으리라.

그러나 세 다발을 다 싸고도 덤을 줄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덤 없어요? 아주머니."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꽃장수 아주머니는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는데요."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서른 송이나 사는데 덤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잠시 기다렸다. 그래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서른 송이나 샀는데 덤이 없어요?"

나는 '서른 송이'란 말에 조금 힘을 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못한다는 것이었다. 기분 좋게 덤으로 한 송이를 더 받고 싶었지만 안 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천 원짜리를 내밀었다.

"한 송이를 더 주십시오."

내가 들어도 내 말투가 좀 딱딱해져 잇었다. 야박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답은 또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못하는데요."

"돈을 드리는데두요?"

"네"

기가가막힐 노릇이었다. 돈을 주어도 팔 수 없다니니,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열 송이짜리 한 단에서 한 송이를 빼고 나면 그 남은 아홉송이는 한 단단 구실을 못하기 때문에 다른 손님에게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꼭 필요하다면 한 단을 더 사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는 들었지만 내가 필요한 것은 서른 송이도 아니고 마흔 송이도 아니었다. 꼭 '서른 한 송이'여야 했다. 그렇다고 그 한 송이 때문에 한 다발을 더 산다는 것은 그렇지만, 설사 그런다고 해도 남은 아홉송이를 어떻떻게 하느냐가 문제였다. 아무에게나 주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싱싱한꽃을 사려고 일부러 멀리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여기가 도매상이란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내 등 뒤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머니 , 제가 한 다발을 살 테니 이분께 내 것에서 하한 송이를 드리세요. 그그 한송이에 깊은 뜻이 있는 것 같네요."

돌아다보니 바바리코트를 입은 중년 부인이 웃고 있었다. 처음부터 꽃집 주인과 내가 꽃 한 송이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 주인여자가 장미 한 송이를 덜어내어 내 꽃 묶음에 넣었다.

나는 그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감사의 말을 건넬 수 있었다. 좀 쑥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 뭐 좀 그런 어정쩡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덥석 받기도 조좀 그렇고 해서 아까부터 쥐고 있던 천 원짜리를 주저하면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받을 리가 없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제 동생이 꽃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쁘다기에 제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시냐고 하면서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떤 소중한 분의 생일인가 보지요. 서른 한 살 되시는?"

"아 , 네 . 그게 실은......".

좀 쑥스러운 일어었지만 나는 그 날이 우리 부부의 서른한번째 되는 결혼 기념일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그러고는 한 송이가 모자라는 장미 다발을 바받아들고 다음가게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장미는 그녀가 찾고 있던 색깔도, 또 그녀가 사려고 하던 종류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에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뭔가 알  수 없는 향기라도 맡은 그런 기분이었다. 

 아내에게 꽃을 건네었다. 아내는 덤덤한 표정으로 받았다. 우리는 며칠째 냉전 중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서른 한 번째 장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 꽃을 꽂고 있던 아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지는 것이었다. 며칠만에 보는 아내의 웃음.

 이제 그 서른한 번째 장미도 다른 장미들과 함께 시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 빛나는 장미 한ㄴ송이는 우리의 기억속에 시들지 않고 오래 오래 피어 있으리라 믿는다. 

 

 

 

 

간신히 수필 한편 옮겨 적는다. 이른아침 운동시간도 거르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짧지 않은 글을 옮기는데 이렇게 손목에 힘이 간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웠다. 

손광성의 수필을 읽을 때면  이른아침 빗소리에 뒤척일때처럼  묘한 일렁임으로 따뜻해진다.

온기 없는 시간속에서 불현듯 삭막함을 발견하며 별스럽지도 않은 씨앗하나를 심고 남루한 삶을 위로해 본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지난 숱한 시간들이 지금 이곳으로 나를 데려왔다. 몰랐다. 이런삶이 있게 될 줄은.

나는 또 다른 시간의 좁은 길을  헤치며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환하게 들려오는 봄 비소리 .....

모두가 잠든 휴일아침 사소한 결심으로 일구는 시간. 이 작은 사소함은 얼마나 크고 귀한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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