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오늘을 살기 위하여/크리슈나무르티/판미동

다림영 2014. 8. 2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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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고통이다

우리가 아는 매일의 삶은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가난할 때는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갖고 행동한다. 추하면 아름다워지고 싶어한다. 이렇게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존재의 의지는 무엇인가가 되려 하는 것이다. 도전하고 반응하며 명명하고 기록하는 다양한 상태, 의식의 다양한 차원에서 무엇인가가 되려 하는 의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곧 투쟁과 고통을 의미한다. 무엇인가가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이다. 이런 나에서 저런 나가 되려는 투쟁.p48

 

기쁨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다

무엇이든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일몰, 보름달, 아름다운 사람, 멋진나무, 날아가는 새, 춤을 보고도 우리는 별로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무엇이든 진정으로 향유할 줄 모르는 것이다. 물론 무언가를 보고 표면적으로는 그것에 재미를 느끼고 흥분하기도 한다. 우리가 기쁨이라 부르는 감각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향유한다는 것은 무언가 훨씬 깊은 것, 이해하고 푹 빠져보아야 할 어떤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향유하고 싶어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최고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열정, 욕정, , 지위 같은 다른 종류의 감각을 만끽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긴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정상적인 삶의 요소들이다. 그러므로 비난하거나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해하고 적절한 위치를 부여해주어야 한다. 이것들을 가치가 없거나 감각적이거나 어리석거나 세속적인 것으로 무시해버리는 것은 삶의 전 과정을 파괴하는 것이다.

 

기쁨을 알려면 더욱 깊이 들어가보아야 한다. 기쁨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쁨을 느끼려면 고도로 정제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욱 많은 것을 끌어모으는 치밀한 자기는 필요치 않다. 이런 사람은 향유하는 자기 존재하지 않은 기쁨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기쁨이라는 이 놀라운 상태를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아주 시시하고 하찮으며 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태어나 몇 가지 배우고 고통을 받고, 아이를 낳고 책임을 맡고, 돈을 벌고, 약간의 지적인 재미를 느끼고, 그러다 죽는 것쯤으로.p211

 

경험을 마음에 쌓지 말라

우리의 마음은 경험, 습관, 기억을 통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우리의 마음이 무언가를 경험하면서도 그 경험을 저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축적 과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하자. 이것은 하나의 경험이다. 그러면 나는 그 상처를 저장해서 나의 습관을 만든다. 이 습관을 토대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이 습관을 토대로 반응한다. 그리고 여러분의 마음은 매일 이런식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그 축적 과정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두 과정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여러분이 나에게 모진 말을 하면 나는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 상처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 상처는 나의 행위 배경으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 결과 나는 여러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깊은 의미에서의 진정한교육이다. 여러분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되면 경험이 나를 조건지어도 나의 마음은 조건지어지지 않는다. p277

 

 

익명의 창조성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따라 작가, 시인, 화가, 정치가, 가수로서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왜그럴까? 자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시 쓰는 일을 사랑한다면, 즉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것은 하찮고 어리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짓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 명예로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어한다. 지금의 우리 교육은 이런 면에서 썩어 있다. 자신의 일이 아닌 성공을 사랑하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행위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게 되었다.

 

자신의 재능을 감추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름 없는 존재가 되어, 자신의 일을 사랑하되 이것을 과시하지 않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름을 알리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것도 훌륭한 일이다. 이런 행위는 우리를 유명하게 만들지도 않고, 신문에 사진이 실리도록 하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을 우리 집으로 몰려오게 만들지도 않는다. 우리는 그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창조적인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삶 속에 진정한 풍요와 위대한 아름다움이 있다.

p346

 

 

삶의 목적을 묻기 전에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제시해주려 한다. 성서의 말씀을 가르치려는 이들도 있고 영리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삶의 목적을 만들어낸다. 정치집단이 어떤 목적을 제시하면, 종교인들은 다른 목적을 제시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혼란을 이겨내고 해답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어떻게 진정한 해답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는 혼란스러운 해답만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마음이 심란하면, 마음이 고요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못하면, 어떤 해답을 듣든 혼란, 불안, 두려움의 장막을 통해 받아들이게 된다. 이로 인해 해답을 왜곡해서 이해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삶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혼란을 제거하는 것이다.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삶의 목적을 묻는 것은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빛에 대해 묻는 것과 같다. 빛이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어도 그는 자신의 어둠과 무지에 따라 대답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는 결코 빛은 어떤 것이죠?”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빛이 이미 거기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내면의 혼란을 말끔하게 제거하면 저절로 삶의 목적을 알게 된다. 삶의 목적을 묻거나 이것을 추구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만 하면 된다. p350

 

 

살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살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외부적으로 필요한 것이나 일상적인 일들을 정리하고 유언장을 작성하지 않을까?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 우리가 그들에게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거나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주지 않을까? 마음에 담아둔 것들, 욕망, 세상을 완전히 털어내 버리지 않을까?

한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앞으로 남아 있을 며칠, 몇 년 동안에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시도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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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노년의 죽음을 앞두게 되면  언젠가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어쩌면 우리 모두는 누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용서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생각도 지니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동안 일말의 양심에 흔들림이 있었으므로 편지라도 남겨 마음을 전하게 될 것이다.

오십은 생각도 해보지 못한 나이였다. 그런데 벌써 나는 오십을 지났으니 육십 칠십 상상도 못할 나이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잘 살아야 하겠다. 하루하루 반듯하고 맑은 마음의 밭을 일구어야 하겠다.

 

어느새 오후에 접어든다. 여름이 가려하니 매미가 극성이다. 예전에 좋았던 소리가 이젠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에겐가 그런 소음으로 여겨질 헛된 나의 글은 되지 않았는지 때마다 돌아보아야 하겠다.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의 성찰의 일기가 될 수 있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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