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 詩

[스크랩] 마경덕의 `수요일에 생각하다` 감상 / 최형심

다림영 2014. 12. 24.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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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에 생각하다/마경덕-

 

 

향기를 탕진한 꽃의 낯빛과

책장에 갇혀 늙어가는 고서古書의 표정이 동일하다

점점 줄어드는 지우개의 불안과

전깃줄에 매달린 빗방울의 여생과

장롱 속에서 사라진 나프탈렌의 부재를 생각하는 오후

흘러간 것들의 나라는 어디인가

서랍에 묶인 만년필의 구년묵이 과거는

철을 놓친 온풍기의 싸늘한 체온이다

카펫에 찍힌 의자의 발자국처럼

가슴에 새겨진 사람도 초침소리처럼 흘러갔다

벽지 속에 핀 꽃들의 누추한 화려함

‘벌써’와 ‘아직도’ 사이에 수요일이 끼어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선명하고

저곳에서 이곳으로 오는 길은 모호하다

수요일은 목요일에게 목요일은 금요일에게

하릴없이 자리를 내어주듯

병실에 두고 온 꽃처럼 그렇게,

어쩔 수 없는 것들은 여전히 어쩔 수 없다

 

<감상>

 

  한번도 수요일과 9월이 닮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시를 읽고 둘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

온 시간 보다 남아있는 시간이 약간 더 적어서 “벌써”와 “아직” 도 사이에 놓인 늦여름, “흘러간 것들의 나라는 어디인가” 생

각해봅니다.

 

-최형심(시인)

출처 : 詩 동행
글쓴이 : yang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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