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권을 읽으면..

나는 왜 쓰는가/조지오웰/한겨레출판

다림영 2014. 6. 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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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자주 인용되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처럼 보배 같은 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괴벨스 박사의 묘사처럼 지옥인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집안을, 상당히 고루한 빅토리아 시대의 집안을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골칫덩이가 많진 않아도 찬장마다 해골이 넘쳐나는 집안 말이다.

 

이 집안에는 비굴하게 아첨을 떨어야 하는 부자 친척도, 끔찍이 들러붙는 가난뱅이 친척도 있으며, 집안의 수입원에 대해 함구한다는 단단한 공모가 있다. 또 젊은 사람들은 대체로 좌절을 겪고, 실권은 대부분 무책임한 삼촌들이나 몸져누운 숙모들 손에 있다.

 

그래도, 집안은 집안이다. 나름의 언어가 있고, 공통의 기억이 있으며, 적이 다가오면 단결한다. 엉뚱한 식구들이 살림을 주무르는 집안-영국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게 가장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p107

 

그런가 하면 글 쓰는 사람이 단어나 문구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느끼는 경우가 흔히 있은, 직관이 통하지 않을 때는 기댈만한 원칙이 필요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대부분의 경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익히 봐왔던 비유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2.짧은 단어를 쓸 수 있을 때는 절대 긴 단어를 쓰지 않는다.

3.빼도 지장이 없는 단어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뺀다.

4.능동태를 쓸 수 있는데도 수동태를 쓰는 경우는 절대 없도록 한다.

5.외래어나 과학 용어나 전문용어는 그에 대응하는 일상어가 있다면 절대 쓰지 않는다.

6.너무 황당한 표현을 하게 되느니 이상의 원칙을 깬다.

 

이런 원칙들은 기본처럼 들리며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지금 유행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데 적응해온 사람에게는 엄청난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내가 다룬 문제는 언어의 문학적 사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숨기거나 막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언어에 대해서만 다루어본 것이다. p275

 

우리가 딱히 아프거나, 배고프거나, 공포에 떨고 있거나, 감옥 또는 행락지에 갇혀 있지 않은 한, 봄은 여전히 봄인 것이다. 공장엔 원자탄이 쌓여가도, 도시엔 경찰이 어슬렁거리고, 확성기엔 거짓말이 넘쳐흐른다 해도,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변을 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아무리 못마땅한들, 독재자도 관료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p282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 次惡  인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p137

 

내가 글을 쓰는 동기가 오로지 공공의식의 발현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듯하다. 나는 그것이 마지막 인상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으로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은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p300

 

사람들이 변기에 앉아 있을 때 그 언제보다 진지하고 사색적이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는 그것을 수많은 실험을 통해 알게 되엇다. 이를테면 순전히 시험 삼아 왕을 살해할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지 궁리해 볼 때 대변은 녹색 빛을 띠었다. 그런가 하면 내란을 일으키거나 수도에 불을 지를 생각만을 할 때는 결과가 상당히 달랐다고 한다.

 

스위프트가 이런 교수와 이론을 생각해 낸 것은 오늘의 우리가 보기엔 특별히 놀랍거나 역겹지 않은 사실, 즉 당시의 한 국사범 재판에서 누군가의 변소에서 발견된 몇 통의 편지가 증거물로 제출된 사건 덕분이었다. 같은 장 의 뒷부분에선 마치 러시아 숙청의 현장에 와 있는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p314

 

 

역자 후기 중에서

우리 시대에 정치적인 말과 글은 주로 변호 할 수 없는 것을 변호하는 데 쓰인다.”-<정치와 영어>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나는 왜 쓰는가>

..책의 제목을 나는 왜 쓰는가로 한 것은, 같은 제목의 에세이가 그의 문학론과 정치적 입장을 단적으로 가장 잘 대변해 주며,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한 짤막한 자서전을 봐도 좋을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 에세이에서 정치와 문학은 별개가 아니며, 어떤 글쓰기도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렇다고 오웰을 정치적이기만 한 작가로 본다면 큰 오산이다. 작가로서의 그에겐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 가장 큰 관심사였던 것이다. 그는 또 작가가 정치적인 활동은 하되 일반 시민으로서 개입해야지 작가로서 어떤 정치노선에 따라 글을 쓰는 것만큼은 거부할 줄알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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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빌릴 때 꼭 한두권의 고전을 고르기로 했는데 읽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소설 한 권도 빌려놓고 다 읽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읽으려 하는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읽는데 어느때엔 뿌듯하고 또 언제는 왜 이리 어려운 글을 읽고 있을까 하며 진저리를 내면서도 스스로와의 약속으로 눈을 비비며 읽는 것이다. 웃음이 나지만 어렸을 때 차곡차곡 읽었다면 참 다른 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큰 녀석이나 둘째 녀석이야 성인이니 그렇다치고 막내에게 연신 책 읽기를 권하는데 스마트폰에게 빼앗긴 마음으로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 책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가끔 들여다 본다고 하는데 어미의 마음만 안타까운 것이다. 젊을 때 읽는 글과 나이 들어 읽는 책은 너무나도 차이가 있는 것이기에 ....

 

아이들 어렸을 적에는 자기 전 엔 꼭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고 큰 녀석이 국문학과에 간 것까지는 나의 노력이 있긴 한 듯싶지만 성향이 너무 다르고 그 어떤 고집 또한 막을 길이 없어 모든 것이 나의 지나친 간섭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상관치 않고 내버려 둘걸 하는 마음이 솟는 날들이다.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는 것이지만 요즘엔 모든 생활이 통제가 되지 않는터라 그저 나를 낮추는 일에 마음을 쏟으며 살고 있다. 긴 휴학이 이어지고 공부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조차 엿볼 수 없으니 다만 건강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한다.

책에 대한 말씀은 그저 어렵다. 잘 읽히지 않는다외엔 ... 그의 동물농장은 몇 번 읽었으나 ..

오늘도 어제보다  작은 눈금만큼이라도 평온하고 환해진 나였기를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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